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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쓰는 편지

나에게 쓰는 편지

김계종 (지은이)
문학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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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쓰는 편지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나에게 쓰는 편지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6418970
· 쪽수 : 260쪽
· 출판일 : 2023-08-01

목차

책을 펼치면서 … 2

1부 · 진료약속부
진료 약속부 … 8
치과의사의 백발 … 16
서울치대 20회 졸업 50주년을 회고하며 … 22
끽연(喫煙)과 금연(禁煙) … 32
동숭동 골목에서 길을 찾다 … 43
마지막 선물 … 52
작금의 치과계 행태에 ‘통탄’한다 … 58

2부 · 나에게 쓰는 편지
메모리 … 66
나에게 쓰는 편지 … 78
나를 사랑하자 … 81
삼모작 … 86
세실리아에게 … 94
아버지의 용돈 … 112
편지 같은 유서 … 116
한 장의 사진 … 125

3부 · 굿바이, 패티김!
굿바이, 패티김! … 138
걸어서 세계속으로 … 144
꽈배기 … 152
뻐꾸기시계 … 158
소눈깔 … 164
슬기로운 군포생활 … 174
만병통치약 … 183
코로나19로 인해 변해버린 나의 삶 … 194
호랑나비 … 201

4부 · 내 문학의 시원(始原)을 찾아서
내 문학의 시원(始原)을 찾아서 … 206
환경과 문학 … 214
합평(合評) … 224
알을 깨고 시의 세계로 날고 싶다 … 228
스페로 스페라 … 230
수리샘문학회 입문기 … 232
수리샘 18호 발간에 즈음하여 … 238
열린 뜻 … 242

작품 해설
므네메적 상상력과 연어의 회귀 … 248

저자소개

김계종 (지은이)    정보 더보기
시인, 수필가 월간 <문학바탕> 신인문학상 시 등단 수필문예계간지 <에세이 포레> 신인문학상 수필 등단 문학바탕 동인지 <시와 에세이> 13, 14호 참여 군포문인협회 두 번째~아홉 번째 사화집 참여 국제문학바탕문인협회 정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군포문인협회 회원 수리샘문학회 회원 저서 | 시집 『혼자 먹는 식탁』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치의학박사 김계종 치과의원 원장 서울시 치과의사회 부회장 서울시 치과의사회 대의원총회 의장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 부의장 대한구강보건학회 회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외래교수 덴탈코러스(치과의사합창단)감사, 고문 사)열린치과봉사회 운영위원, 고문 사)한국기독실업인회 서울영동CBMC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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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치과의사의 백발

“할아버지 치과선생님이다! 애야, 가자.”
오륙 세쯤 된 아이 손을 잡고 치과에 들어서던, 삼십대로 보이는 엄마가 흰머리 원장을 보고, 돌아서면서 하는 말이었다. 요즘 들어 자주 듣는 말이며 자주 보게 되는 광경이어서 놀랍지는 않았으나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이다. 무안하고 섭섭하다.
사십대 초부터 유전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흰 세치가 군데군데 생기긴 했다. 오십대를 지나서부터는 제법 흰 머리칼과 검은 머리칼이 반반 섞여 멋있게 보인다고들 했다.
치과의사와 그 가족으로 구성된 덴탈코러스(치과의사합창단) 매년 정기연주회 때는 합창단 중에서 유일하게 흰머리 베이스 단원으로 관객들에게 인기를 받았으며 내 팬까지 생길 정도였다. 나이든 사람이 있어 합창단의 무게감도 있고, 나이든 치과의사도 합창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기도 했단다. 하기야 그 합창단에서 제일 연장자이고, 선배여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후배 단원들은 “소리는 안 내셔도 되지만 무대장치로서의 선배님의 존재는 꼭 있어야 할 분입니다.”라며 농담을 하곤 했다. 그래서 난 내 반 백발을 자랑스러워했다.

