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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0526555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21-11-17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의사의 선고
부부의 온도
크루즈 선을 타다
첫날의 만찬
스무 살의 진실 게임
땅끝에서
스무 살의 마지막 기억
꼭 필요한 말 한마디
제비섬에서
그대에게 이르기까지
천년 사랑의 인연
저자소개
책속에서
치료받지 않으면 얼마나 살 수 있냐는 그녀의 물음에 의사는 ‘한 일 년 정도?’라고 대답했다. ‘치료받지 않으면’이라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시한부 선고를 들은 거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마치 감기니까 며칠 약 먹고 쉬면 좋아질 거라는 말을 들은 것처럼 어떤 동요도 없었다.
그녀는 언젠가 재발할 수 있다는 걸 늘 염두에 두고 살았다. 그렇더라도 의사의 재발 선언에 의연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그때 이미 마음을 내려놓았던 때문이 아닐까 짐작되었다. 마음을 내려놓았다는 말은 포기했다는 말은 아니었다. 최선을 다하되 그래도 안 된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지난 십오 년 동안을 그런 마음으로 살았다.
지윤과 지수가 상현과 정원 앞에 커피를 날라다 각각 놓고 자신들이 앉은 탁자에도 내려놓았다. 말하지 않아도 각자의 입맛에 딱 맞는 커피였다. 평소 단맛을 좋아하는 상현은 설탕과 프림이 각각 두 스푼씩 들어간 더블더블이고, 수면 시간이 짧은 정원은 카페인 성분을 제거한 디카프였다. 지수는 블랙에 우유만 조금 넣은 커피, 평소 커피를 즐기지 않는 지윤은 카모마일 차였다. 커피를 마시는 취향으로만 보면 이 가족들의 성격이 각양각색으로 보였다.
어쨌든 상현은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해결을 위해서는 그녀와 깊이 있는 대화를 해야 했는데, 그는 속을 드러내고 말하는 방법에 서툴렀다. 일일이 낯간지럽게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말로 표현 하나 안 하나 다 마찬가지라고 여겼는데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는 늘 모든 게 마찬가지라고 두루뭉술하게 넘기기를 잘했다. 그 말만 나오면 정원은 어떻게 세상사가 다 마찬가지냐고 질색하며 버럭 화를 내곤 했다. 그것이 바로 그녀와 그의 성격 차이인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