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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예술/대중문화의 이해 > 미학/예술이론
· ISBN : 9791189356897
· 쪽수 : 376쪽
· 출판일 : 2022-12-29
책 소개
목차
1장 행위성이라는 예술
1부 게임과 행위성
2장 분투형 플레이의 가능성
3장 행위성의 층위들
4장 게임과 자율성
2부 행위성과 예술
5장 행위성의 미학
6장 틀에 짜인 행위성
7장 게임에서의 거리
3부 사회적 그리고 도덕적 변화
8장 사회적 변화로서 게임
9장 게임화와 가치 포획
10장 분투의 가치
감사의 말
역자 후기
참고 문헌
찾아보기
리뷰
책속에서
회화가 시각을, 음악이 소리를, 이야기가 서사를 기록하게 해 준다면, 게임은 행위성을 기록한다. 이는 우리가 성장하는 데 일정 부분 도움이 될 것이다. 마치 소설이 살아 보지 못한 삶을 경험하게 해 주듯, 게임은 혼자서라면 발견하지 못했을 여러 행위성 형식을 경험하게 해 준다. 다만 그렇게 형성된 행위성 경험들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마치 예술처럼 말이다.
게임의 규칙이 무언가를 추구하라고 하면 우리는 그것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가령 어떤 보드게임은 같은 색의 토큰을 모으는 데 관심을 쏟으라고 지시한다. 어떤 비디오게임은 조그만 버섯 인간들 위로 뛰어올라 짓밟는 일에 관심을 쏟으라고 지시한다. 어떤 스포츠는 공을 그물에 넣으라고 지시한다. 우리는 플레이에 몰입하게 되는 그 귀중한 상태에 이르고자 이러한 목표가 잠시 의식을 사로잡도록 허락한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받아들일 목표와 능력을 게임 디자이너가 특정한다는 사실이야말로 게임을 독자적인 예술 형식으로 만드는 요인이다.
세상이 우리에게 먹고살라고 시키니, 우리는 직업을 찾고 그걸 즐기는 척해야만 한다. 세상이 우리에게 애정을 나눌 파트너를 찾으라고 시키니, 우리는 재치를 갖추는 방법을, 아니면 적어도 그럴싸한 온라인 데이트 프로필을 작성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세상은 만약 철학으로 생계를 유지하려면 아무리 지겹더라도 끝없는 학생들의 과제를 채점하라고 시킨다. 그러니 우리는 고개를 처박고 일하며 견뎌 나간다. 반면 게임에서는, 우리가 참여하고자 하는 바로 그 종류의 실천적 활동을 스스로 조형한다.
게임에서 가치들은 명료하고, 또렷이 제시되며, 모든 행위자에게 균일하게 부여된다. 그런데 이것은 상당한 도덕적 위험을 야기하기도 한다. 폭력적인 그래픽을 가진 게임만이 아니라 모든 게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가치란 명료하고, 또렷이 드러나며, 어떤 상황에서든 균일해야 한다는 잘못된 기대를 거꾸로 현실에 끌어올 위험이다. 즉 게임은 도덕적 명료성이라는 환상으로 우리를 위협한다.
여기서 우리가 알게 된 것은, 게임 플레이가 특정한 의미에서 사랑의 반대항이라는 것이다. 사랑은 대상을 향한 직접적이고 대체 불가능한 헌신을 요구한다. 그러나 미적인 분투형 플레이어의 경우, 설령 게임 내 목표들에 대해 그때그때 커다란 헌신을 보일 수 있다고 해도, 그러한 게임 내 목표들에 대해 전반적으로는 무심해야 한다.(그래서 우리가 “내 마음 가지고 장난치지 마”[Don’t play games with my heart]라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회화를 경험하려면 그것을 정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뒤에서 보거나 냄새 맡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회화 작품은 정면에서 보아야 한다는 규칙은 회화란 ‘무엇인지’에 관해 중요한 점을 나타낸다. 즉, 그것이 그저 캔버스 위의 물감이라는 물질적 사물 이상의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규칙이 공적인 것으로서 사회적 실천 속에 공통적으로 준수된다는 사실은 특정한 공동의 경험을 가능케 한다. 게임 또한 이러한 종류의 작품으로서, 한 발은 재료에, 또 한 발은 사회적 실천에 걸쳐 놓고 있는 셈이다.
예술 제도론은 기본적으로 ‘예술’이란 예술계라는 사회 역사적 제도가 예술이라고 말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이는 우리가 ‘예술’이라는 용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관한 사회 언어학적 진실에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에 기댄다고 해서 정말 중요한 질문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비디오게임이 예술이냐고 무언가 다급하게 물어올 때, 그들이 특정한 사회적 제도가 실제로 게임을 받아들였는지를 묻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게임은 대안적인 사회적 배치와 대안적인 정치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수천 년 동안 게임은 우리로 하여금 디자인된 사회적 구조 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만들었다. 심지어 게임이야말로 사회적 예술의 원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멀티플레이어 게임, 보드게임, 파티 게임 등을 포함하여 매우 다양한 게임을 넓게 살펴보는 것이 그토록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만일 내가 하루 휴가를 내고 아들을 동물원에 데리고 갈 경우 내 아이가 느낄 행복의 가치와 그 하루를 연구에 쓸 경우의 가치를 대체 어떻게 비교하겠는가? 또 대체 어떻게 내가 이것들을 이민자들의 부당한 구금에 대한 항의 시위에 참여하는 것의 중요성과 비교하겠는가? 내가 가족, 철학, 다양한 정치적 의제들에 부여하는 가치는 모두 비교하기 극히 어렵다. 게임에서는 복수의 가치를 통약함에 있어 그러한 어려움이 거의 없다. 많은 게임의 경우 목표는 단 하나이다.
게임의 윤리적 중요성과 사회적 위험에 관한 논의들은 주로 게임이 폭력적, 성적 콘텐츠를 담고 있는지에 집중해 왔다. 나는 그보다 게임 및 게임 같은 체계가 단순화·수량화된 목표의 무반성적인 추구의 확산을 부추긴다는 점을 훨씬 더 우려한다. 나는 게임이 연쇄살인범보다 월스트리트의 투기꾼을 양성하리라는 점을 더 우려한다.
그런데 게임의 목표가 정말로 얼토당토않은 것은 아니다. 엉뚱한 곳에서 바라볼 때만 그래 보이는 것뿐이다. 게임 바깥 세상에서라면 목표 자체를 보아서 혹은 그 뒤에 무엇이 따라올지를 내다보고서 목표를 정당화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게임 속 목표의 경우 '거꾸로' 봐야 한다. 목표를 추구하는 활동의 가치를 주목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상의 현실 세계에서는 결과를 위해 수단을 취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게임에서라면 수단을 위해 결과를 지정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