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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2828725
· 쪽수 : 344쪽
· 출판일 : 2024-12-23
책 소개
목차
1부
남은 마흔 / 14
봄눈과 수필 / 20
강릉 가는 길 / 24
가면 / 32
도마 / 38
오래된 책상 / 43
독감을 함께 건너는 방법 / 49
어쩌면 아름다운 마디 / 56
맨발의 나에게 / 64
2부
엄마의 방 / 70
아버지의 등 / 77
폭설 / 85
아랫목 / 90
엄마의 향기 / 95
딸의 무대뽀 정신 / 99
가시도 아프다 / 106
숟가락 / 111
그린 핑거 / 115
작은딸의 작은방 / 123
3부
장수하늘소가 친구가 된 까닭 / 130
숲속의 섬 / 134
마리 이야기 / 142
‘울란바토르’를 찾아서 / 149
봄맞이 / 155
목련이 진다 / 160
렉터의 나들이 / 165
내 안의 앵무새 / 173
약속 / 179
조용한 작별 / 185
걸으니까 통하더라 / 193
앉지 못하는 새의 노래 / 203
4부
산사람들의 거짓말 / 214
집 / 222
‘원 달러’를 외치는 아이들 / 230
그녀와 새만금 / 235
목요일에는 길을 떠난다 / 242
시적인 것에 대하여 / 248
그림자 / 253
우이령길 / 260
저 많은 돌탑들은 누가 다 쌓았을까 / 264
5부
산의 미덕 / 272
귀로에 그믐달 / 278
그 여름날 주말농장 / 282
연일본 지진해일, 그날 이후 / 296
김치찌개 VS 불고기 / 303
행복으로 가는 길 / 309
애벌레에게 배우다 / 314
공기인형 / 319
당신은 이대로 충분합니다 / 322
발문
사랑이 넘치는, 다양한 삶의 편린들-정수남 소설가 / 329
저자소개
책속에서
남은 마흔을 자유롭고 조화롭게 가꾸고 싶다는 생각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친정 부모님이나 시부모님이 늙어가는 변화와 생활이 서글퍼 보이기도 하고, 어디가 아파 곧 죽어야겠다는 말씀을 종종 듣게 되면 덩달아 우울해지기도 했다. 가족과 일을 위해 자기를 희생했던 세월들이 남부끄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지금 어른들에게 남은 것은 늙은 몸과 삶의 피로와 허허로운 마음인 것 같다. 일생을 성실하게 살았고, 자식들 다 키운 후의 충만함이나 느긋함을 누릴 수도 있겠지만, 노년이 동반하는 허무와 쓸쓸함이 어른들의 낯빛을 더욱 창백하게 만드는 것 같다.
시간의 흐름은 비단 어른들의 모습에서뿐만 아니라 내게서도 드러나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칙칙하고 푸석하게 낯빛이 생기를 잃었고, 탄력 있는 맵시는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두세 시간을 자고도 거뜬히 다음 날을 보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정신이 몽롱해지고 그 피로가 얼굴에 확 드러난다. 이런 노화는 갱년기와 겹쳐서 자기연민의 수렁 속으로 밀어 넣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써야 충만하게 누릴 수 있을까? 어떻게 남은 마흔을 만족한 삶으로 만들 수 있을까? (「남은 마흔」 중에서)
이토록 적막한가. 세평 남짓 방. 장롱 하나, 5단 서랍장, 29인치 텔레비전, 그리고 앉은뱅이 안락의자 하나. 방바닥에 앉아서 엄마가 텔레비전 보는 것이 불편해 보인다고, 남편이 무턱대고 사준 안락의자였다. 엄마는 뭐 하러 돈 써가면서 그런 걸 사 왔냐고 쓸데없는 짓을 했다며 남편을 탓했지만, 커피 잔을 들고 너무나 편안한 자세로 안락의자에 앉아 드라마를 보곤 했다. 그러나 지금 엄마의 방에는 커피 향기도 없고, 아침 드라마의 신파극 같은 울부짖음도 들리지 않는다. 세 달 동안 주인이 떠난 방. 새삼 이 방이 ‘엄마의 방’이라는 것이 위로가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언제고 와서 있어줄 엄마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든든하고 포근해진다.( 「엄마의 방」 중에서)
세월과 함께 숟가락이 몇 개씩 늘어나다 보니, 지금 숟가락 통에는 여러 모양의 숟가락들이 섞여 있다. 어떤 것은 장미 꽃잎 도안이, 또 어떤 것은 계수나무 잎이 그려져 있다. 어떤 것들은 숟가락 모양이 둥그스름한데, 또 어떤 것들은 다소 길쭉한 모양을 하고 있다. 다른 모양의 숟가락들이지만, 오목 들어간 자리나 볼록 나온 언덕에는 다 같이 오래된 무늬들이 만들어졌다. 숱하게 음식과 입속을 드나들었다가 수세미에 박 박 씻긴 시간이 무성한 잎맥 같은 무늬를 만들었다. 그 시간 동안 우리 삼형제는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나이를 먹었고, 돌잡이를 했던 일이 엊그제 같은 아이들은 어른 숟가락을 쥘 만큼 쑥 쑥 자랐다. 동시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은수저 같은 흰머리 노인이 되어버렸다. (「숟가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