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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88903863
· 쪽수 : 118쪽
· 출판일 : 2021-11-30
책 소개
목차
1부
나팔꽃
염소 별자리
파도 여인숙
툇마루 햇빛 구경
엄마 잔소리
분홍빛 바람
누나 얼굴
편의점 눈동자
고양이 라면
심야 영화
느리게 걷는 고양이
서정시의 시간
영통 당산나무의 영혼
서해바다를 지팡이로 적셔 보다
2부
물방울 관음
바보 문답
붉은 눈꽃 호랑이 눈동자
선승의 절벽
경사진 능선 너머
비탈길
요령 소리
부채를 들면
불어라 산바람
유체이탈
가랑잎 부처
에밀레종
불타지 않는 혀
맨발의 쪽배
어머니 범종소리
3부
검은 거미의 사랑 노래
여백의 숨소리
서정적 인간
황야의 별들
낙뢰의 푸른 불꽃들
가을햇빛
지구별 시인
바다를 잃어버린 소년
한 줌 흙
모래 그림자
슬픔을 모르는 사람
수원 남문 돌계단 햇살
붉게 달아오른 찐빵 얼굴
차 없는 공방거리
버스들이 숨을 멈출 때
4부
구름옷 풀꽃 냄새
백지 인간
물 아래 그림자
대구 꼬리 봄바람
산죽나무 뒷모습
생의 날들은 도다리 한 접시
황금빛 돛배
산등성이 다람쥐
정조와 연산군의 시편을 읽으며
박쥐 인간들
등신 하나가 앉아
나미브 사막의 풍뎅이
철새들의 장엄한 투혼
치명적인 죄명
해설 | 맨발의 쪽배로 건너는 구도의 바다 | 이승원
저자소개
책속에서
어린 시절 새벽마다 콩나물시루에서 물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웃집에 셋방살이하던 아주머니가 외아들 공부시키려 콩나물
키우던 물방울 소리가 얇은 벽 너머에서 기도소리처럼 들려왔다.
새벽마다 어린 우리들 잠 깨울까 봐 조심스럽게 연탄불 가는
소리도 들었다. 불을 꺼뜨리지 않고 단잠을 자게 지켜주시던,
일어나기 싫어 모르는 척하고 듣고 있던 어머니의 소리였다.
콩나물 장수 홀어머니 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어머니 가시고 새벽마다 콩나물 물 내리는 소리 지나가고 나면
불덩어리에서 연탄재 떼어내던 그 정성스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새벽잠 자주 깨는 요즈음 그 나지막한 소리들이 옛 기억에서
살아나와, 산사의 새벽 범종소리가 미약한 목숨들을 보살피듯,
스산한 가슴속에 들어와 맴돌며 조용히 마음을 쓸어주고 간다.
― 「어머니 범종소리」 전문
석가모니는 뒤늦게 도착한 제자에게 관을 뚫고 맨발을 보여주었다.
열반에 오른 그가 다비 직전에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맨발이었다.
평생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는 그의 유언은 맨발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제자들아 맨발로 가라, 맨발 그 이상 나에게 다른 가르침을 찾지 말라.
영산회상의 꽃이 아니라 관을 뚫고 나온 맨발은 망망대해의 쪽배 같아서,
열반으로 가기 직전 석가가 보여주었던 맨발의 길, 구도자는 그 맨발로
어떤 스승도 없이 화탕지옥의 불길을 헤치고 생의 마지막까지 가야 하리.
― 「맨발의 쪽배」 전문
탁발 나가 개망초 적적한 절에
천둥 치고
밤새 비바람 불었다
성난 고래 물살
산간 계곡
휩쓸어 바다로 나갔는데
댓돌 모서리
주인 없는 흰 고무신에 고인
모래알 물살에
문 두드리다
떠 있는
황금 가랑잎 부처
― 「가랑잎 부처」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