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6963753
· 쪽수 : 328쪽
· 출판일 : 2026-01-31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며
미국 북동부, 워싱턴DC, 버지니아주, 메릴랜드주 지도
1부 사랑꾼 주한미군 제프
붉고 푸른 청춘 이야기
첫사랑, 세상이 온통 빛나던 계절
어느 봄날 밤, 월든 호수의 풀벌레 소리
중요한 건 타이밍이야
소설처럼 다가온 운명의 장난
벚꽃 휘날리던 날, 재스민의 향기
비로소 의미를 알게 된 어린 시절의 가난
우리에게도 좋은 날이 오겠지? 아니, 올 거야!
미국 와서 마주친 아버지의 무기력
군대 가기 너무 이른 열일곱 살이었지만
아버지에게 보낸 첫 월급
미군 생활 중에 겪은 두 번의 주먹다짐
양미리 반찬과 바꾼 리바이스 양털 청재킷
데릴사위가 될 수는 없다
어머니의 반대로 실패한 첫 번째 연애
어머니에게 선물한 차마 버릴 수 없었던 반지
흑목련 여인에게 바친 열두 송이 분홍 장미
흑인 사회 속 한인 이민자의 눈물겨운 노력
주유소 털이 권총강도 신고 포상금
위기에 몰린 동네 양아치와의 대결
택시 드라이버, 워싱턴DC 뒷골목에서 잭나이프와 맞서다
2부 워싱턴DC의 경찰관 제프
속절없는 어느 계절의 이야기
택시 드라이버에서 알링턴 보안관으로
6킬로미터 눈길을 헤치고 들은 말, 두셋 다람
알링턴 보안관에서 워싱턴DC 경찰관으로
차이나 갱단 소굴에 언더커버로 잠입하다
모든 영웅은 죽었다
에이즈에 희생된 나의 파트너 스콧
삶과 죽음을 가르는 다리 위에서
영웅을 보여주면 비극을 보여주겠노라
주머니 속 케네디 은화에 담긴 빛바랜 슬픔
책상 속에 잠든 아버지의 브레게
모래시계는 저절로 뒤집어지지 않는다
자살의 순간에 떠오른 그 아버지의 말, 못난 놈
감옥에서 올려다본 크리스마스의 함박눈
3부 알링턴의 세탁 사업가 제프
뚜벅뚜벅 걷는 인생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
첫 와이프와의 이혼, 일과 사랑의 아이러니
잘못 탄 버스에서는 내려서 다음 버스를 기다리자
부업에서 본업으로 바뀐 세탁 사업
제프의 세탁업 노하우, 차곡차곡 돈을 벌다
사랑하는 타이밍은 바로 지금이다
모든 아내는 명품이며 진품이다
이제야 알게 된 여성들에게 빚 진 나의 삶
아내는 천재인 것이 분명하다
한인세탁협회장으로서 본 세탁업계 현실
유대인들의 사업 영역을 이은 한인 사업가들의 생명력
워싱턴DC에 내 땅 한 조각 얻기 위해
CDL 트럭운전학교를 시작하며
당신에게는 수면 아래 잠수함처럼 잠재력이 있다
내 심정을 대변했던 나의 18번 변천사
바둑과 인생을 이끌어 낸 신의 한 수
나가며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그 뒤쪽으로 대로의 중앙선 노란 두 줄을 밟으며 걸어오던 긴 코트를 입은 용의자가 포어 경관을 향해 산탄총(Double Barrel Shotgun)을 정조준하며 총을 쏘았다. 그가 탄 경찰차의 사이드 미러(Side Miror)가 박살이 나면서 공중에 파편이 날았다. 범인의 총구에서 흰 연기가 나오는 사이에 그는 다시 여유 있는 동작으로 탄알을 재장전했다. 영화에서 익히 보던 장면이었다.
머리털이 쭈뼛 솟고 심장은 가슴 밖으로 이미 나온 상태였다. 나는 권총 글록19(Glock19)를 오른손에 거머쥔 채 왼손으로는 나를 향해 달려오는 아이들을 경찰차 뒤로 피신시켰다. 포어 경관이 차 문 뒤에 숨어 나를 쳐다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와 포어 경관은 좌우로 30여 미터 간격에 있었고 범인은 우리 앞 60여 미터 정도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범인은 산탄총에 탄알을 장전한 후 노란 중앙선 라인을 걸으며 좌우로 대치한 우리를 향해 총알을 한발씩 쏘아댔다. 고막을 찢는 듯한 총성에 내 차 뒤에 숨어있던 아이들은 괴성을 지르며 공포에 떨었다.
영화에서 총을 한 방 맞은 사람이 곧바로 쓰러지는 장면이 얼마나 새빨간 거짓말인지 알게 되었다. 나와 포어 경관이 쏜 탄알에 맞은 그의 가슴에서 작은 연기가 피어오름에도 불구하고 범인은 쓰러지거나 멈추지 않았다. 혹시 방탄조끼를 착용했나 싶어서 무릎 부위를 쏘기도 했다. 결국 범인은 검은 아스팔트 위로 쓰러졌다. 이 모든 과정이 단 1,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은
범인의 손에서 총을 걷어낸 후 그의 목에 손을 대어 생사를 확인했다. 그의 눈동자에서 마지막 빛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옆에 서 있던 포어에게 “괜찮아?”라고 물으니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파편에 맞은 오른쪽 이마에서 가느다란 핏물이 흐르고 있었고 목줄기까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그의 이마를 가리키자 포어 경관은 “It‘s nothing(아무렇지 않아요).”라며 손으로 피를 훔쳤다.
