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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0526210
· 쪽수 : 360쪽
· 출판일 : 2020-09-14
책 소개
목차
불멸 ·007
미경이 ·019
아모르, 아모르 미오 ·151
책도둑 ·183
시간여행자 ·235
미로 ·271
자존감 수업 ·301
해설 | 김성달(소설가)시간을 초월하는 예술가의 초상 ·337
작가의 말 ·355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즈음 어떨 때는 꿈에서도 글자들이 나타났다. 눈앞에 문장들이 책처럼 쫙 펼쳐지는 것이다. 모두 멋진 문장이었다. 여태껏 그토록 완벽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눈을 뜨면 문장이 한 줄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글로 옮겨보려 몇 번 시도한 적이 있는데 정리하려고 보면 수첩에는 모호한 단어들 몇 개만 적혀 있었을 뿐이다. 거기에 왜 그런 단어들이 적혀 있는지 나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꿈속에 본 문장은 적어 낼 수는 없더라도, 벌건 대낮에 생각나는 것을 적어나가는 것은 가능하다. 생각을 요약해서 적기. 나는 짧은 문장으로 적어 나갔고, 관련되는 내용을 기호나 그림으로 나타냈다. 중요한 단어는 별표나 동그라미를 쳤다. 하지만 나중에 수첩을 읽어보면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화가 난 나는 수첩을 어딘가에 처박아버렸다. 지금쯤 책상 서랍 속, 어딘가에 뒹굴고 있을 것이다.
--- 「불멸」 중에서
그는 나를 사랑했고 소설을 사랑했고 불멸을 꿈꾸었다. 참 잘 쓰셨네요! 그녀 한 마디를 듣고 싶어 한 그였다. 등단작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려고 바라보던 시선, 혹 칭찬의 말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로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말없이 읽고 책장을 덮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작품을 묵살한 것이다. 예상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섭섭했을 것이다. 왜 한 부분이라도 괜찮다고 말해 주지 못 했을까. ‘아, 너는 모질고 인색했다.’ 그것이 잘못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중략)…그 남자를 상상해 본다. 그는 이마를 양 무릎 사이에 처박고 십자가 앞에 몸을 움츠린 채 엎드려 있다. 그는 무슨 기도를 드리는 걸까? 하지만 나는 그가 무슨 기도를 했는가를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원했던 것은 알 수 있다. 불멸. 그는 이 말을 원했다.
--- 「불멸」 중에서
“우리, 어디로 갈까?”
미경이 속삭였다. 막연히 걷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어디 여관이라도 들려서 쉬었다 가자고 말하기엔 쑥스러웠다.
“네가 가고 싶은 데로.”
미경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육교 계단을 오르던 미경이가 멈추어 서서 나를 돌아보았다.
“정말…… 나랑 같이 있고 싶어?”
미경은 낮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녀는 웃음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서로 마주보았고 나는 육교 건너편에 깜박이는 불빛을 향해 눈짓을 했다.
--- 「미경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