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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7375896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25-10-24
책 소개
2025 제19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출간!
수상작 이주란 「겨울 정원」
절제된 정서와 유머, 온기로 그려진 삶의 무늬에 대하여
이주란의 「겨울 정원」이 2025 제19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소설가 김유정을 기리며 지난 한 해 동안 문예지에 발표된 중, 단편소설을 대상으로 뛰어난 작품을 선별해온 김유정문학상은 한국문학의 의미 있는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해왔다. 올해 김유정문학상은 하성란(소설가), 최수철(소설가), 이경재(문학평론가), 인아영(문학평론가)이 예·본심 통합 심사를 맡아 진행했고, 치열한 논의 끝에 이주란의 「겨울 정원」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예순 살 여성 혜숙의 소소한 일상을 그리고 있는 수상작 「겨울 정원」은 일상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한 삶에 얼마나 많은 사랑과 슬픔이 출렁이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별다른 의미 없이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많은 슬픔과 웃음, 후회 그리고 그리움이 절제된 감정과 톤으로 그려진 수작이다. 함께 실린 수상 후보작 김성중의 「새로운 남편」, 김연수 「조금 뒤의 세계」, 서장원의 「히데오」, 임선우의 「사랑 접인 병원」, 최예솔 「그동안의 정의」 등 다섯 편의 작품을 통해 현재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중요하고 다양한 흐름을 문학적으로 짚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거창한 다짐으로 무언가 하려고 하지 않아도
수상작 「겨울 정원」 속 혜숙은 청소하는 사람이다. 아침이 오기 전, 사람들의 출근이 시작되기 전 먼저 깨어 건물 곳곳을 청소하는 사람. 예순 살 혜숙의 딸의 이름은 ‘미래’다. 딸 미래는 엄마에게 세상 것들을 조금씩 물고 와 엄마에게 먹인다. 세상에 떠도는 말들, 유행하는 것들, 드라마, 영화, 연애, MBTI, 새벽 배송 등등. 단조로운 삶과 복잡한 삶 중간에서 혜숙에게 세상의 속도를 엷게나마 느끼게끔. 느리게 가는 혜숙의 삶의 속도에 살짝 액셀을 밟듯. 딸 미래는 혜숙과 칠 년째 같이 사는 중이다. 혜숙의 삶은 단순하다. 오피스텔에 가서 청소하고 집에 귀가해 씻고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유튜브를 보다 잠든다. 청소업체와 건물 관리인 간의 소소한 문제, 갈등 정도와 무례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가 혜숙의 일상에서 작은 틈을 만들 뿐, 하루는, 삶은 ‘그냥’ 살아진다. 그러다, 덜컥 사고가 나기도 한다. 큰글자도서 모임에서 만난 오인환씨. 아주 가끔 불특정한 사랑이 단조로운 삶에 침입하기도 한다.
그런 미래는 뻔하다. 뻔한 미래에 대한 예측은 혜숙쯤 되는 나이라면 누구나 살면서 경험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사랑은 따갑고 그리움이 찌른다. 겨울에 얼어붙은 정원일지라도 봄이 되면, 온도가 올라오면 꿈틀대듯이. 텅 비어 있는 겨울 정원일지라도 언 배추와 아직 피지 않은 꽃이 심겨 있어 새들과 길고양이 들이 바쁘게 오가는 것처럼. 수상작 제목 ‘겨울 정원’이 그러한 마음의 풍경이 된다. 그 어떤 수치와 모욕이 삶에 틈입해도 슬픔에 지지 않으려는 마음, 고통에 엄살 부리지 않겠다는 다짐 같은 것들.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고 살아지는 일상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삶을 사랑하는 마음의 정확한 정체라고 수상작 「겨울 정원」은 말하고 있다.
현재를 관통하는 중요하고 다양한 흐름들
수상 후보작 김성중의 「새로운 남편」은 ‘인공지능 남편’에 대한 이야기이다. 실제 남편과 똑같은 외형을 지니고 있지만 머신러닝으로 인해 성격과 감정이 다른 홀로그램 남편. 착함에 중독되어 남편의 공격적 성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결혼생활에 불만인 대상자를 위한 프로그램 ‘새로운 남편’. 소설은 이 프로그램에 선정된 각각의 사연을 모티프로 결혼이라는 관계성이 인공지능이 장악한 현실에서 어떻게 작용되어 서사화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김연수의 「조금 뒤의 세계」는 현실과 꿈, 꿈과 소설 등 현실과 비현실에 대한 겹치는 지점을 유연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우연히 마주친 자신의 첫 소설에 썼던 인물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고 꿈과 작품이 연결된다. 소설이라는 창작물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이 연결되면서 입체적인 세계를 활자화되어 만나게 된다. 서장원의 「히데오」는 이 시대의 남성성을 입체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히데오의 남성성은 과거의 역사성과 비슷하게 혹은 다르게 변모한다. 중간자적 입장에서 한 남자의 삶을 바라보는 이 소설에서 세대론과 함께 젠더성의 변모과정을 문학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임선우의 「사랑 접인 병원」은 왼속 약지를 절단해 상대방의 손에 이식하는 수술에 관한 유니크한 설정과 유려한 서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완전한 사랑을 위해,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 손가락을 접인하면 그 사람의 모든 정보가 자신에게 이식되는 수술. 사랑이라는 본질적인 것에 대해 매력적이면서 가볍지 않은 질문으로 사랑에 관해 묻는 작품이다. 최예솔의 「그동안의 정의」는 얼떨결에 맡게 된 일곱 살 조카를 맡게 된 고모의 이야기이다. 어릴 적 헤어졌던 오빠의 아들이 갑자기 삶에 난입해 가족이라는 본질, 형태 등을 되묻고 있는 작품이다. 어른과 아이의 시선에서 겹쳐지는 삶에 대한 태도가 유려하고 매력적인 필치를 통해 그려지고 있다.
