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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만난 동양 유목민

유럽과 만난 동양 유목민

김현일 (지은이)
상생출판
3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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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만난 동양 유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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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유럽과 만난 동양 유목민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세계의 종교 > 증산도
· ISBN : 9791190133364
· 쪽수 : 360쪽
· 출판일 : 2020-05-14

책 소개

증산도상생문화연구총서 14권. 기원전 1천년기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일어난 동양유목민들의 이동과 정복의 물결은 모두 커다란 역사적 변화를 초래하였다. 본서는 느닷없이 나타나 유럽 사회를 뒤흔든 동양 유목민들에 대해 유럽인들이 남긴 기록을 추적하였다.

목차

머리말 / 8
1.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나타난 킴메르 / 18
2. 아시리아 기록에 나타난 킴메르 /23
3. 그리스인들이 만난 스키타이 /26
4. 스키타이 왕국의 흥망성쇠 /32
5. 지리학자 스트라본이 본 스키타이 /38
6. 로마 제국의 기병대로 이용된 야지그족 /42
7. 유럽인이 된 동양유목민 알란족 /47
8. 요르다네스의 《게티카》와 프리스쿠스의 《비잔틴사》 /51
9. 고트족의 쇄도 /56
10. 판노니아의 훈족 /60
11. 훈족의 아시아 대원정 /64
12. ‘최후의 로마인’ 아에티우스와 훈족 /68
13. 훈족이 무찌른 서로마 제국의 적들 /74
14. 아틸라 이전 훈족 왕들 /78
15. 동로마 제국과 훈족 /83
16. 막시미누스 사절단 /91
17. 아틸라의 갈리아 원정 /97
18. 아틸라의 이탈리아 원정 /104
19. 아틸라의 아들들 /109
20. 훈족의 후예 오도아케르 /114
21. 쿠트리구르와 우티구르 훈족 /120
22. 몽골에서 판노니아까지 : 아바르족의 대이동 /125
23. 아바르 제국 /129
24. 아바르 제국과 프랑크 왕국 /134
25. 불가리아를 세운 훈족의 후예들 /139
26. 비잔틴과 불가리아 : 불가리아 제1제국의 흥망 /144
27. 불가리아 제국의 기독교화 /150
28. 마자르족의 판노니아 정복 /155
29. 마자르족의 스페인 원정과 레흐펠트 전투 /162
30. 마자르 정복사를 담고 있는 《헝가리인들의 행적》 /166
31. 비잔틴 제국과 투르크 제국의 첫 접촉 /170
32. 카자르 제국 /175
33. 페체네그족 /180
34. 러시아 연대기에 보이는 쿠만족 /185
35. 셀주크 투르크의 기원을 찾아 : 오구즈 투르크 /190
36. 몽골의 서방 원정 1 /195
37. 몽골의 서방 원정 2 /200
38. 킵차크한국 /207
39. 카르피니 사절 /213
40. 루브룩의 몽골 선교여행 /219
41.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224
42. 일칸 훌레구 /230
43. 랍반 소마와 랍반 마르코스 /236
44. 페골로티의 《상업편람》 /243
45. 최초의 북경 대주교 몬테코르비노 /248
46. 타타르의 멍에 /255
47. 모스크바 대공국 /261
48. 킵차크한국의 계승국가들 /267
49. 카잔한국의 멸망 /272
50. 시베리아 정복의 관문 시비르한국 /277
51. 칼미크한국 /284
52. 칼미크의 귀향 /289
53. 카자흐족과 러시아 /294
54. 오렌부르크 요새 /300
55. 러시아 제국의 카자흐 스텝 지배 /307
56. 오스만 투르크의 속국이 된 크림한국 /311
57. 크림한국의 노예무역 /315
58. 러터 전쟁 /320
59. 토트 남작 /327
60. 크림한국의 합병 /333
61. 타타르인 /343
맺음말 / 351
참고문헌 / 355

