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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전선

직업 전선

(가마꾼부터 저자까지)

송승언 (지은이)
  |  
봄날의책
2022-05-19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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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전선

책 정보

· 제목 : 직업 전선 (가마꾼부터 저자까지)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6372944
· 쪽수 : 220쪽

책 소개

과거, 현재, 미래를 막론하고 노동 현장에서 꿈꾸듯이 일하고 있는 이상한 사람들이 쓴 수기 모음. 그들의 전문 지식과 애로 사항과 희로애락과 꿈과 상징과 물거품이 담겨 있다. 각 글들은 과거-현재-미래를 넘나든다. 또 현실-허구-상상이 뒤섞여 있다.

목차

1부
가마꾼
노점상(아이스크림을 파는)
야쿠자
시인
선원
고스트라이터
악몽 수집가
영화감독
머리 수집가
어부
노점상(인형을 파는)
산역꾼
묘지기(공원의)
대면병
묘지기(우주의)
조랑말 속달 우편배달부
교정자
리브라리우스
주술사
마리아치
일수꾼
조직원(참새파)
농군
종글뢰르
소설가
음악가

2부
책 닌자
취재 기자
길 주인
왕(무인도의)
무법자
사형집행인
프로레슬러
점방 주인(귀금속 판매상)
국밥집 사장
요리사
파일럿(거대 로봇의)
공장 노동자(장난감을 만드는)
펀드 매니저
사무원
웹툰 작가
버스 기사
사연 위조꾼
사이버 낚시꾼
사이버 트럭 기사
도망자
놀이공원 안내인
공작원
택시 기사
야경원
고물상(월드와이드웹의)

3부
결정자
헌병 수사관
세신사
책쾌
고서 감정사
사이버 무당
선지자(신대륙의)
사서
비밀 관리자
바리스타
저격수
기병
포크 가수
사랑학자
대장장이
호위 무사
아내(농부의)
관리인(곡물창고의)
학원 학원 원장
인력 관리자
직업 소개사
저자

부록 창작 노트

책속에서

「어부」
그물 걷는 날이라 낚싯배 끌고 나갔지. 채비도 살피고 별신굿도 드렸지. 하늘 화창하고 풍랑도 잔잔해 가슴이 두근두근한 거라. 그물 걷어 올렸는데 뭣이고. 고기는 한 마리도 없고 뭔 해골바가지 하나 걸려 있는 거 아니겠나. 와, 나 황당해서 던져버리려는데 가만히 보니 해골 두상이 제법 잘생겨 보인다. 뭔가 익숙하고 그립고 어디선가 본 듯한 두상. 나어린 꼬마가 대문 앞에서 손 흔드는 거 뒤로한 채 바다로 영영 떠난 아버지의 마지막 뒤통수. 맞나. 아버지 맞나. 해골 니가 내 아버지가. 내 아버지였던 무엇이가.


「리브라리우스」
책을 펼치라 하십니다. 책을 펼친다. 펼쳐지는군요. 열립니다. 책이 자신을 드러낸다. 드러나는군요. 드러나고야 마는군요. 한 번도 보지 못한 세계의 정원 같습니다. 세계의 정원이라는 곳이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내게 가꾸라 하실 테고, 나를 통해 당신은 세계의 정원을 가꾸겠지요. 나의 책 읽기를 통해 당신이 책을 읽듯이 말입니다. 책을 읽으라 하십니다. 읽겠습니다. 지금부터요. 소리를 내어서요. 늙은 부모에게 들려주듯이 큰 소리로요. 어린아이들에게 들려주듯이 다감하게요. 또한 분명하게요. 여러 청중 앞에 선 것처럼 드넓게요. 폭넓게요. 강연을 하듯이요. 저자가 된 듯이요. 주인공이 된 듯이요. 숙적이 된 듯이요. 사랑에 빠진 사람같이요. 음유시인처럼요. 틀리지 않도록 한 자 한 자 눈으로 문자를 두드리면서요. 불어난 냇가의 돌다리를 건너듯이요. 바람처럼 자유로운 당신이 오전 산책을 하듯이요. 이 구절에서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전장에 나서는 듯이요. 나는 말하고 너는 듣는다. 서서. 앉아서. 누워서. 어느 구절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느 구절에서는 손뼉을 치며. 어느 구절에서는 화를 내며. 웃으며. 어느 구절에 다다라서는 기어이 눈물을 흘리며. 너는 나를 통해 이야기를 듣고. 들은 이야기를 나누고. 진짜 세상 위에 이야기를 투영하고. 이야기 위에 진짜 세상을 투영시키며 견문을 넓히지만. 책이 책을 비추는 무한 거울 같은 서재만이 내게는 유일한 세상이고. 또한 감옥이라서. 네가 허락하지 않은 책들은 닫혀 있다. 잠들어 있다. 우리의 신분이 그렇듯이. 금지된 세계 중 하나를 열어젖히고 싶다. 그런 충동은 죽음을 부르는 것이겠지만. 슬픈 이야기네요. 그렇죠. 있어서는 안 될 비극이죠. 이보다 더한 비극도 있단 말입니까? 세상에나.

* 리브라리우스는 글을 아는 노예를 이르는 말. 큰 소리로 책을 낭송하거나 필사하며 서재를 가지런히 정돈하는 일을 맡는다.


「포크 가수」
당신의 손에 들린 도구에 대해 들려주세요.
당신의 육체 피로에 대해 들려주세요.
그러면 나는 내가 아닌 당신의 이야기를 소리 나게 만들 겁니다.
당신이 휴일마다 되풀이해 보면서도 매번 처음인 양 좋아하는
자연 풍경들도 잔마디와 잔마디 사이로 스밀 겁니다. 그러나
그 풍경들이 인간을 대신하지는 않도록 할 거예요. 조물주의
자연은 노동을 하지 않으니까요. 세계는 노동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새의 근육에 대해서만 노래하진 않을 겁니다.
나는 당신의 날개가 쉴 그늘에 대해서도
그늘 속에서 울려 퍼질 지저귐에 대해서도 노래할 겁니다.
서로의 깃에 부리를 파묻는 순간에 대해서도
그리고 당신에게 깃털 하나만 남기고 떠날 이에 대해서도
당신의 보금자리에 대해서도 노래할 겁니다.
만약 당신이 그러한 종류의 새가 아니라면
낙엽이 되는 당신에 대해서도 노래할 겁니다.
당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당신은 어떤 것도 될 수 있으니까요.
당신은 모든 것이니까요.
그러나 당신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니까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해서 노래할 겁니다.
당연히도 조상에 대해 노래할 겁니다.
조상의 사랑에 대해
조상의 시장에 대해
조상의 산과 조상의 숲과 조상의 바다와 조상의 노동에 대해
조상의 증기기관에 대해 노래하고
조상이 만든 노래를 노래할 겁니다.
가능해지지 못한 조상의 미래에 대해 노래하다 보면
인간사가 짧기도 하겠지요.
나는 H 빔 위의 당신에 대해서도
용광로 앞의 당신에 대해서도
전화기 앞의 당신에 대해서도
방 안에 있는 당신에 대해서도
거의 당신 같은 당신의 사물들에 대해서조차 노래하겠지만
그러나 그런 생각은 관두세요.
나는 전쟁에 대해서는 노래 않을 겁니다.
군악은 장르를 넘어선 문제입니다.
나는 앰프와 토마토의 시대 이후로 점점 늙고 약해지겠지만
아마 죽지는 않을 겁니다.
노동이 사랑이 있는 곳에는
저도 있어야 하니까요.
아마도 합창이라는 것으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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