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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1719000
· 쪽수 : 128쪽
· 출판일 : 2021-07-10
책 소개
목차
제1부 미륵이 오는 방식
서리/ 곡우/ 강정으로 가는 비단구렁이/ 눈, 오네/ 미륵이 오는 방식/ 영등할망/ 물들어/ 서성이는 정거장/ 발자국/ 꽃잎에 갇혀서/ 미지로 가는 화석/ 공중 제단/ 푸른 발이 사라졌네/ 내 몸에 벌레가 산다/ 미여지벵뒤
제2부 그리운 문명
그리운 문명/ 봄밤/ 안 될까?/ 수상한 봄/ 줄,/ 나는 굴리고 싶다/ 마네킹/ 짐승/ 귀여운 올챙이/ 고사리/ 가시나?/ 그날이 멀지 않다/ 양파/ 밤비/ 미명
제3부 하늘을 달리다
하늘을 달리다/ 귀천歸天/ 먼지에게/ 매일 죽기/ 봉개 가는 길/ 너를 보내고/ 사이/ 응시凝視/ 부재, 속으로/ DNA/ 꽃구경/ 적멸/ 너의 어두움/ 서울의 십자가/ 시간을 달려가면/ 성냥팔이 소녀/ 슬픔을 팔아요
제4부 웅성거리는 별
위미爲美/ 달의 기억/ 나는 가끔 지귀도를 들고 온다/ 겡이죽/ 동백꽃 그날/ 지귀도地歸島/ 별처럼/ 집 한 채/ 껍데기/ 똥/ 동아이발관/ 말 속에 갇혀서/ 웅성거리는 별/ 꿈을 잃은 아침/ 무인 모텔/ 눈 속에 갇혀서/ 그런데 말입니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할머니는 미륵 가까이 계십니까
서천꽃밭 가는 길
생채기 가득한 칠머리당에서
바다로 떠난 누군가를 기다린 적 있습니다
숭숭 뚫린 돌담길, 억새에 묻혀 일렁일 때
거역할 수 없는 하늘이
나를 수중 보궁에 처넣는다면
신선한 미각을 가진 용왕의 입속에서 잘근잘근 씹힌다면
흩어진 살과 뼈는 싱싱하게 돋아날까요
누구의 치성인지
어린 배꼽 쓰다듬던 마을에 사락사락 눈 내리고
육신의 부스러기처럼 하얀 꽃이 무더기로 피어납니다
할머니 오시는 불도맞이* 하늘이,
시퍼런 작두 위
팔랑대는 벌레가 내 몸속 욱신거리던
벌레가 무더기로 내려와 비수처럼 박히는
질량을 알 수 없는 렌즈 속
나는 오래도록 미륵의 젖을 빨았습니다
* ‘불도맞이’는 제주 무속에서 삼신할망에게 자식을
점지해 달라고 비는 굿.
- 「미륵이 오는 방식」 전문
큰바람 부는 날 하늘에 실금이 갈 것이다
벼락같은,
나의 서툰 언어는 누구와 소통하고 있는지
낯선 말 밖에 좌정한 간절한 눈빛에 들어 지독하게 앓던
천계의 남루한 렌즈 속
거대한 별 무리 이끌고 억천만겁을 건너오시는
꽃 도포 펄럭이며 기어코 칠성판을 휘저으시는
내 안 가득,
거역할 수 없는 당신은 누구신가요
- 「영등할망,」 전문
뚜뚜 뚜뚜,
청진기 너머로 들려오는 미지의 신호음을 듣다가
말라비틀어진 가슴팍을 쩍, 열어젖혔다
긴 세월 달군 칼끝에서 뽀드득뽀드득
인간의 발걸음 소리 들려왔다
퇴적된 설원을 파헤치자
오방색 치마를 두른 미라가 재잘거렸다
곧바로 일어서서 달려올 것만 같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어질병 앓던 젊은 시절, 곤궁한 입술을 탐닉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얼마나 많은 날 직립을 꿈꾸었던가
그녀의 가녀린 몸을 쓰다듬고 선홍 입술에 호흡을 불어넣는 순간
생채기 가득한 칠성판에서 뚝, 등뼈 부러지는 소리 들렸다
나는 서둘러 뼈마디에 암각을 하듯 주저 흔을 남겼다
칼끝에서 시간이 찰칵찰칵 일어섰다
미지로 가는 시간의 암호가 얼마나 신선한지 궁금했다
조바심이 날수록 오염된 몸이 돌처럼 굳기 시작했다
봉합한 가슴팍의 실밥 사이로 멀리 추억여행 떠나는 기차 소음이 들렸다
나는 이미 미지로 보내진 진공 포장물인지도 모른다
직립한 미륵불의 전설처럼
공중에 서성이는 화석의 부스러기 속절없이 쏟아져 내리는 마을 어귀
마지막 신호음이 들렸다 뚜뚜뚜,
뚜뚜뚜
- 「미지로 가는 화석」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