돌아서는 어린애와 엄마를 향해 나는 “저기요, 미안하지만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했다. 치과 문을 나가려던 아이와 엄마는 몸을 돌이켰다. “왜, 할아버지 치과선생님은 안 되는데요? 그 이유를 듣고 싶은데 말해줄 수 있어요?” “이유를 말씀드리면 기분이 좋지 않으실 텐데요.” “아니요, 기분이 안 좋긴요. 제가 좀 알아야 마음이 풀릴 것 같아서요. 부탁드립니다.” 대화를 서로 주고받다가 그 아이 엄마가 조리 있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세 가지였다.

첫째는 의사 특히 치과의사는 눈이 생명인데 나이 드신 치과의사분은 시력이 좋지 않아 진료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된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할아버지 치과선생님은 치료하실 때 손을 떠는 수전증이 있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는 것이었다.
셋째는 모든 과학문명, 특히 의학은 날로 눈부시게 새로운 기술과 학문이 발달되어왔는데, 옛날 오래된 의술과 학문을 배운 할아버지원장님은 구식치료를 하지 않나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었다.
간단하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주는 아이 엄마가 너무 고마워서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그렇군요. 어려운 부탁인데도 솔직하게 얘기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라고만 했다. 아이 손에 칫솔 두 개를 들려 보냈다. 그들이 돌아간 후 원장실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매일 보는 내 모습이 늙어가는 것도 모르고 아직도 내 마음은 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눈도 안경은 비록 썼지만 아직 잘 볼 수 있다고. 손도 떨지 않고 세밀한 치료도 거뜬히 해내고 있다고. 매년 적어도 법적으로 지정된 시간이상의 의무적 보수교육을 이수해야 면허가 유지되고, 임플란트 등, 새로운 학문과 의술에 대한 이론과 임상실습교육도 충분히 받았으며, 각종 수많은 강의와 세미나에 참석하여 새롭게 변하는 의술을 열심히 배우고 기술을 익히고 실습하고 있노라고. 그래서 아직은 실력 있고 유망한 젊은 개업의 못지않게 잘 나가고 있다는 변명 아닌 변명과 설득을 하고 싶었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세월은 내 머리에 서리를 내리고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환자의 입장이었어도 같은 치료비 내고 노인의사에게 마음 놓고 치료를 받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러한 사실을 왜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과 후회가 물밀 듯 몰려왔다.

이튿날 이발관에 가서 머리칼을 짧게 자르고 머리를 검게 염색했다. 한 십년은 젊게 보였다. 치과개업을 접으면 모를까, 계속 진료를 할 거라면 적어도 젊게 보여서 치과의사로서의 환자에게 신뢰감을 주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와 도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염색을 하고 집에 가니 그걸 본 어머님은 우리 아들 젊게 보여 좋다고 염색 진즉 할 걸 잘했다고 반기셨다. 그러나 아내만은 그 좋은 백발을 왜 염색을 했느냐고, 잔소리를 해댔다. 혹시 젊게 보여 바람이 날까 봐 걱정하는 건 아니겠지. 주일 날 교회에 가서 내가 주로 앉는 장로석에 앉았더니 내 뒤통수를 보고 웬 젊은 사람이 장로석에 앉아 있느냐며 교인들이 한마디씩 했다. 머리를 검게 염색한 나를 어느 시골마을 이장(?) 같다는 등 놀림을 받기도 했다.

머리만 검게 염색했는데도 환자는 많이 늘었고 날 보고 늙었다고 돌아서는 사람은 드물었다. 하루는 단골환자인 팔십대 어르신이 모처럼 내원했다. 치료 의자에 앉아있던 환자는 “어! 원장이 바꿨네! 그 흰머리 원장은 그만 두었나?” “접니다. 원장이 바뀐 게 아니고 제가 염색을 했습니다.” “아니, 그 좋은 백발을 왜 염색해 버렸어!” “나이든 백발의 의사를 환자들이 싫어해서요.” “뭘 모르는군, 의사는 역시 나이 지긋한 백발의 의사가 경험도 많고 좋은 의사지.” 역시 나이든 의사를 명의로 생각하는 사람은 노인, 어르신들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씁쓸했다.