◆심사평
예순 살 여성 혜숙의 일상을 그리는 「겨울 정원」은 너무 잔잔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많은 사랑과 슬픔이 출렁이고 있는지 보여주는 소설이다. 청소 노동자 혜숙은 전세로 살고 있는 친구의 집에서 정원을 가꾸고 있다. 겨울이 되어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정원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것 같다고 느끼면서. 오피스텔에서 청소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평범한 일상을 반복하는 혜숙에게 딸은 엄마처럼 단순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그렇게 단순하지만도 않다. 자신처럼 청소하는 사람이 나오는 영화를 보다가 잠들기도 하고, 친한 언니네 놀러가서 고양이를 보고 신기해하기도 하며, 딸과 소주를 마시면서 짝사랑 고민을 상담해주기도 하고, 큰글자도서 모임에서 만난 남자와 설레는 만남을 이어나가기도 한다. 일상이 조용하게 흘러가는 동안 혜숙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작은 순간들을 담담하게 바라보고 보살핀다. 어떤 수치와 모욕이 삶을 덮쳐와도 고통에 엄살부리거나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고 가만한 일상을 살아내면서. 삶에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는, 그리고 삶을 사랑한다는 의미는 이런 것이 아닐까?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거창한 다짐으로 무언가를 자꾸만 하려고 하지 않아도, 겨울 정원을 가꾸듯 묵묵히 하루를 살아내는 것.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겨울 정원에도 언 배추와 아직 피지 않은 꽃이 심겨 있어 까치와 길고양이 들이 바쁘게 오가는 것처럼, 별다른 의미 없이 “그냥”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한 사람의 삶에도 수많은 슬픔과 웃음, 후회와 그리움이 숨 쉬고 있다. 이 소설의 절제된 정서와 유머, 온기로 그려진 삶의 무늬에 많은 독자들이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다. 그 감동적인 풍경을 보여준 이주란 소설가에게 깊은 감사를, 그리고 수상 후보작의 모든 소설가들께 깊은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 심사위원 인아영 (문학평론가)
목차
심사평
수상 소감
수상작
이주란, 「겨울 정원」
수상 후보작
김성중, 「새로운 남편」
김연수, 「조금 뒤의 세계」
서장원, 「히데오」
임선우, 「사랑 접인 병원」
최예솔, 「그동안의 정의」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지금 난 오인환씨가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들을 최대한 오래 기억해주길 바라고 있다. 이미 끝난 사이이기 때문에 내가 실제로 바랄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고 난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내 시간은 영화도 드라마도 소설도 아니고 단지 현실이라고 반복해서 생각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난 오인환씨 앞에서 문득 내 미래에 대한 다짐과 약속을 했던,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지 않으면 신고를 할 거라고 소리치던 정원을 바라본다. 지금 미래에게 생겨난 저 마음이, 언젠가는 내게도 다시 찾아올 날이 있을까 생각하면 이미 겪은 일도 지금 겪고 있는 일도 아닌데 조금 슬프다. ― 이주란, 「겨울 정원」 중.
요양원으로 옮겨질 때, 나는 짐 속에 그의 디바이스를 소중하게 넣어왔지만 두 번 다시 전원을 켜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기기를 오랫동안 방치하다 보면 그가 원하는 ‘자연사’에 성공할지도 모르지. 어차피 상관없다. 녹내장을 앓은 이후 내 시력은 현저하게 낮아져서 이제는 기기를 작동해봤자 잘 보이지도 않을 테니까.
그러나 누구와 대화한단 말인가. 오랫동안 한 존재와 깊게 소통해온 나는 일상적 대화라는 걸 잊어버렸고 쓸데없이 진지했으며 아무데서나 견해를 밝혀 비호감 인물로 낙인찍혔다. 공동생활에는 더욱 적응할 수 없어서 조금씩 덧문을 닫아걸고 마음껏 노인성 우울에 빠져들었다. 그가없었으면 진작에 잠수했을 나의 심해 속으로. ―김성중, 「새로운 남편」 중
열차는 불을 환하게 밝힌 빌딩 숲을 지나 강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사진 속, 울고 있지만 울고 있지만은 않은 아기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소설 비슷한 것을 몇 번이고 다시 쓰던 그해 겨울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말이 안 되고 앞뒤도 안 맞는 문장들이 여러 번 다시 쓰면서 점점 생생해졌다. 깨어 있는 꿈을 꾸는 것처럼. 내용은 여전히 불가능한 것들이었지만, 나는 그 불가능함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 소설 비슷한 것 속에서 나와 동연은 여전히 케이브에서 매주 두세 번씩 생맥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 영원히. 그 소설 비슷한 것 속에서. ― 김연수, 「조금 뒤의 세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