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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91186639900
· 쪽수 : 284쪽
· 출판일 : 2019-01-10
책 소개
목차
야음을 틈탄 소년의 발걸음에 대한 보고서_ 이은선
공장 신문
공우회工友會
남편 그의 동지
물
남매
처를 때리고
소년행少年行
가애자可愛者
무자리
녹성당綠星堂
이리
길 위에서
김남천 연보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공장 신문
“여러분! 파업 때에 들어준 그나마 몇 조건까지 지금에는 하나도 지키지 않는 고주들의 행동을 보시오! 우리들은 종살이가 하기 좋아서 매일매일 냄새나는 고무를 만질까요?”
“결코 아니오.”
가늘고 높은 여직공의 목소리가 날 때에는 조금씩 웃는 사람이 있었다. 관수는 군중을 쭉 한번 살폈다.
“우리는 굶어 죽지 않으려고, 살기 위해서 일하는 거요!”
못을 박듯이 힘을 주어서 뚝 말을 끊고 그는 다시 군중을 살폈다. 군중의 얼굴에는 붉은 기운이 띠었다. 저편 사무실 문 앞에 있는 재창이의 얼굴을 보고 침을 한번 삼키고 다시 말끝을 맺었다.
“우리가 지금 아무 대책도 생각지 않는다면 고주들은 하나씩 하나씩 우리들의 이익을 뺏어서 갈 것이외다!”
처를 때리고
이놈 네 피를 뽑아 풀어봐라. 그 피가 무엇으로 뛰고 있는가. 누구 때문에 아직도 피가 네 몸에 돌고 있는가.
누가 너를 옥중에서 구해냈노. 네가 감옥에 있는 동안 육 년이란 허구헌 날 너는 그래도 전보질을 해서 나를 부르더구나. 차입두 날보구 시키더구나.
네 집에선 그때 돈 한 푼 보탠 줄 아냐. 영감두 할미두 네 본계집두 그때만은 아는 척도 안 하드구나.
친정에서 친구들한테서 별별 굴욕을 겪어가며 너에게 옷을 대고 밥을 대고 책을 대는 동안 네 영감은 아들이 옥에 간 건 그 몹쓸 년 탓이라구 물을 떠놓고 빌더라더라. 어서 그년이 죽어야 아들이 화를 면한다구. 그래두 그런 소리두 내겐 내겐 우스웠다. 난 너를 구해내려구 뼈가 가루가 되도록 미친년같이 헤매었다. 그래 지금 와서 그 보수로 나는 너한테 헌신짝같이 버림을 받어야 하느냐.
너한테 십 년 동안 뼈가 가루 되도록 해 바친 게 죄가 돼서 이년 소리를 듣구 더러운 욕을 먹어야 되니. 입이 밑구멍에 가 붙어두 그런 말은 못 하는 법이다. 입이 열 개래두 그런 수작은 못 하는 법이다.
무자리
“아이 애비는 뭘 하는 사람이냐?”
한참 만에 다시 어머니의 묻는 말이다. 사실 아이를 배어서 이미 넉 달이 지낸 바엔 그 아이의 아빠가 누구인 것을 아는 것이 어머니에게는 제일 긴요하였다. 물론 어디 사람인데, 성은 무엇, 이름은 무엇, 본은 어디 하고 묻는 것이 아니다. 그런 건 아무 소용이 없다. 직업이 뭐냐 좀 더 뾰죽하게 털어서 말하자면 부자냐 가난뱅이냐, 돈냥이나 실히 낼 사람이냐가 궁금한 것이다. 어머니의 간단한 물음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다.
담홍이도 어머니의 묻는 뜻을 지나치게 잘 안다. 그러므로 이러니저러니를 길게 늘어놓는 것이 아무 소용도 없는 것, 그리고 긴요한 것을 말하지 않고 딴 변두리를 빙빙 돌았자 어머니의 속만 더 클클하게 할 것을 잘 알고 있다. 한참 만에 제가 제 자신을 비웃기라도 하는 어조로,
“돈 낼 만한 사람 같으면 고리짝 싸가지구 왔겠수.”
이 한마디는 모든 것을 설명하고, 해석하고, 결단 지었다. 전보 친 뒤부터 자꾸만 뒤틀려 나가던 담홍이에 대한 예측이 지금 이 한마디로써 그 전부가 설명된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말이 가져오는 타격이 그들에게는 한없이 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