“내 틀니가 깨져서 붙이러 왔지” “어르신, 이 틀니는 하신 지 십년도 넘은 틀니로 몇 번 수리도 하고, 마모도 심하고 헐거워져서 다시 새로 하셔야겠네요.” “나 돈 없어, 아들 며느리한테 돈을 타야하는데… 그냥 적당히 붙여주기만 해줘” 돈 한참 잘 버는 중년의 나이 때는 치료비 깎지도 않고 현찰로 턱턱 선불 결제하시던 분이 이제 나이 들고 자식과 같이 사는 입장에서 아들 며느리 눈치를 보아야하는 처지가 되었다고 한다. 늙기도 서러운데, 돌아서는 어르신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머리를 염색한 후에 덴탈코러스 공연에 온 내 팬들은 그 백발의 치과의사 단원이 보이지 않는다고 찾기도 했고, 잘 어울리는 백발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젊게 보이는 나는 마냥 좋았다. 머리칼만 좋아진 것이 아니고 내 마음도 젊어진 채로 근 이십년을 젊은 치과의사로서 잘 지냈다. 그동안 밝은 눈으로, 순발력 있는 섬세한 손으로, 새로운 의술과 실력으로, 과연 얼마나 최선을 다해 환자를 진료해 왔는지 뒤돌아보며 새로운 다짐을 해보곤 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의 나이는 환자의 나이와 같이 늙어 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이제 오십여 년의 치과의사의 삶을 은퇴하고 보니 많은 아쉬움과 후회와 더불어 좋은 추억과 자랑스러운 치과의사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아름답게 지나갔다.
‘박수 칠 때 떠나라.’ ‘시작할 때가 있는가 하면 끝날 때가 있다.’ 은퇴를 하고서는 머리 염색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곱게 늙어 가고 싶었다.
은퇴를 하고보니, 그동안 나를 믿고 열심히 찾아오신 단골환자들에게 제일 먼저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나보다 오래 살아야 해! 그래야 나 죽을 때까지 내 치아를 책임지고 치료해 주지.”하며 자기 몸을 나에게 믿고 맡겼던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감사함을 느끼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오랫동안 진료할 겁니다.”라고 장담했던 내가 후회스럽고 아쉽기만 하다.

‘백발은 인생의 면류관이다’라는 말이 있다. 자연의 섭리에 조용히 순종하며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삶의 나이테 같은 백발은 그래서 인생의 면류관인 것이다.
따라서 치과의사의 백발 또한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치과의사의 면류관이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나에게 쓰는 편지