저자소개

김현일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60년 부산 출생. 역사학자. 서울대학교 인문대 서양사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프랑스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사회과학고등연구소(EHESS)에서 연구. 1993년 서울대학교에서 프랑스 근대기업가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현재 증산도 상생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논문으로는 《원산업화 기업가들 : 노르망디 면공업을 중심으로》, 〈프랑스 대기업가 루이 르노〉, 〈시간과 서양문명〉, 〈프랑스혁명과 기업가들〉, 〈근대 노르망디 농촌공업의 발전과 매뉴팩쳐〉, 〈신맬더스주의자가 본 근대농촌세계 : 르 르와 라뒤리의 『랑그독 농민』〉, 〈마테오 리치와 동서양 문명교류〉, 〈강증산과 동학〉, 〈역사적으로 본 동학의 개벽사상〉 등이 있다. 저서로는 《서양의 제왕문화》, 《동학의 창도자 최수운》, 《강증산의 생애와 사상》(공저) 등이 있다. 《프랑스문명사》, 《금과 화폐의 역사》, 《절대주의 국가의 계보》 등 번역서도 여러 권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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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머리말

유라시아 대륙에는 몽골 고원으로부터 서쪽 헝가리 평원에 이르기까지 스텝 지대가 길게 이어져 있다. 그 직선 길이만 7,000킬로미터에 달한다. 이 초원지대에서 양과 염소, 말, 소, 낙타 등의 가축을 키우며 살아온 유목민들은 때때로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여 세계사의 흐름을 뒤바꾸어 놓았다. 보통 때는 초원에서 흩어져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다가 일정한 여건이 주어지면 여러 부족이 하나의 강력한 연합을 이루어 주변의 족속들과 나라들을 복속시켰다. 이때 바야흐로 ‘유목제국’이 등장하는 것이다.
역사에 나타난 대부분의 유목제국들은 아시아 초원지대에서 태동하였지만 초원을 따라 서진하여 서양에도 나타났다. 유럽사에 명함을 내민 대표적인 유목민들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1) 고대 그리스인들의 기록에 등장하는 스키타이.
2) 로마 제국 말기의 기록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훈족.
3) 중세 초 비잔틴 제국과 프랑크 제국의 기록에 등장하는 아바르.
4) 11세기부터 수 세기 동안 아랍 제국과 비잔틴 제국의 기록에 등장하는 투르크족.
5) 13세기부터 러시아와 페르시아 및 중앙아시아, 중국, 고려 등 유라시아 여러 나라들을 정복하여 이 나라들의 사서에 등장하는 몽골족.