그렇게 정신없이 현장 수습을 하는 사이에 육중한 체구의 여인이 모여든 사람들의 말리는 손을 뿌리치며 도로에 누워 있는 범인에게로 달려왔다. 그녀는 바닥에 엎드려 오열했다. 죽은 자의 어머니였다.
“니가 내 새낄 죽였구나.”
방망이질을 하듯 몇 번이고 내 가슴을 내려치던 그녀의 주먹이 왜 아프지 않았을까? 그렇게 여러 번 되풀이하던 손에서 점차 힘이 빠져나간 그녀는 내 품에 기대어 울었다.
“마약하기 전까지는 착했던 아이였어.”
은행 뒷문 쪽에 도착했을 때는 범인 한 명은 아직 은행 내에, 다른 한 명은 도주 차량에, 또 한 명은 은행 입구에서 망을 보고 있었는데 나와 맞닥뜨린 것이었다.
6연발 38구경 스미스앤웨슨 리볼버(Smith and Wesson Revolver)를 뽑아든 나를 보자 차에 있던 범인이 동료들을 버리고 혼자 달아나 버렸다. 급히 무전기로 차량을 동료들에게 알리는데 은행 입구에서 망을 보던 녀석이 당황하며 말로가구(Marlo Furniture) 상점 쪽으로 달아났다. 그 역시 검은 리볼버 권총을 들고 있었다.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문 앞에서 도주용 차를 찾고 있는 순간 뒤에서 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경찰이다. 총을 놔.”
범죄 영화를 너무 많이 본 녀석은 내 명령에 전혀 개의치 않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도망자의 발은 추적자의 발보다 빠르다.
“거기 있는 거 안다.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천천히 나와라.”
내가 소리쳤는데 거의 동시에 범인이 용수철처럼 튀어나오며 그의 장총이 불을 뿜었다.
당신은 총을 맞아본 경험이 있는가? 화상을 입는 기분이었다. 오른쪽 무릎이 뜨끈했다. 반자동적으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방아쇠를 당겼지만 녀석은 구부러진 골목 귀퉁이를 돌고 난 후였다.
그러나 그가 골목 끝에서 마주친 것은 자유가 아닌 나의 용감한 동료들이었고 다리를 절면서 뒤따라간 나는 결국 현장에서 범인을 체포했다.
나는 근무 중에 모두 세 번 병원 신세를 졌는데 이 사건이 그중 첫 번째였고, 그나마 가장 경미한 부상이었다. 범인 세 명은 모두 체포되었고 그들은 법원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3개월 후 나는 동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경찰국장 최고 훈장을 받았다. 2개월 후에는 포상금 수표가 도착했다며 서장이 내게 건네주었다. 포상금 액수를 본 선배 힐레개스는 내 어깨를 툭 치면서 “영웅이 되면 안 된다고 말했잖아.” 하며 복도를 걸어갔다.
당시 정부로부터 받았던 포상금은 38달러50센트였다.
한 손으로 방어를 했지만 아버지의 편견에 찌든 분노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얻어맞는 것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아버지의 비이성적인 폭력도 마음 아팠지만, 크게 당황하는 재스민의 낙심에 더 크게 내 마음이 부서졌다. 그런데 아버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재스민의 머리 위로도 빗자루 세례를 퍼부었다. 당황을 넘어 황당한 순간이었다. 그냥 죽고 싶었다. 나는 분노가 치밀어 아버지 손에 든 빗자루를 빼앗으려 했다. 아버지 역시 순순히 빗자루를 내줄 마음이 없었다. 나는 재스민의 손목을 거머쥐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항상 순수하고 맑은 재스민의 눈동자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둑이 무너지듯 넘쳐흘렀다. 그녀는 온통 얼굴이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채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 처절했다. “제프, 내가 피부를 탈색할게. 나 한국 여자 될게.” 복받치는 감정에 그녀의 어깨는 좌우로 비틀댔고 그러는 그녀 몸을 강하게 부둥켜안고 같이 울었다. 수치심과 분노, 미안함과 자괴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특히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며칠을 차에서 잘 수밖에 없었다. = 중략 =
세월이 제법 흘러 그녀와 이별한 지 10년이 지난 1991년. 나는 이미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지하방을 썼는데 아침 일찍 출근하는 분이 그날따라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걱정돼서 방문을 여니 방바닥에 주저앉아 바닥에 있는 피를 훔치고 있었다. 얼굴이 창백했다. 밤새 목에서 피가 올라왔다고 했다. 급히 휴가를 얻어 조지워싱턴 대학병원으로 달려갔다. 아침햇살이 병실로 스며들었다. 운명의 날답지 않게 고요하고 찬란했다. 혈액전문의 선생님은 아침이 다 가도록 병실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간호사를 대동한 의사 한 명이 입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재스민…’ 깜짝 놀랐다.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의사 가운을 입은 혈액전문의가 바로 재스민이었다. 입원실 문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없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