사랑하는 계종에게

76년 만에 내가 너에게 직접 편지를 쓰다니 참으로 오래만이다.
그 동안 일기를 써서 네 마음을 달래긴 했지만 편지쓰기는 처음이라 왠지 쑥스럽다.
먼저 칠십을 훨씬 넘어 팔십을 바라보는 오늘날까지 건강하게 열심히 살아온 것 너무 감사하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이라 생각한다. 또한 건강한 몸을 주신 부모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있다.
그동안 너의 인생은 한 말로 이야기해서 너 자신보다는 남을 위해 살아온 것 같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야했고 타인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인생을 살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때로는 네가 남보다 더 잘났다는 우월의식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이 남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열등감에 시달리며 남몰래 흘린 눈물도 많았음을 난 알고 있다.
하나 오늘날까지 모든 어려운 시험과 힘든 시련과 좌절을 극복하고 용케 살아남아 노년을 즐기며 사는 너에게 한없는 위로와 격려와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아버지 어머니의 육남매 중 장남으로, 동생들의 큰 형과 큰 오빠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 한 여인의 남편으로, 삼남매의 아버지로, 할아버지로, 치과의원 원장으로, 치의학박사로, 교회의 장로로, 회장, 의장, 고문 등등 그 많은 역할과 의무와 책임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온 것 잘 알고 있다. 그 중에 제일 힘든 것이 좋은 아버지 되는 것이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지.
어렸을 때부터 ‘남자는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 남자는 강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살았지만 그동안 살면서 남몰래 남자의 눈물도 많이 흘렸지. 통곡할 때도 있었지. 죽고 싶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
그러나 어렵고 힘들고 슬픈 나날만이 아니었지. 기쁨과 환희의 날도 많았지.
처음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 초등학교 6년 개근상과 우등상을 받았을 때, 서울대학에 합격했을 때, 대학 졸업 후 치과의사가 되었을 때, 군의관이 되어 장교 군복을 입었을 때, 5년의 연애 끝에 결혼했을 때, 첫 아들을 낳았을 때, 치과의원을 개업했을 때, 아들 딸 들이 대학에 합격했을 때, 첫 손자가 태어났을 때, 시인등단해서 시인이 되었을 때 등등 수많은 경사 속에 축하의 박수도 많이 받으며 살았지.
이제까지 살고 보니 인생이란 그렇게 기쁜 것도 슬픈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 그래서 네가 너를 인정하고, 이대로의 너를 좋아하고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계종아, 이만하면 네가 원하고 바라는 대로 잘 살았지 싶다. 곱게 늙었지 싶다.
너를 항상 버티며 참고 견디게 했던 것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며 남은 생을 더욱 더 사랑하며 살자꾸나. 하루하루가 기적이요 감사다.
웃고 싶으면 마음껏 웃고 울고 싶으면 마음껏 울고 살자꾸나.
그리고 항상 감사하며 건강하게 살기를 빌면서… 안녕!

2017년 11월 어느 멋진 날에


므네메적 상상력과 연어의 회귀

김영철(문학평론가, 서울대 국문학과 동대학원 박사 학위, 건국대 명예교수)

이어령은 사랑의 유형을 바다를 닮은 사랑과 강을 닮은 사랑으로 구분한 바 있다. 바다를 닮은 사랑은 폭풍우처럼 열정적이고 거친 사랑이다. 반면 강을 닮은 사랑은 잔잔하고 고요한 사랑이다. 그러면서도 조용히 움직이며 조금씩 성숙해 간다. 강은 얼핏 보면 전혀 흐르는 것 같지 않지만 반드시 처음과 끝은 움직인다. 그리고 마침내 바다에 이르게 된다. 움직이지 않지만 움직이는 내밀한 사랑, 그것이 강을 닮은 사랑이다.

『나에게 쓰는 편지』는 강을 닮은 에세이다. 강처럼 조용히 흐르지만 그 속에는 흘러온 세월의 흔적이 퇴적물처럼 쌓여 있다. 김계종의 인생의 강에는 수많은 고뇌와 번민, 기쁨과 슬픔의 회한(悔恨)이 조용히 물결치고 있다. 그것을 므네메(mneme)적 상상력으로 소환하여 문학적으로 재구(再構)한 것이며 유수 같은 세월 속에 침전된 기억의 보고(寶庫), 금싸라기 같은 추억의 창고인 것이다. 작가 스스로도 인생은 시냇물에서 강으로, 강에서 바다에 이르는 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내 문학의 시원(始原)을 찾아서>)
우리는 『나에게 쓰는 편지』를 통해 김계종이 살아온 인생의 강을 만날 수 있다.

