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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경제경영 > 경제학/경제일반 > 경제정책/비평
· ISBN : 9791186358177
· 쪽수 : 308쪽
· 출판일 : 2016-08-30
책 소개
목차
한국어판 서문 | 서구 경제의 실패로부터 배우기를 바랍니다
프롤로그 | 글로벌리즘으로 세계는 점점 더 가난해진다
1부. 초부유층은 어떻게 경제학을 이용했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제학
도그마가 되어 버린 자유무역
역외이전은 무역이 아니다
지금껏 간과된 외부비용 문제
누락된 경제학, 자연자본
가득 찬 세계에 필요한 경제학
헥셔-오린 무역이론의 기만성
시장 자본주의 정당성이 무너졌다
2부.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
경찰국가로 타락한 위대한 민주주의의 나라
가난한 사람들의 보조를 받는 자본주의
무너진 상층이동 사다리
역외이전이 일으킨 취업전선 이상 사태
제3세계로 변한 미국의 노동 현실
이로운 글로벌리즘이란 없다
글로벌리즘의 실체를 경고했던 사람들
망가진 미국 경제 숫자로 보다
미국의 과학기술 인력은 정말 부족한가
돈은 다 어디로 갔나
파탄나는 나라의 특징
세상물정 모르는 경제 전문가
3부. 벼랑 끝에 선 유럽의 주권국가들
유럽의 재정위기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나
발표되지 않은 의제, 유럽연합의 속셈
통합된 유럽은 흩어진 유럽보다 조종하기 쉽다
에필로그 | 가득 찬 세계를 위한 정상경제학을 바란다
독일어판 서문 | 유럽의 미래를 좌우할 역사적 전환기
역자의 글 | 신자유주의 이면의 진실을 찾다
그래프로 보는 미국 경제 | 경제는 회복되지 않았다
리뷰
책속에서
이 글을 읽는 일부 독자들은 내가 ‘글로벌리즘이 미국에 미치는 해로움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며 이의를 제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아마 이렇게 묻고 싶을 것이다.
“당신은 부유한 미국 사람들만 염려하는가? 정작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불쌍한 사람들은 왜 상관하지 않는 건가?”
신자유주의를 비난하는 여러 학자들은 글로벌리즘이 가난한 나라에 저지른 폐해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에는 하나의 가정이 전제한다. 가난한 나라들이 서구 세계의 이익을 위하여 수탈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칭하는 서구 세계가 소수의 거대기업과 은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전제는 사실과 다르다.
글로벌리즘이 전 세계에 걸쳐 전혀 이득이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는 최상의 방법은 글로벌리즘으로 가장 큰 혜택을 입고 있다고 여겨지는 나라가 겪는 곤란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나라는 바로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 초강대국, 미 합중국이지 않은가.
- <망가진 미국 경제 숫자로 보다> 중에서
리카도가 살던 시대에는 나라마다의 독특한 국민성이라든가, 기후와 지리적 여건 등이 재화에 들어가는 비용의 상대적 가격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산출물 대부분은 습득된 지식을 바탕으로 투입요소들이 결합되어 만들어진다. (…)
리카도의 비교우위 원칙에는 또 하나의 필요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한 나라의 자본이 국내에서 비교우위를 찾아야 하며, 자본을 더 잘 활용하기 위해 생산성이 높은 해외로 나가려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리카도 역시 영국 자본이 더 낮은 생산비용을 찾아 포르투갈로 옮겨갈 수 있고 그로 인해 영국인들이 직장을 잃거나 그보다 못한 일을 해야 할 가능성에 직면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자본은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옮기는 데 어려움”이 있는데다가 그 속성상 “소유자의 직접적인 통제 하에 있지 않게 되면” 불안해지기 때문에 비교우위의 토대를 훼손시키는 자본의 해외이전 가능성은 무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이런 정서는 희미해져 버렸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기업이 자산의 소유주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자본은 무역상품과 마찬가지로 이동하고 있다. 비행기나 배에 싣고 옮겨야 하는 상품에 비해 자본은 빛의 속도로 이동한다.
- <도그마가 되어버린 자유무역> 중에서
(일자리 숫자 면에서) 2004~2014년의 10년 동안, 가장 큰 고용성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던 직업의 종류는 모두 비교역 내수서비스 업종뿐이었다. ‘초강대국’인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상위 10등까지의 직업들은 다음과 같다.
“소매점의 판매원, 간호사, 직업교육기관 강사, 고객상담원, 건물관리인과 청소부, 웨이터 혹은 웨이트리스, 음식 차리는 종업원(패스트푸드 포함), 입주간병인, 간호보조원, 잡역부 및 안내원, 총무 및 작업관리자.”
정부가 고용성장을 예상하고 있는 그 어떤 직종도 거대한 무역적자를 메우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수출용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해 내지 못하는 것뿐이다. 게다가 이들 직업의 대부분은 대학교육이 필요 없다는 사실도 유의해 주기 바란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인들에게 약속되어온 지식기반의 일자리지식기반의 일자리는 아직 실현된 바가 없다.
- <제3세계로 변한 미국의 노동 현실> 주에서
경제학자와 사업가들이 ‘최저비용으로 생산’한다고 묘사했다면, 이는 많은 경우 제삼자에게 매우 큰 비용을 부담시키는 생산이라고 보면 된다. 그 비용은 상품가격에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처럼 어떤 생산의 ‘외부’ 혹은 ‘사회적’ 비용이란 사업자들이 사회에 떠넘기는 비용을 가리킨다. (…)
경제학자들이 이윤이라는 면에서 ‘가장 생산적인 용도’라고 평가를 할 때, 사실 그 이윤이란 해당 개발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떠넘겨지는 비용이라는 것을 새겨둘 필요가 있다. 만약 개발로 파생되는 외부비용이 개발계획 비용에 포함된다면 착수될 계획은 아마 훨씬 더 적어질 것이다.
- <지금껏 간과된 외부비용 문제> 중에서
경제학자들은 시장을 현실에서 구체화한다. 시장은 이것을 했고 저것을 하였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시장은 행위자가 아니다. 시장은 하나의 사회제도일 뿐이다. 사람들은 의도를 가진 행동을 한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의 행위가 규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자유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이 규제 없는 경제행위를 이상적인 것이라고 묘사한다면, 그들은 규제가 없는 경제행위의 역기능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만약 그런 주장이 옳다면 이 결론을 왜 인간의 경제행위에만 국한시키는가? 인간의 다른 행위들도 마찬가지로 규제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경제학자들은 강도나 강간, 살인은 사회적 병리임을 인정하면서 무제한으로 커져가는 부채비율과 허위로 표시된 금융상품은 왜 사회적 병리라고 여기지 않는가? 연방준비제도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앨런 그린스펀과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시장은 자동으로 조절된다시장은 자동으로 조절된다’는 주장은 바꾸어 말하면 개개의 인간들은 제한받지 않아도 스스로 조절한다는 단언이 된다. 도대체 누가 이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
- <시장 자본주의 정당성이 무너졌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