스키타이인들은 흑해 북안으로부터 알타이 산맥에 걸친 광대한 영역을 지배하였는데 전성기의 페르시아 제국도 그들과 싸워 이기지 못했다. 물론 이 스키타이인들은 그리스인들과는 활발히 교역을 하는 등 대체로 평화스런 관계를 유지하였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여러 스키타이 부족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기록을 그의 사서에 남겨놓았다. 황당한 이야기도 없지 않지만 그의 책은 스키타이인들에 관한 매우 중요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스키타이 이전에 킴메르족이 있었다. 흑해 북안에 살던 킴메르인들은 헤로도토스의 역사서에도 등장하지만 기원전 7세기 아시리아의 점토판 문서에도 등장한다. 심지어는 구약성서에도 얼굴을 내밀고 있다. 구약성서의 예언서 가운데 하나인 〈에스겔서〉에는 신의 도구로 사용되는 무서운 북방민족으로 나타난다.
여러 학자들에 의해 흉노의 후예로 여겨지는 훈족은 376년 고트족의 대규모 난민사태를 초래한 장본인이다. 당시 다뉴브 강 북쪽과 흑해 북안에 살던 고트족이 훈족에 쫓겨서 로마 제국 내로 몰려들게 되었다. 이 난민사태로부터 소위 ‘게르만족의 이동’이 시작되어 로마 제국은 혼란과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서진하던 훈족은 곧 흑해 북안 지역 뿐 아니라 서쪽의 판노니아(헝가리 지역)와 게르마니아(독일 지역)를 모두 정복하였다. 그곳에 살던 이란계 유목민 알란족과 게르만족들이 훈족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로마 제국 북방에서 로마 제국과 맞먹는 또 하나의 대제국이 들어선 것이다. 4세기 말 난민사태의 여파로 로마 제국도 동서로 나뉘게 되었는데 훈족은 동서 로마를 동시에 상대하였다. 동맹관계를 맺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도 하였지만 때로는 동서 로마 제국을 모두 침공하기도 하였다.
훈 제국은 453년 아틸라 왕의 급사 이후 내분으로 무너졌는데 서로마 제국도 그로부터 20여년 뒤에 무너졌다. 이는 역설적이지만 훈 제국이 서로마 제국의 유지에 상당한 역할을 했음을 시사해주는 것이다. 훈 제국의 붕괴 후 훈족은 흑해 북안과 러시아 초원지대로 물러났는데 이들은 일부 역사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여러 소집단으로 나뉘었다가 일부 집단은 주변의 유목민들을 조직하여 역사 속에 다시 등장하게 된다. 7세기 볼가 강과 다뉴브 강 일대에 불가리아를 세운 불가르족이 그들이다.
아바르족 역시 훈족처럼 아시아 초원지대로부터 서진하여 동유럽으로 진출한 동양유목민 집단이다. 훈족이 과연 한나라와 오랫동안 싸웠던 북방의 흉노匈奴로부터 나온 집단인지를 놓고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는 것처럼 아바르족이 북방 초원지대를 한동안 지배하였던 유연柔然족인지에 대해서도 논쟁이 있다. 6세기 중엽 돌궐족에 의해 몽골 초원에서 밀려나 서쪽으로 도망쳐온 유연이 곧 아바르라는 주장도 있지만 유럽으로 진출한 아바르인은 실제로는 유연에게 패한 투르크계인 오구즈족, 심지어는 돌궐과 페르시아 제국의 협공으로 멸망한 에프탈 훈족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아바르족은 이전의 훈족이 게르만족을 지배하였듯이 비잔틴 제국 국경 너머 북방의 슬라브족들을 지배하였다. 7세기 이후 슬라브족이 발칸반도와 그리스로 대거 남진함에 따라 비잔틴 제국은 다시 이 슬라브족이라는 오랑캐(barbaroi)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야 하였다. 슬라브족의 이동과 침략의 배후에 아바르족이 있었다. 아바르족은 슬라브족을 앞세워 비잔틴 제국을 빈번하게 공격하였지만 서쪽으로도 원정을 하였다. 당시 아바르족의 서쪽에는 프랑크 제국이 있었다. 아바르 제국이 9세기 초에 멸망하는 것도 바로 이 서쪽의 프랑크 제국에 의해서였다. 그래서 아바르족에 대한 기록은 비잔틴 사서뿐 아니라 서유럽 역사서에도 등장한다.
투르크족의 일파인 괵투르크는 6세기 중반 몽골 초원에서 돌궐제국을 세웠는데 한 세대 만에 그 지배영역이 중앙아시아를 거쳐 흑해 북안까지 미치게 되었다. 그로 인하여 6세기 말에는 비잔틴 제국과의 접촉이 시작되었다. 양 제국은 일시적으로 손을 잡고 사산조 페르시아를 협공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돌궐제국이 7세기에 들어 붕괴되면서 그 지배하에 있던 다양한 투르크계 부족들간의 상쟁이 벌어져 일부 투르크족이 혼란을 피하여 서진하였다. 그 가운데 한 부족이 오구즈 투르크로서 바로 이 집단에서 셀주크 투르크와 오스만 투르크가 나왔다. 셀주크 투르크인들은 이슬람을 받아들인 후 회교전사로 자처하면서 기독교 국가인 비잔틴 제국을 공격하였다. 11세기 이후 많은 투르크인들이 소규모 집단으로 소아시아로 이주하였다. 내분에 몰두해 있던 비잔틴 제국은 이들을 통제하지 못했다. 이때부터 소아시아를 본거지로 하여 바다 건너 발칸반도로 진출한 투르크인들은 15세기 중엽 비잔틴 제국을 정복하였다.