므네메적 상상력은 문학의 개성적 상상력이다. 므네메는 기억소(記憶素)인 므네몬(mnemon)에서 파생된 말이다. 신경계통의 의학용어에서 따온 것이다. 곧 과거의 기억들을 소환, 재생하여 문학적 형상화의 모티브가 되는 것이다.
므네메적 상상력에 토대를 두고 시를 쓴 시인은 김소월이 대표적이다. 그의 시는 모두 과거로 향하고 있다. 미래에 당신을 만나더라도 이미 그는 헤어진 인물 곧 잊혀진 존재로 그려진다.(<먼 후일>) ‘과거적 현재, 과거적 미래’가 소월의 시적 시제(時制)다. 이런 점에서 이 수필집은 소월의 시적 상상력에 물꼬가 닿아 있다.
작가는 자신을 한 마리 연어라 했다. 그의 글은 연어의 모천회귀(母川回歸) 본능에서 비롯된 분비물이다. 연어는 반드시 자기가 태어나 자란 모천으로 회귀한다. 그처럼 김계종은 한 마리 연어가 되어 과거로의 여행, 추억여행을 떠난다. 한 마리 연어의 모천여행, 그 아름다운 여행기가 『나에게 쓰는 편지』인 것이다.

수필(隨筆)은 따를 수(隋), 붓 필(筆)의 합성어다. 그야말로 붓 가는 대로 쓰는 양식인 것이다. 붓 가는 대로 쓴 글이지만 그 속에는 한 개인사의 궤적과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지나온 세월의 흔적을 이처럼 생생히 재구해 놓은 작품을 만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나에게 쓰는 편지』는 자전적(自傳的) 에세이다. 태어나면서 살아온 김계종의 삶의 흔적을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한편의 자서전에 가깝다. 회고적 에스프리(esprit)로 ‘생의 한가운데’에서 살아온 자신의 삶을 생생히 소환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수필집은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를 연상시킨다.
이 책에는 김계종이 살아온 생의 파노라마가 다큐 영화처럼 생생하게 펼쳐진다. 그는 평생 일기를 써 왔다. 그 일기가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의 시원(始原)이 됐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문체는 일기체 문장을 닮았다. 지나간 생의 체험을 꼼꼼하고 세밀하게 일기를 쓰듯이 기록하고 있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읽는 느낌이 든다.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지난 세월, 잊고 잃어버린 것도 많을 텐데 어찌 이렇게 디테일한 것까지 소환해 내는지 작가의 탁월한 기억력이 놀랍다. 정녕 므네메의 여신이 도래한 것으로 다큐 에세이의 정수(精髓)를 보여준다.

그러나 한 개인의 지난 세월과 삶을 정리한다면 그것은 개인사의 기록물에 불과할 것이다. 그의 글은 물론 작가의 개인사의 회고에 바탕을 둔 글이지만 그 영역을 넘어서고 있다. 시대사를 생생히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 겪었던 6.25, 대학 시절의 4.19, 5.16 등 한국 근대사의 큰 물줄기를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 김계종의 수필집을 읽다 보면 한 편의 역사책을 보는 느낌이 든다. 전쟁과 혁명 같은 정치적 거시담론(巨視談論)뿐 아니라 의식주에서 패션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생활과 풍속을 세세히 담아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근대 정치사요, 사회 풍속사라 해도 좋을 것이다. 개인사의 차원을 넘어 사회사의 거시적 지평으로 상상력을 펼쳐 내고 있는 것이다.

다큐 에세이는 사실의 기록에 치우치다 보면 자칫 건조한 문체로 끝나기 쉽다. 그러나 『나에게 쓰는 편지』는 시적 문장으로 유려미와 서정미의 진수를 맛보게 한다. 김계종은 수필가이면서 시인이다. 그래서 므네메적 상상력을 시적 상상력으로 승화시킨다. 그야말로 시적 수필, 시수필의 경지를 펼쳐 놓은 것이다. 이효석의 명작 『메밀꽃 필 무렵』은 시로 쓴 소설이다. 이를 우리는 ‘시소설’이라 부른다. 이처럼 김계종은 시와 수필의 경계를 넘어서 ‘시수필’의 경지를 보여준다.

시적 상상력의 지평은 기욤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에서 유치환의 <행복>, 그리고 자신의 자작시(自作詩)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펼쳐지고 있다. 시의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의 수필은 아름다운 무지갯빛 광채를 띠게 된다.

