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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2079820
· 쪽수 : 152쪽
· 출판일 : 2023-08-15
목차
시인의 말
1부
양말
수연산방壽硯山房
벽화마을
적요의 시간
물안개
한글날
심포니 NO.9
프로제리아
거인의 휘파람
아침을 찾아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들
지평선
2부
그날 이후
여우가 되자
각질
시지프의 바위처럼
분노 에너지
당신은 무슨 요일입니까
잔인함 혹은 통쾌함
혼몽昏懜
p의 함정
오월
단풍
3부
숲의 말
내 친구 나무 의자
통제불능
수선화
왕대리의 봄
미안하다
휴대폰
장미
당신은 가을입니다
만년필 1
만년필 2
도시의 비
4부
감수성
나무
종이컵
손톱
부탁드립니다
불편한 동거
잡부
커피처럼
나의 노래
어떤 대화
MBTI
각자성석刻字城石
도어락
5부
행복 증후군
마라톤과 잠자리
뜸봉샘
신성모독
당신처럼
수학여행
12월
열대야
노을보다 붉은 얼굴
족욕足浴
소천
자고 나면 괜찮아
해설
다의성의 언어와 풍부한 현실 환기력 | 박몽구(시인·문학평론가)
저자소개
책속에서
벽화마을
바다가 보이는 언덕
벽화 대신 마을 회관에 걸린 흑백사진이
시선을 끕니다
사진 속에는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작은 집들이 촘촘하게 들어차있습니다
벽화처럼 노랗게 피어나는 민들레가
흑백의 우울을 걷어냅니다
비좁은 골목에서 잠깐 비켜서는 법을 배웁니다
바깥소리가 점점 가늘어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어스름이 언덕을 타고 내려왔나 봅니다
어둠을 밀어내는 불빛이 힘겹습니다
집집마다 불빛을 타고 슬픔들이
새어 나옵니다
불이 꺼진 집에도 인기척은 있습니다
어쩌면 새어 나올 수 없는 무거운 슬픔이
들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뱀처럼 외로이 어둠을 배회하는
골목 어딘가에
아이 울음소리 들립니다
이집 저집 기웃거리며 울음소리를 따라가 봅니다
소리가 나는 집 앞에 멈춰 문을 열려는 순간
“아빠~”
하는 소리에 놀라
나는 얼른 사진 밖으로 나왔습니다
한쪽 발이 사진 속 그물에 걸린
늦은 저녁이었습니다
프로제리아
누군가에겐 시간이 약이지만
나에게는 시간이 병
잡으려 할수록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유년을 잃어버린 얼굴이 귤껍질처럼
말라가고 있어
빳빳한 소름이 몸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주름이 하나씩 늘어
생애 주기를 건너뛰며 날아가는
마의 속력 때문이거나
시간 여행의 피로 때문일 거야
가끔 나는 빛의 속도로 여행을 할 때가 있지
사람들은 코마에 빠졌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여길 벗어나
다른 세계에 가 있는 거야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두고 온 어린 시절이 있는
지구는 나의 미래 세계야
나이가 어려도 노인의 얼굴로
살아야 했던
짧았지만 아름다운, 아름다워서 슬픈
노을이 아름다운 것은
눈물이 나려 하기 때문이야
나 이제 돌아갈 시간
정오를 잃어버린 태양이
수면에 들면
나는 어느새 블랙홀을 빠져나와
웜홀을 지나고 있을 거야
시지프의 바위처럼
처음부터
쓰지 말았어야 했나
매달 결제해도
매달 청구되는
신용카드 고지서
한겨울 응달의 눈같이
좀처럼 녹지 않는
쌓여만 가는 가계부채
약속과 달리
선거 끝났다고
하석상대下石上臺 세금정책
자고나면 오르는
한파보다 더 무서운
고물가 고금리 각종 공과금
배달하고 돌아오면
다시 수북이 쌓여있는
물류창고 택배상자도 아니고
쇠똥구리처럼 바위를 굴려
산꼭대기에 올려놓고
내려오면
저절로 내려와 있는 바위
다시 굴려 올려야 하는
죽어야 끝이 나는 형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