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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신학일반
· ISBN : 9791191239157
· 쪽수 : 304쪽
책 소개
목차
1. 서론
2. 창조
첫 번째 관점: 6일간의 창조 / 두 번째 관점: 무시간적 창조 / 세 번째 관점: 지속적인 창조
3. 악의 문제
첫 번째 관점: 존재의 결핍 / 두 번째 관점: 물질의 자율성 / 세 번째 관점: 자유의 오용
4. 영혼에 관하여
첫 번째 관점: 영육이원론 / 두 번째 관점: 정신-육체 단일체 / 세 번째 관점: 몸의 형상으로서 영혼
5. 죄와 ‘타락’
첫 번째 관점: 원죄는 유전된다 / 두 번째 관점: 원죄는 소외다 / 세 번째 관점: 원죄란 진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단계다
6. 하느님의 성육신, 예수
첫 번째 관점: 상징적 그리스도론 / 두 번째 관점: 신-인 그리스도론 / 세 번째 관점: 영 그리스도론
7. 속죄
첫 번째 관점: 승리로서의 속죄 / 두 번째 관점: 희생제물로서의 속죄 / 세 번째 관점: 치유로서의 속죄
8. 계시와 세계의 종교들
첫 번째 관점: 오직 그리스도교인만이 구원을 받는다 / 두 번째 관점: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지만, 이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 세 번째 관점: 모든 사람은 자기 고유의 신앙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
9. 삼위일체
첫 번째 관점: 사회적 삼위일체 / 두 번째 관점: 하느님의 세 존재 방식 / 세 번째 관점: 삼중 하느님의 역사
10. 교회
첫 번째 관점: 성사 공동체로서의 교회 / 두 번째 관점: 성도의 교제로서의 교회 / 세 번째 관점: 소명의 공동체로서의 교회
11. 성서
첫 번째 관점: 성서는 신앙의 무오한 규범이다 / 두 번째 관점: 성서는 계시를 증언한다 / 세 번째 관점: 성서는 계시 경험을 기록한 책이다
12. 예수의 가르침
첫 번째 관점: 영웅적인 도덕 규칙 / 두 번째 관점: 완벽을 위한 조언 / 세 번째 관점: 이상을 추구하는 가르침
13. 그리스도교와 윤리
첫 번째 관점: 윤리의 토대로서의 성서 / 두 번째 관점: 윤리의 토대로서의 자연법 / 세 번째 관점: 윤리의 근거로서 인격주의
14. 그리스도교와 문화
첫 번째 관점: 신앙에 봉사하는 예술과 과학 / 두 번째 관점: 신앙으로부터 분리된 예술과 과학 / 세 번째 관점: 신앙에 대한 대안으로서 예술과 과학
15. 기도
첫 번째 관점: 전례 / 두 번째 관점: 개인 기도 / 세 번째 관점: 관상
16. 영원한 생명
첫 번째 관점: 문자적인 해석 / 두 번째 관점: 은유적 해석 / 세 번째 관점: 비문자적인 현실주의 관점
책속에서
나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실천의 몇 가지 주요 요소를 선 별하고, 각각에 대하여 주요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 광범위하게 지 지하는 핵심 해석들을 세 가지 유형으로 개괄하기로 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독자는 그리스도교 세계가 얼마나 다양한지를 알게 될 뿐 아니라 이 다양한 관점들을 모두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연결고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통해 독자들이 오늘날 그리스도교 세계에 퍼져 있는 신념들을 적절하게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창조세계와 맺는 하느님의 상호작용은, 하느님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책임 있는 도덕적 주체가 우주에 존재할 때라야 완전한 효력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우주의 물리적 구조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어느 정도 함의를 지닌다. 인간이 등장하기 수십억 년 전부터 물리적 우주가 존재했다면, 우리는 하느님이 우주를 인격적인 존재들을 위해 살기 적합한 곳으로 예비하셨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하느님은 우주의 근본 법칙들 속에 융통성과 ‘무작위성’의 요소들을 넣어두심으로써 피조물들이 적당한 때에 자유를 누리며 존재할 수 있도록 예비하셨다. 이제 우주는 결정론적인 우주가 아니라 확률적 가능성을 가진 우주로 드러난다. 그럼에도 우주는 여전히 하느님의 지혜와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우아하고 지적인 아름다움의 장소로 남을 것이다. 이러한 우주는 하느님과 함께 미래의 공동-창조자들이 될 운명을 가진 인격들의 출현을 향해서 나아간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느님은 계속해서 우주를 창조하고 계시며, 그 속에서 우주의 이성적인 피조물들의 자유로운 결정들을 고려하면서 그들과 함께 일하며 열린 결말을 빚어가고 계신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하느님은 여전히 그 과정을 통제하고 계신다. 하느님은 한편으로는 당신에게 대항하는 요소들을 제거하시며, 다른 한편으로는 유한한 존재들이 그분의 창의적인 지혜와 사랑에 자유로이 응답하는 통로로 자라도록 빚어 가신다. 그러므로 우주는 하느님의 창조적이며 협력적인 모험의 장이다.
복음서에서 가장 긴 부분은 예수의 ‘수난’ 이야기, 바로 그가 배반당한 후 당국에 넘겨져 사형 선고를 받게 되는 모욕적이고 잔학한 이야기다. 이처럼 결정적인 시기에 예수의 추종자들은 그를 버렸다. 그는 죽고 무덤에 묻혔다. 이것이 이야기의 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사건 이후 수많은 제자는 예수가 하느님에 의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으며 메시아인 왕으로 임명되었음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이로써 그리스도교 교회가 시작되었다.
실제 역사적인 예수를 재구성하기 위해 무수한 시도가 이루어졌고 온갖 추측들이 나왔다. 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은 예수와 관련해 우리가 가진 유일한 기록은 예수를 메시아(그리스어로 그리스도)로 믿었던 사람들이 기록한 복음서들이라는 점이다. 복음서들은 중립적인 기록이 아니다. 그것들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보여주고자 하는 구두 전승, 이야기, 가르침의 모음집이다. 그러므로 역사학자들은 복음서들이 편향되어있다고 예상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복음서들이 부정확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윈스턴 처칠에 대해 매우 우호적인 관점으로 편향되었음에도 그의 생애에 관한 사실들을 정확하게 제시하는 전기가 있을 수 있듯이 말이다. 누군가가 ‘편향’이라고 부르는 것을 또 다른 누군가는 가장 적절한 해석으로 여길 수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어떠한 역사 기록도 완전히 중립적일 수는 없다. 모든 흥미로운 역사 기록에는 해석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역사 기록이 전제하고 있는 바를 분명히 아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