벽에 걸린 시계 속 나무둥지에
뻐꾸기 한 마리 비틀어진 시간을 먹고
하늘을 꿈꾼다.
어둠 깊은 곳에서 더 이상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북받쳐 올라 목울대를 칠 때
비로소 울음이 완성된다.
(…)
부서진 날개 안간힘 다해
단 한 번의 날갯짓으로
허공을 꿈꾼다.
약속의 공간 문 닫고 들어가면
님을 향한 그리움
휘어진 공간에 시간은 강물이다.

<뻐꾸기시계>에 인용된 자작시이다. 이 시로 뻐꾸기시계처럼 꼼꼼히 살아온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서정적으로 채색된다. 아버지는 부서진 날갯짓으로 가족들을 부양하며 인생의 울음을 완성했던 것이다. 뻐꾸기시계 같은 아버지의 일생이 한 편의 시 속에 그대로 응축되어 있다.
학창 시절의 꿈과 낭만을 그려낸 <동숭동 골목길에서 길을 찾다>를 시적으로 채색한 것은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였다. 문리대와 치대 사이를 흐르던 세느강에 걸쳐 있는 미라보 다리, 그것은 작가의 청춘의 다리였고, 낭만의 가교(架橋)였다. 길을 잃은 청춘의 골목길에 희망과 꿈의 무지개가 열리던 아름다운 미라보 다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운 이여, 안녕, 설령 이것이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음으로 진정 행복하였노라’(유치환, <행복>)는 시구는 자식들에게 죽기 전에 남긴 유서(<편지 같은 유서>)의 의미를 더해 주고 있다. 너희들(자식들)을 사랑했음으로 내 인생은 진정 행복했다는 아버지의 진솔한 고백이 드러난다. 이러한 시적 수필은 <굿바이 패티킴>은 신석정의 <임께서 부르시면>, <세실리아에게>는 김남조의 <겨울바다>로 확장된다.

자작시도 많이 쓰고 있는데 <소공동 거리>, <열린 뜻>이 대표적이다. 때로는 고려가요 <청산별곡>을 차용하여 <군포별곡>(<슬기로운 군포생활>)을 쓰기도 한다. <청산별곡>의 초월적 삶을 <군포별곡>의 자연친화적 삶에 오버랩시키고 있다. <호랑나비>는 손가락에 잡힌 호랑나비의 생(生)과 사(死)의 극단적 체험을 시적 상상력으로 풀어내고 있다. <호랑나비>는 단순한 산문이 아니라 작품 전체가 한편의 산문시다. 이처럼 『나에게 쓰는 편지』는 시적 수필, 수필시의 오묘한 경지를 보여준 수작(秀作)이다.

김계종의 므네메적 상상력은 디테일한 필사력, 탁월한 묘사력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 현미경을 들이대듯이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관찰과 묘사가 돋보인다. 마이크로스코프(microscope, 현미경)적 상상력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독자들은 실감나게 작가의 상상력 속에 빨려든다. <굿바이 패티킴>은 패티킴의 공연 장면이 치밀하게 묘사되어 마치 무대 현장에 서 있는 느낌을 준다. 녹화된 필름을 재생하듯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이다.
<동숭동 골목길에서 길을 찾다>는 대학시절 하숙집이 있던 동숭동의 골목길 추억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어찌 그리 골목길 풍경을 세밀하게 그려내는지 실로 작가의 기억력이 감탄스럽다. 찻집이 있던 명동거리의 묘사는 또 어떻던가. 이는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젊은 시절에 대한 애정이 빚어낸 추억의 산물일 것이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는 치밀한 필사력 덕분에 정말 걸어서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고, <한 장의 사진>은 독자가 치과의사가 되어 축구선수 차범근의 치아를 치료하는 실감을 갖게 해 준다. 이러한 작가의 마이크로스코프적 필사력(筆寫力)으로 그의 개성적 양식인 다큐 수필이 빛을 발한다.