비잔틴 제국을 무너뜨리고 발칸으로 진출한 오스만 투르크는 수 세기 동안 발칸반도의 기독교도들에게는 악몽과 같은 존재였다. 오스만 제국은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 서유럽으로 진출하는 길목에 위치한 비엔나를 여러 차례 공격하였다. 비엔나는 함락되지 않았지만 그 동쪽의 헝가리는 오랫동안 회교국가인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아야 하였다. 종교와 풍속이 완전히 다른 오스만 제국의 유럽으로의 진격과 그에 대한 저항은 서양 근대사의 중요한 테마 가운데 하나이다.
1070년대 셀주크 투르크인들은 이집트의 파티마 왕조로부터 팔레스타인의 성지를 빼앗았다. 셀주크 투르크인들로부터 소아시아를 침탈당한 비잔틴 제국은 로마 교황에게 원조를 요청하였다. 교황이 이에 응함으로써 서유럽인들의 십자군 원정이 시작되었다. 이 십자군 원정은 한 두 차례로 끝나지 않아 근 이백년간 유럽의 많은 자원과 인력이 원정에 투입되었다. 십자군 전쟁이 한창 전개되던 13세기 초 몽골은 키예프 러시아를 격파하고 페르시아와 이라크를 장악한 후 이집트 정복을 위해 유럽의 십자군 세력에 군사적 협력을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이를 통해 유럽과 몽골 제국 사이의 접촉이 시작되었다. 유럽인들은 몽골의 우호적인 태도를 믿고서 사절단과 선교사들을 여러 차례 몽골로 파송하였다. 이것이 가톨릭 동양 선교의 출발점이 되었다. 물론 이 선교사업은 성공하지 못했다.
몽골 제국은 칭기즈칸의 아들 대부터 여러 한국(khanate)들로 갈라졌다. 러시아를 지배하게 된 것은 장자인 주치의 울루스(나라)였다. 킵차크계 투르크족이 다수를 이루어 주치의 나라는 킵차크한국이라고도 불렸다. 킵차크한국은 주치 사후에 금장한국金帳汗國과 백장한국白帳汗國으로 갈라졌는데 백장한국은 카자흐스탄 지역, 금장한국은 러시아와 흑해 북안의 초원과 크림반도를 지배하였다. 러시아 역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이 바로 이 금장한국이었다. 금장한국은 250년간 러시아를 지배하였다. 후일 러시아 제국으로 발전하게 되는 모스크바 공국은 처음에는 몽골 지배자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나라였다. 그러나 바로 이 모스크바 공국이 15세기 말부터 몽골의 지배를 타도하는 데 앞장서게 되었다. 모스크바 공국은 16세기에는 금장한국의 계승국들인 카잔한국, 아스트라한한국 그리고 시베리아의 시비르한국을 차례로 정복하였다. 16세기 말 시비르한국의 정복으로 러시아는 광대한 시베리아로 진출할 수 있었다.
러시아는 또 18세기 초 우랄강 남쪽의 카자흐족을 정복하였다. 카자흐스탄 정복은 중앙아시아로 진출하는 길을 열었다. 그러나 금장한국의 또 다른 후계국인 크림한국은 오스만 제국의 제후국이 되어 러시아와 대립하였는데 러시아는 이 나라를 18세기 말 예카테리나 여제 때에야 합병할 수 있었다. 크림한국의 합병으로 금장한국의 후계국들이 모두 사라졌다.
압도적인 전투력을 자랑하는 기마군단을 이용하여 주변의 정착 농경사회를 압도하여 역사의 흐름을 뒤바꾸어 놓았던 유목민 제국의 역사는 러시아가 금장한국의 후계국들을 하나씩 정복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시베리아를 지나 동쪽으로 팽창하던 러시아는 17세기 말 드디어 청나라와 국경을 접하게 되었다. 중국 역시 이 청나라 때 몽골족을 비롯하여 골칫거리였던 북방의 유목민들을 모두 제압하였다. 유라시아 초원 지대에 살던 대다수 유목민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두 나라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소수민족으로 살아오고 있다. 유목민의 역사적 중요성은 바로 이 시기에 끝이 난 것이다. 대포와 총이 기마유목민 군단을 제압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프랑스 역사가 페르낭 브로델의 말에 따르면 이제 유목민들은 다시금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유럽사에서 동양 유목민의 역할은 대부분 부정적인 시각에서 파악되었다. 느닷없이 들이닥쳐 재물을 약탈해가고 포로를 잡아가는 외부의 낯선 야만적 약탈자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동양에서 유럽으로 밀어닥친 유목민들은 주변의 정착민들을 빈번하게 공격하고 약탈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을 결코 야만적 약탈자로만 단정해서는 안 된다. 가축에 대한 깊은 지식, 뛰어난 기마술과 궁술, 효율적인 군사조직과 전략은 말할 것도 없고 이들이 국가를 조직하는 방식도 상당히 효율적인 면이 있었다. 