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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불교건축의 역사

조선시대 불교건축의 역사

홍병화 (지은이)
민족사
1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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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불교건축의 역사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조선시대 불교건축의 역사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건축 > 건축이론/비평/역사
· ISBN : 9791189269685
· 쪽수 : 232쪽
· 출판일 : 2020-08-31

책 소개

국내 최초, 조선시대 불교건축사를 정리한 책으로, 전통건축 전문가 홍병화가 집필했다. 이 책은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불교건축의 역사를 시대별로 나누어 알기 쉽게 정리하고 사진자료와 삽화를 실어 이해를 돕고 있다.

목차

추천사 / 윤대길(서울시 전통사찰위원) ― 4
머리말 ― 8

15세기 불교건축
- 명분으로서의 억불과 전통으로서의 불교


• 외유내불, 명분과 습관 ― 18
• 불교와 유교의 연합, 외유내불의 불씨 ― 20
• 효와 능침사 ― 24

15세기의 배치 계획 : 능침사의 부상

• 고려 말 남중국 간화선풍의 유행과 회암사 ― 28
• 조선 초 왕실원찰의 보편성 ― 35
• 태조의 흥천사 창건과 고려의 유습 ― 36
• 진관사의 수륙사 ― 38
• 조선 초 왕실원찰의 두 종류 ― 39
• 조선 초 왕실원찰의 대표성 ― 44
• 안마당에 면한 요사의 성격 ― 49

15세기의 구조적 건축형식 : 새로운 시대의 공포, 익공

• 건축형식을 구분하는 방법 ― 52
• 공포의 독자성과 가구법의 통일성 ― 56
• 공포의 다양함은 활발한 생명력이 원천 ― 62

16세기 불교건축
- 성리학의 완고함과 불교건축의 잠재력


• 사림의 등장과 기신재의 퇴조 ― 69
• 산릉제사의 두 가지 성격과 기신제의 정착 ―71
• 과거의 지위는 잃었지만 생활 속에서는 건재한 불교 ― 72
• 문정왕후와 보우, 그리고 불교 ― 74
• 수륙재의 성행과 불교에 대한 새로운 경험 ― 75
• 조선을 전후기로 구분하는 역사적 사건,
임진년 왜구들의 침략 ― 77

16세기의 배치 계획 :사라진 시기, 미지의 공간

• 청평사와 기신재 ― 78
• 사대부들의 원찰, 분암 ― 82
• 수륙재의 유행과 중심사역 ― 88
• 문루의 초기 형식 ― 90

16세기의 구조적 건축형식 : 부족함 속에 감춰 놓은 완성된 건축

• 익공과 다포의 각축, 주심포의 퇴장 ― 94
• 동아시아 건축에서 최고의 발명품, 익공 ― 102
• 공포형식과 가구법의 상관성 ― 104

17세기 불교건축
- 후원 세력의 교체와 사회의 보수화


• 새로운 전기를 맞은 불교계 ― 108
• 재조지은의 강조와 불교의 현실적 필요성 ― 110

17세기의 배치 계획 : 능침사의 복구와 수륙재의 대유행

• 재현되는 능침사의 건축 계획 ― 113
• 기록으로 본 17세기의 대형 사찰 ― 120
• 기록으로 본 17세기 산중소찰 ― 123
• 현존하는 17세기 산중소찰 ― 128
• 대형 불전의 유행 ― 131
• 천왕문의 성행 ― 133
• 명부전, 나한전의 유행 ― 139
• 정문의 일반화 ― 141

17세기의 구조적 형식 : 새로움의 수용과 전통의 고수

• 불교건축과 관영건축의 공포 차이 ― 146

18세기 불교건축
- 문중불교의 강화와 대중불교의 심화


• 각종 역의 전가와 원당의 유치 ― 153
• 백성의 경제적 성장과 후원자의 증가 ― 157
• 법통의식의 강화와 향촌사회의 하위 파트너 ― 158
• 동원되는 승려, 충신이 된 승려 ― 160
• 화엄 공부와 불교계의 결속 ― 163

18세기의 배치 계획 : 중창의 시대

• 임란 이후의 첫 중창 ― 167
• 문루의 대형화 ― 169
• 문루와 합쳐지는 정문 ― 173
• 요사의 대형화 ― 176
• 요사의 종류 ― 180
• 새로운 대중공간의 등장 ― 183
• 안마당에 면하는 또 다른 법당들 ― 186

