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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8982196
· 쪽수 : 244쪽
· 출판일 : 2018-05-22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5
1부 。
제 인생이 그렇게
슬프진 않은데요
암 환자는 서로를 닮아간다— 13
감정이입의 패러독스— 16
거울 앞에 선 동양인 볼드모트— 19
징징이를 받아주는 세상은 없다— 23
잠에서 깨면 언제나 보라색 초승달— 26
세상은 어쩐지 블랙코미디— 31
꺼져가는 조명처럼 나를 기억해줘요— 35
내 비장의 무기는 아직 손 안에 있다— 38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46
아포가토의 마음가짐— 51
안전하게 넘어지는 법— 55
무관심이 때로는 위로가 된다— 57
실험실 생쥐의 분노— 62
지구를 위협하는 악당은 항상 영어를 쓴다— 66
생각을 그만둔 사람의 하루— 69
추억은 꽃잎이 되어 흩날리고— 73
안녕? 안녕!— 76
무균실의 나날들— 81
샴푸에 치약을 섞어 먹는 느낌— 87
왜 이겨내야 하는 걸까— 90
꽃을 버리는 방법— 94
마스크를 벗는 시간 — 98
이상한 나라의 암 환자— 102
소소한 일기 ─ # 병원편 — 106
2부 。
프로아픔러가
사는 법
진주 향이 나는 첫사랑— 115
현모양처라는 꿈— 121
그녀의 연애를 응원하고 있다— 129
친구야, 사는 게 뭘까— 139
말을 조심해서 생기는 사고는 없다— 147
어떤 이가 슬플 때, 누군가는 웃는다— 153
산 자들의 위로가 오가는 자리에서— 160
모두가 모두를 잊어간다— 165
상처를 뜨거운 물로 지지면— 170
비 냄새는 어떤 냄새일까— 173
양배추 샐러드 관계— 178
잘생김은 이번 생에 과감히 포기한다— 185
멍 때리다 내디딘 삶의 한 발짝— 190
누군가의 뭔가가 된다는 것— 200
별들처럼 수많은 가능성— 206
부지런히 살 마음이 딱히 안 드는데요?— 212
살아간다는 것은 대체로 슬픈 일이다— 220
역시 말랑말랑한 것이 좋아— 227
소소한 일기 ─ # 일상편— 234
에필로그 — 241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두 달 정도 후에는 완전히 대머리가 되었다. 아니 의사 양반 이게 무슨 소리요. 내가 대머리라니. 사실 암에 걸렸다는 것보다 대머리가 되었다는 사실이 좀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유서 깊고 대단하신 안동 김씨 가문에서 대대로 물려받은 강력한 모발이 싹 다 날아가 버렸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라 했는데 조선 시대였다면 천하의 후레자식이 되어버렸겠지. 좀 억울하다. 대머리인 것도 모자라서 불효라니…….
정말 시원하게 온전한 민머리다. 밀어서 모근이 살아있는 까끌까끌한 대머리가 아니라, 모근 하나 남아있지 않은 온전한 민머리가 되었다. 처음 알게 된 사실은, 덥거나 매운 음식을 먹으면 정수리부터 땀이 흐른다는 것이다. 밥을 먹는 데 열중하다 보면 얼굴로 주르륵 떨어지며 흐르는 땀 때문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여태까지 머리에는 땀이 안 나오게 태어났다고 믿었는데.
민머리가 된 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삶은 계란이 생각난다. 항암제로 절인 계란은 아무래도 꺼림칙하지만. 그래도 정말 아무런 꾸밈없는 온전한 나를 바라보는 건 신선했다.
세상 모든 일에 백프로 나쁜 일은 없다. 눈을 가늘게 뜨고 찬찬히 살펴보면 좋은 점도 보이기 마련이다. 나 또한 새로운 장점을 찾았다. 반들반들한 민머리라서 ‘아차!!’ 같은 리액션을 할 때, 손바닥으로 머리를 “탁!” 하고 치면 “착!” 하며 감기는 느낌이 발군이다. 모근이 살아있는 까끌한 머리로는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다. 평생을 간직해온 나의 가장 부드러운 살결을 만지는 건 꽤 좋은 느낌이다.
지구가 항상 항암제로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울렁거리고 역겨워서 시도 때도 없이 토를 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내 눈알을 누른 상태로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 것 같이 시공간이 휘어졌다. 사랑과 재채기는 감출 수 없다고 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토였다. 아침에 흉부 엑스레이를 찍으러 가는 20미터 정도의 거리에서조차 항상 서너 번씩 토를 했다. 그러면서도 매일같이 새벽 5시 반마다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토를 하면서 엑스레이를 찍으러 갔다. 마치 성실한 좀비처럼.
어느 날 검사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도대체 매일 복도에다가 토하는 사람이 누구야아악!” 하며 절규하시는 메아리가 들렸다. 그 순간 부끄러움과 미안함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시도 때도 없이 토를 하니까 나중에는 위에서 초록색 액체를 꾸역꾸역 게워냈다. 마치 뱃속에서 “들어가는 게 있어야 뭘 내보내지. 이건 너무한 것 아닌가요?”라고 말해오는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몸은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들처럼 상식을 벗어났고 기묘했다. 어느 날은 뼛속의 골수까지 시려서 이불을 두 겹이나 덮고서도 벌벌 떨다가, 다음 날이면 혼자 사막 한가운데 던져진 것처럼 얼굴이 벌게져서는 식은땀을 흘렸다. 입부터 항문까지 이어지는 소화기관이 모두 망가져서 며칠을 아무것도 안 먹으며 누워 있다가도 갑자기 미친 듯이 배고파서 영양제 두 캔을 순식간에 들이켰다. 물론 곧바로 침대에 토해내서 한바탕 소동이 났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