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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91187433040
· 쪽수 : 296쪽
· 출판일 : 2017-01-11
책 소개
목차
새로운 세상으로
멀고도 힘든 과거급제의 길
율수현의 현위가 되어
소금장수 왕선지, 천보평균대장군
종남산에 들다
적진으로 떠난 여인이 보내온 소식
황소를 격분시킨 치원의 격황소서
신라로 돌아온 치원, 참혹한 실상을 보다
퇴진 압박받는 진성여왕과 귀족들의 견제받는 최치원
실행 안 된 시무십조(時務十條), 다시 그의 길을 떠나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멀리서 출항을 알리는 호각소리가 들렸다. 늦은 밤부터 내리는 듯 마는 듯했던 가을비가 완전히 걷혀 사방의 빛깔이 선명했다. 치원은 뱃머리에 짐을 부리는 선원들을 눈으로 좇으며 견일에게 물었다.
“영암포구까지는 얼마나 걸린다고 하셨지요?”
“검이 어찌 만들어지는지 아느냐?”
“잘 모르옵니다.”
“천 번, 만 번을 두드려 만든단다. 쇳물을 녹여 시뻘겋게 달궈 두드리다가 한참 열이 올랐을 때 찬물에 담구기를 반복하지. 불순물이 들어가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거나 찬물에 담갔을 때 깨지면 그대로 버려지게 된단다. 아픔과 슬픔, 방황과 고통이 밀려와도 버티고 또 버텨야만 좋은 검이 되는 것이다.”
치원은 아버지의 말을 곧 이해했다. 자신에게 지워진 짐의 무게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수천 번의 두드림이 끝난 후엔 벼리는 일이 시작된다. 서둘지 말고, 일정한 속도로 슬슬 갈아야지만 곧게 빛나는 보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너도 그렇다. 외로운 담금질을 하고, 쓸쓸한 벼리기가 끝나야 보물이 되는 것이다. 아비의 보물이자, 신라의 보물 말이다.”
치원은 견일의 말에 단검을 물끄러미 보기만 했다.
“쉽지 않을 것이다. 분명 힘든 시간이 될 것이다. 그래도 흔들리지 말고, 너는 한 점 구름처럼 유유히 네 길만을 가거라.”
“구름처럼….”
말의 힘은 무서운 것이어서, 치원은 ‘고운’을 호로 쓰고 난 후로 모
든 일에 달관한 듯 유유히 살기 시작했다. 그는 두렵고 우울했던 시
간들은 혼자만의 것으로 묻어둔 채 국자감에 입학해 스스로 떳떳한
실력이라 여겨질 때까지 빈공과에 응시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8세가 되는 874년, 마침내 빈공과에 단번에 합격하는 쾌거를 이루
게 되었다. 그는 그 모든 것이 애란과 아버지의 힘이라 생각했다. 가장 먼저
합격 소식을 알리고 싶었던 두 사람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애란과는 어느 순간
연락이 끊겨 버리고 말았다. 세상 곳곳을 다니는 여인이었기에
지금쯤 어느 나라에 있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