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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87199557
· 쪽수 : 356쪽
· 출판일 : 2016-08-20
책 소개
목차
step. 01 절교 선언. 이제 우린 친구가 아니야
step. 02 내 친구가 달라졌어요. 어떻게 하죠?
step. 03 아직도 내가 네 친구로 보여?
step. 04 내 친구가 남자로 보여
step. 05 친구와 연애하는 방법
step. 06 내 친구,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
step. 07 친구와 영원히
외전. 01 친구와 함께하는 새로운 나날
외전. 02 나와 친구의 신혼일기
외전. 03 나와 친구와 아이들과
외전. 04 내 친구가 여자로 보여
작가후기
리뷰
책속에서
“내가 너한테 못되게 굴었다고?”
“그래! 너 진짜 못됐어!”
“말은 똑바로 해. 네가 훨씬 더 못됐어.”
황당함에 프리지아의 말문이 덜컥 막혔다. 억울해도 이렇게 억울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아니, 이렇게까지 자기를 챙겨주는 친구가 세상에 또 어디 있다고 나를 못된 사람 취급해?
“내가 왜! 내가 뭘 어쨌는데! 나만큼 너한테 잘해주는 애가 어디 있다고!”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분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반쯤 덮고 있던 이불을 홱 내던지고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소리쳤다. 그 바람에 무릎 위로 간당간당 걸쳐 있던 잠옷 치마가 한차례 크게 펄럭이며 더 높이 올라갔다. 순간 문가에 서 있던 시어드릭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훤히 드러난 다리뿐만 아니라 얇은 잠옷 아래로 속살이 비칠 듯 말 듯 한 것이 시야에 박혀들었으나 프리지아는 씩씩거리느라 여념이 없어 제 옷차림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아니, 굳이 그런 이유를 댈 것도 없이 눈앞에 있는 상대가 그이기 때문에 몸가짐을 조심히 하지 않는 것일 테다. 어릴 적부터 가족처럼 한집에서 살아온 시어드릭이기 때문에.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인지한 순간 그는 더 참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 넌 멍청하니까 하나하나 차근히 일러줬어야 하는 건데. 그렇지?”
시어드릭이 눈동자를 갸름하게 접으며 빈정거리듯 웃었다.
그에게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어두운 기운이 솔솔 피어오르고 있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난기류를 읽어낸 프리지아가 섬뜩한 느낌에 흠칫 몸을 떨었다.
“그렇게 원한다면 내가 알려줄게. 네가 얼마나 겁 없는 멍청이인지.”
다가오는 발걸음에 프리지아의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었다. 뭔가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것만 같은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아무리 굴려 생각해봐도 그녀가 잘못한 것은 없었다. 그래서 어디 올 테면 와보라는 양 고개를 빳빳이 들고 눈을 치켜떴다.
하지만 그 패기는 시어드릭이 그녀를 침대 위에서 내리누르는 순간 너무도 빠르게 수그러들고 말았다. 가까이에서 스산한 광채를 발하는 눈동자에 가슴 한구석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이 상황을 회피하는 길을 택했지만, 어깨 옆으로 뿌리 내린 팔에 가로막혀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녀의 긴장한 숨결이 닿는 거리에서 시어드릭이 프리지아를 유죄라 심판했다.
“네 잘못은 날 너무 우습게 봤다는 거야.”
“내가 언제?”
당연하게도 프리지아는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말을 더 들을 가치조차 없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시간에 이런 차림으로 내 방에 와서 내 침대에 누워 있기까지 한 너를.”
시어드릭의 젖은 머리카락이 프리지아의 이마를 간질였다. 지척에서 마주친 눈동자가 왜인지 낯설었지만 그 연유를 알 수가 없었다.
“설마 내가 가만히 내버려둘 거라고 생각했어?”
속삭이는 음성을 따라 흘러나온 숨이 얼굴에 스쳤다. 손이 닿지 않는 어딘가를 모기에 물리기라도 한 것처럼 따끔거리게 간지러운 기분이었다. 하지만 혼란스러움도 잠시뿐, 프리지아는 슬그머니 마주한 시선을 피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 그럼 어쩌겠다는 건데? 지금 날 때리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눈앞의 모양 좋은 입술 사이를 비집고 새어 나온 옅은 실소가 그녀의 앞머리를 흐트러뜨렸다.