『나에게 쓰는 편지』는 작품 도처에 적절한 에피그램(epigram, 警句)을 구사함으로써 주제의 심화와 독자의 공감대를 넓혀주고 있다. 대부분의 작품에 주제에 걸맞은 에피그램 한 편씩을 담아 놓고 있다. 대부분 철학자나 성경, 불전(佛典) 등의 구절을 차용하지만 그것을 작가의 사상과 신념으로 전이(轉移)시키기도 한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유명한 명제를 ‘너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는 경구로 변전시켜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자는 남을 사랑할 수 없다’로 승화시키고 있다.(<나를 사랑하자>)
‘여행은 새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라는 프루스트의 말(<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을 ‘여행은 용기 있는 자만이 맛보는 별미’요, ‘내 삶을 깨닫게 해주는 삶의 조미료’로 해석한다. 명사(名士)의 에피그램이 작가의 명언으로 재탄생되는 것이다. 풀잎에 젖은 이슬 같은 초로(草露) 인생, 구름처럼 떠가는 부운(浮雲)의 생(生)을 ‘너희는 잠깐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니라’는 성경 말씀으로 변형시키기도 한다.(<편지 같은 유서>)
때론 작가 자신의 에피그램을 동원하기도 한다. 여행은 돌아갈 집이 있어서 즐거운 것이라는 역설적 에피그램은 실로 감동적인 명구다. 나이 먹고 늙어가는 인생을 ‘백발은 인생의 면류관’(<치과의사의 백발>)으로 비유하기도 하고, ‘웃음은 명약이다’(<웃음치료>)로 명약보다 값진 웃음의 의미를 부각시킨다. 인생길은 골목길인 만큼 선택한 골목길에서 최선을 다함이 인생의 의미임을 깨닫게 해준다.(<동숭동 골목길에서 길을 찾다>)
‘고해의 인생에서 나를 참고 견디게 해 준 것은 사랑이다’(<나에게 쓰는 편지>)는 인생에서 사랑의 절대적 가치를 부각시킨다. ‘인간은 너를 통한 나, 나를 통한 너의 의미 속에 살고 있다’는 표현도 의미심장하다.
이처럼 『나에게 쓰는 편지』는 경구의 적절한 배치와 운용으로 작품의 주제를 심화시키고 작가의 신념을 강화시켜 ‘에피그램 수필’의 신경지를 펼치고 있다.