18세기의 건축형식 : 화려함의 극치, 날개를 닮은 공포

• 익공의 전성시대 ― 187

19세기 불교건축
- 사회적 혼란과 불교의 선택


• 극심한 혼란과 불교의 신앙적 역할 ― 193
• 활발한 보사활동과 사찰계 ― 195
• 하삼도에서 서울·경기 지방으로 ― 199

19세기의 배치 계획 : 사람들이 모이면 힘이 쌓인다

• 불교건축의 빛나는 성과, 대형요사(대방) ― 201
• 산문체계의 위축과 신중도의 유행 ― 208
• 수행보다는 신앙의 가람 ― 211
• 대중의 새로운 선택과 불교건축 ― 217

19세기의 건축형식 : 마감과 시작

• 의장보다는 공간의 건축 ― 219

찾아보기 ― 226

저자소개

홍병화 (지은이)    정보 더보기
명지대학교 산업대학원 문화재학과 석사 졸업. 연세대학교대학원 건축공학과 박사 졸업. 전국 전통사찰 전수조사 책임연구원 · 서울시 문화재위원회 건축전문위원 · 조계종 포교원 전문포교사 교수 역임. 한국의 사찰문화재 · 인각사, 태안사 등 조사 참여(2000~2003). 금강산 신계사 복원사업 건축 및 조사 실무 담당(2004~2007). 한국의 사찰문화재 발굴조사 · 제주목관아지 발굴조사 등 참여(2008~2009). 전국 사지조사 참여(2010~2013). 현재 건축사협회 실무교육 강사, 서울시 은평구 한옥위원, 건축 관련 현업에 종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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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은 신유학이라고도 불리는데 이전의 훈고학적 유학과는 달리 우주의 순리와 인간의 심성이 같은 원리로 움직인다는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일종의 사유체계로서, 종교보다는 학문에 더 가깝다.
고려가 성리학을 수용하던 시기는 불교계에서도 화두를 잡고 참선하는 간화선이 유행하였는데, 사람의 마음을 공부의 대상으로 한다는 면에서 성리학과 간화선은 유사한 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리학자들은 불교를 비판하였는데, 불교에 대한 비판은 철학적·종교적 비판이라기보다는 불교계가 사회의 주류를 구성하면서 저지른 적폐에 대한 비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차츰 불교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이어져 불교계가 저지른 잘못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 자체를 비판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할 수 있다.


성리학을 공부한 신진사대부와 외적에 맞서 백성의 신뢰를 얻은 신흥무인 세력은 조선의 개국이라는 현실적 필요에 의해 연합을 하였지만 성리학자인 신진사대부와 불교 신자인 무인 세력은 종교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들의 종교적 차이가 결과적으로 전혀 타협할 수 없는 차이가 아니었던 것을 보면 결국 조선의 억불은 명분에 불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도전과 같이 『불씨잡변』이라는 책을 쓰는 등 불교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는 성리학자도 있었지만, 당시 상당수의 성리학자는 불교 자체에 대해서는 비교적 온건한 입장이었으며, 그 폐해를 경계하는 정도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억불숭유 정책이란 이전 왕조에서부터 이어져 오던 친불교적인 정책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조선은 건국 직후 불교를 탄압했다기보다는 불교를 우대했던 이전 왕조의 정책을 하나씩 철회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처럼 공공의 영역에서 불교를 보호하고 장려하던 정책을 철회하는 것은 바로 불교의 생존환경을 악화시킨 것이며, 결과적으로 불교를 억제하는 정책을 편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조선이 국가로서의 기틀을 갖추었다는 것은 성리학이 추구하는 예제에 따라 국가 체계가 확립되어 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개국과 동시에 습관처럼 지속되어 오던 불교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을 의미한다.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과 나라가 치러야 하는 기본적 의례의 종류 및 그 절차를 정한 『국조오례의』가 편찬되면서 조선은 국가적 차원에서는 불교에 영향 받은 여러 의례들을 유교식으로 정리하게 된다.
하지만 이후로도 불교에 대한 왕실의 실질적인 태도에는 큰 변화가 없었으며, 유력 가문들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왕실의 경우 실록을 통해 그 기록이 전해져 불교에 대한 태도를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지만, 사대부들은 왕실에 비해 전해지는 기록이 부족해 그 현황이 상세하지 않을 뿐이다. 비록 많지는 않지만, 사대부들도 문중 차원에서 특정 사찰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조상의 제사는 물론 글 읽고 휴식하는 공간으로 사찰을 이용했다는 기록이 조선 초는 물론 후기까지 끊임없이 발견된다.
왕조를 개창하고 안정되기까지의 과정은 변화가 불가피한 과도기이다. 특히 조선과 같이 명시적으로 불교에 대한 반대를 전면에 내세운 왕조에서 불교건축의 경우는 과도기를 넘어 위기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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