이상했다. 시어드릭이 원래 저런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던가.
“어차피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넌 그대로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을 테지. 넌 약하니까. 가령 내가 이런 짓을 해도.”
그의 손이 느리게 움직였다. 잠옷의 가슴 부분을 여미고 있는 리본을 휘감는 긴 손가락에 프리지아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시어드릭이 그것을 그대로 잡아당기자 봉긋한 곡선을 띤 살결이 너무도 쉽게 드러났다.
“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거지.”
그 일련의 과정을 손 놓은 채 멍청히 지켜보고 있던 프리지아는 당연히 기겁했다.
“뭐 하는 거야? 그걸 왜 풀어!”
작살 맞은 고기처럼 파드득 널뛰는 프리지아를 보면서도 시어드릭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화들짝 놀라 뒤로 물렀으나 푹신한 베개에 몸이 더 깊숙이 파묻힐 뿐이었다. 그리고 그 눈곱만큼의 거리감마저도 시어드릭이 딱 맞붙은 몸을 조금 더 가까이 밀착시키자 다시 원상복귀가 되었다.
“비켜.”
당황한 프리지아가 맞닿은 몸을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시어드릭의 손이 강한 악력으로 그녀의 손목을 침대 위에 고정시켜버렸다. 너무도 간단히 수포로 돌아간 시도에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였다. 기를 쓰며 팔을 빼내려 했지만 시어드릭의 손은 돌덩이라도 되는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동요를 감추지 못한 눈동자가 시어드릭을 찾아들었다.
두 사람이 시선을 이렇게까지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하는 것은 열다섯 살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의미로 그때와는 상당히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단단한 허벅지가 다리 사이로 파고드는 느낌에 프리지아는 바싹 굳어버렸다. 더운 숨이 쇄골을 긁는 감촉이 오묘했다. 긴장하고 있는 그녀를 놀리듯 가슴골을 대놓고 훑는 시선에 뺨이 뜨끈하게 달아올랐다.
“네가 싫어하는 일을 내가 절대로 하지 못할 거라고, 그렇게 확신해?”
속삭이듯 읊조려지는 목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드러난 가슴 위로 날카로운 콧날이 닿는 순간 프리지아는 훅 숨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그런 반응조차 즐기는 것처럼, 하얀 언덕 위에 닿을 듯 말 듯 잠시 머물던 축축한 숨결이 이내 경직된 목선을 타고 올라갔다.
“내가 언제까지나 착하고 순진한 예전의 그 친구일 거라고, 넌 그렇게 믿고 있지.”
시어드릭은 명백히 그녀를 비웃고 있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친구의 낯선 모습에 프리지아의 눈동자가 당혹감으로 흔들렸다.
“그래서 네가 멍청하다는 거야.”
한 음절씩 끊어 내뱉는 말이 가차 없이 심장에 박혀들었다. 그러나 사실 프리지아는 귓가에 흘러드는 냉정한 말보다 오히려 다른 것에 더욱 신경이 쏠렸다. 벌려진 다리를 오므리지 못하게 막고 있는 굵직한 허벅지나, 반쯤 드러난 가슴을 짓누르는 딱딱한 상체, 그녀의 손목을 옭죄고 있는 뜨거운 손 같은…….
이게 뭐야? 난 이런 거 몰라.
이런 건 그녀가 아는 시어드릭이 아니었다.
“넌 스스로가 얼마나 지독한 여자인지도 모르지.”
지척에서 들려오는 낮은 속삭임에 솜털이 곤두서면서 심장이 크게 펄떡거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는 눈동자는 사랑스러운 무언가를 바라보는 사람의 것 같기도 했으나 그의 목소리만큼은 냉소가 섞여 싸늘했다.
“잘 들어.”
이 모든 상황이 너무도 혼란스러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내보여야 할 반응을 굳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네가 입만 열면 말하는 그 지겨운 친구.”
왜냐하면 뒤이어 들려온 말에 머릿속이 새하얘져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딴 거 나 이제 안 해.”
시어드릭은 얼어붙은 프리지아를 향해 그렇게 통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