유럽에 진출한 유목민들의 국가조직 방식은 중세 유럽의 봉건제 성립에 큰 기여를 하였다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유목민들이 정착농경민들과의 교역을 대단히 중요시하고 교역을 적극 촉진하였다는 점이다. 유라시아 초원지대와 실크로드를 모두 통일하였던 몽골 제국 시대에 동서양 사이의 교역과 문화교류가 극히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그것을 잘 입증해준다.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역사가의 한 사람인 페리 앤더슨은 동유럽이 서유럽에 비해 발전이 뒤진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동유럽이 빈번하게 동양 유목민의 침략을 받았던 점을 들고 있다. 유목민의 침입과 약탈로 사회가 혼란에 빠지게 되고 축적된 부가 빠져나가 경제발전이 좌절되었다는 주장이다. 아마 이런 면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단선적으로만 발전하지 않는다. 유목민의 도전으로 강력한 국가의 필요성은 더 절실해져 모스크바 제국 같은 강력한 정치체가 출현할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본서에서는 이러한 동양유목민의 역할에 대한 아카데믹한 역사적 논쟁을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필자는 소비에트 학계에서 이루어진 그러한 이론적인 논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할 뿐 아니라 본서에서 다루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다. 본서에서는 단지 동양유목민들과 직면하였던 유럽인들의 기록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원래 이 책의 의도가 그러하였다.
필자는 애초에 유목민사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수년 전에 《환단고기》 역주본 해제를 준비하면서 유목민사를 공부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낯선 내용이라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유목민사의 주요한 내용들을 차츰 파악하게 되었다. 물론 본서에서 다루는 내용은 유목민사 전반에 관한 것은 아니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유럽사와 관련된 유목민들에 한정된다. 동양사까지 포함한 유목민사 전반을 서술하는 것은 필자 능력 밖의 일이다.
이 책에 실린 글은 2016년 3월부터 2019년 4월까지 근 3년에 걸쳐 ‘유목민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상생문화연구소 홈페이지에 60회에 걸쳐 연재한 글이다. 어느 부분은 급하게 쓰느라 내용이 부실한 곳도 없지 않았다. 연재가 끝난 후 출간을 위해 그 글들을 다시 검토하여 틀린 부분은 바로잡고 미진한 부분은 보충하였다.
본서가 나오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상생문화연구소의 안경전 이사장님의 도움이 컸다. 일찍이 유목민사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필자로 하여금 그 방면의 연구를 하도록 만드셨을 뿐 아니라 연구에 필요한 도서들도 제한 없이 구입하여 이용할 수 있게 하셨다. 상생문화연구소 홈페이지 관리를 맡았던 노종상 박사님은 필자의 글을 연구소 홈페이지에 게재하도록 주선하고 자주 원고를 독촉하였다. 그의 격려와 독촉이 없었더라면 아마 이 책이 지금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연구소 총무 김동영 부장도 도서구입의 실무적인 일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상생출판의 강경업 팀장은 뛰어난 편집 솜씨로 보기 좋은 책을 만들어 주었다. 이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바이다.
애초에 연구소 홈페이지에 연재한 원고에는 각주가 달려 있지 않고 관계된 참고문헌만을 소개하였다. 그러나 본서에서는 유목민사 연구에 관심 있는 분들이 참조할 수 있도록 정확한 각주를 붙이기로 하였다. 독자들은 본서에서 미흡한 점을 많이 발견할 것이다. 필자도 더 연구를 했으면 하는 문제들이 적지 않았지만 일단 여기까지 연구한 것을 책으로 출간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서가 역사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약간의 도움이라도 된다면 필자에게 는 큰 기쁨이 될 것이다.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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