『나에게 쓰는 편지』는 자전적 에세이다. 회고적 에스프리로 구축된 ‘기억의 집’이다. 80여 년 살아온 김계종의 인생여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친구, 연인들의 이야기도 있지만 가족사적 기록이 주종을 이룬다. 6.25를 치렀던 소년시절에서 중고등 시절, 대학 청년기, 군복무, 치과의사로서의 삶, 시인, 수필가로서의 노년기의 일화가 연대기처럼 펼쳐진다. 그야말로 자신의 인생을 정리한 자전적 에세이다. 이 책 속에는 3남 3녀의 맏아들로서 살아온 한 사람의 생애가 그대로 녹아있는 것이다.
<꽈배기>는 공무원이던 아버지가 직장을 잃고 사업에 실패하면서 겪어야 했던 가족들의 고난을 생생히 그리고 있다. 오빠를 위해 공부 잘하던 누이가 대학을 포기하고 희생해야 했던 이야기는 비극적 감동을 준다. 꽈배기처럼 인생이 꼬여버린 가족, 누이동생의 한 맺힌 삶이 생생하게 기술되고 있다. 유년기에 맛있게 먹던 꽈배기가 인생의 쓰디쓴 꽈배기로 다가올 줄은 누가 알았던가.
<내 문학의 시원(始原)을 찾아서>는 작가의 문학적 원동력이 일기쓰기에 있었음을 밝힌 글이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일기를 쓴다는 자체가 감동적이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이 글에서는 6.25 때 피난살이 했던 고달픔이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 고난이 어찌 작가의 개인적 고난이었으랴. 전쟁을 치른 우리 민족의 생채기요, 고통이었다. 대학시절 겪은 4.19, 5.16의 역사적 현장도 낱낱이 기술된다.
<끽연과 금연>은 작가의 취미였던 담배피기로 인생사를 풀어 놓은 글이다. 30년 가까이 피웠던 담배는 작가의 반려요, 연인이었다. 담배는 청년기의 고뇌와 번민을 풀어주고 의사로서 피로와 의무감을 달래주는 위무제요, 안정제였다. 하지만 환자들을 위해 단호히 금연을 결심한다.
금연에 성공한 기쁨을 그는 ‘예수님의 부활’로 비유하고 있다. ‘치료 대신 환자의 고통과 벌거벗은 순수한 정을 배워야 한다’는 의사로서의 신성한 책무를 깨달았던 것이다. 담배로 환자를 괴롭혀서는 안 된다는 자기각성이었다. 그런 점에서 끽연과 금연은 그의 인생사에서 획시기적인 사건이었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는 치과의원을 개업한 후의 삶을 정리한 글이다. 특히 36년간 공들여 이끌어온 동기들 모임인 ‘거상회’의 재미있는 일화들이 펼쳐진다.
<동숭동 골목길에서 길을 찾다>는 대학시절의 추억여행이다. 고뇌와 번민으로 점철됐던 청춘의 방황을 꼬불꼬불한 골목길에 의탁하여 기술하고 있다. 고뇌와 번민의 청춘기지만 그래도 세느강 변에 핀 노란 개나리처럼 희망과 낭만도 있었다. 누구나 겪게 되는 청춘시절의 방랑과 방황, 작가 역시 그런 통과제의(通過祭儀)를 겪었던 것이다. 젊은 회색인으로 살아가며 세느강, 미라보 다리를 배회하던 작가의 학창 시절의 모습이 떠오른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 우리들의 사랑도 흐르네 / 기쁨은 늘 슬픔 뒤에 오는 것…”이라는 아폴리네르의 시구는 그에게 마음의 어둠을 걷어내는 카타르시스(catharsis)였다.
<편지 같은 유서>는 동생과 함께 한 인생의 고락(苦樂)을 그리고 있다. 가출, 고통스런 군복무 시절, 돈이 없어 탤런트를 포기해야 했던 일, 공장을 차려 행복한 삶을 꾸렸으나 끝내 화재로 짧은 삶을 마감해야 했던 동생의 파란만장한 삶이 영화 장면처럼 펼쳐진다.
그밖에 용돈에 얽힌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아버지의 용돈>, 치과의사가 되기 위한 과정과 일화를 담은 <진료 약속부>, 의사, 합창단원, 시인의 삶을 살게 된 인생 회고사 <삼모작>이 있다. 심지어 중3 때 친구들이 써 준 ‘메모리’도 그대로 실려 있다. <세실리아에게> 역시 ‘BELL’이라는 필명으로 연인에게 써 준 편지다. 이처럼 『나에게 쓰는 편지』는 다큐 에세이의 정수를 보여준다.

한 사람의 인간과 인생을 허물없이 진솔하게 만난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작가가 말했듯이 ‘나는 너를 통해, 너는 나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쓰는 편지』를 통해 우리는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고, 내 삶을 정리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작가의 진솔한 삶의 고백을 통해 생의 한가운데서 배회하는 내 삶을 되돌아보는 자기성찰의 계기를 갖는 것이다.
김계종은 다큐 에세이, 마이크로스코프적 필사력, 므네메적 상상력, 에피그램의 활용, 시적 산문을 통해 수필 양식의 신경지를 개척한 수필의 선구자다. 동시에 우리에게 인간은 무엇이고, 삶이 무엇인가 하는 존재론적 깨달음을 현시(顯示)하고 있는 철학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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