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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미술 > 화집
· ISBN : 9791193027561
· 쪽수 : 120쪽
· 출판일 : 2025-11-06
책 소개
천 년 넘게 살아낸 거목을 그려온
화가 최선길의 인생 그리고 자연 이야기
은행나무에 사로잡힌 화가가 있다. 오랫동안 한국의 산과 나무를 화폭에 담아온 화가 최선길.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그는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자연의 풍경 속에서 인간의 삶을 성찰해 왔다. 그러던 중에 한 나무를 만났다. 1318년을 산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다.
“그 나무는 내가 지난 30여 년 동안 그린 나무 그림들의 결정체를 보는 듯했다.”
이 거대한 나무가 주는 생명력에 반한 화가는 매일 한 자리에서 은행나무의 사계를 화폭에 담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천 년의 노래’라 지었다. 그렇게 5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1000호의 대작으로 화폭에 담긴 은행나무는 아침 나절의 빛과 가지 사이로 부는 바람, 저녁 노을의 색감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의 그림을 본 이들은 저마다 그림에서 나부끼는 바람을 느꼈노라 고백한다.
"이 그림을 보고 슬픔을 치유했다.“
"그림에서 향이 나는 듯,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천 년을 살며 터득한 나무의 지혜가, 나무의 틈 마다 머무는 바람과 공기가 뿜어져 나온다."
계절의 빛과 바람, 생동하는 자연
그림 작품이 선사하는 몰입과 명상의 시간
<어느 날, 한 나무를 만났다>는 최선길 화가의 40여 년 작품 세계를 아우르는 첫 책이다. 사생하며 남긴 짧은 작업 노트와 전시 때마다 갈무리한 생각들을 모두 담았다. 작가에게 숲은 인생의 거울이며, 나무는 인간의 삶을 반추하게 만드는 매개다. 천 년을 넘게 산 나무의 시간 앞에서 인간의 시간은 초라할 만큼 짧고 덧없다. 쉼 없이 부는 바람과 태풍에도 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선 나무는 그 자체로 기적과도 같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다.
작가가 수고스럽게 매일 현장에 나가 사생하기를 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내에서 그리는 정물화가 아니라, 탁 트인 들판에서 지는 해, 부는 바람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나무를 그려 내기란 쉽지 않다. 여름 더위와 겨울 추위를 오롯이 나무와 함께 버텨 내며 완성한 작품이다. 이렇게 수고스럽게 그려야만 할까. 그러나 작가는 사생이야말로 살아 있음을 온전히 체감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대상의 본질을 포착하는 작업이라 말한다. ‘지금, 여기(hic et nunc)’에서 흘러가는 시간과 공간의 연속성을 고스란히 화폭에 담아 내는 그의 작업은 그렇기에 철학적이며, 어떤 면에서는 명상과도 맞닿아 있다. 때문에 저자는 어느 순간 내가 나무를 그린 것이 아니라 ‘나무가 나를 그렸다’라고 말한다. 나무가 가르쳐 준 무아(無我)의 경지다.
독자를 몰입시키는 그림 명상
"삶의 사계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
텍사스의 마크 로스코 채플,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의 모네 수련 연작,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과 달항아리. 여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가 하루 종일 작품 앞에 서서 시간을 보내다 눈물을 흘리고 돌아온다는 점이다.
최선길의 은행나무도 그렇다. 천 년 넘는 세월을 살아낸 거대한 나무의 그림을 본 사람들은 감동과 전율에 휩싸인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느껴지는 듯, 금방이라도 가지가 흔들 듯하다. 이 나무 그림 앞에 오랜 시간 서서 사람들은 천 년 넘게 산 나무의 삶이 아니라 자신의 지나온 삶을 반추한다. 바람에 나부끼는 잎새들은 볼 때마다 새로운 감상을 불러온다. 보는 이의 마음이 투영되는 까닭이다.
자연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사색과 철학
화가 최선길의 글과 그림
한 가지 일에 몰두한 장인의 삶은 궁극적으로 깨달음에 가 닿는다고 한다. 화가의 삶도 마찬가지다. 40여 년간 그림을 그리며 작가가 천착한 것은 존재에 대한 성찰이다. 그 대상은 자연이기도 하고, 인간이기도 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인 동시에 그 모든 것이 결국 ‘나’라는 하나의 우주로 귀결된다.
최선길 화가의 그림은 아름답고 편안하지만, 동시에 우직하고 묵직한 무게감이 있다. 작가의 철학이 주는 단단한 중심과 깊이 때문이다. 그의 첫책 <어느 날, 한 나무를 보았다>는 최근작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작가가 반계리 은행나무라는 정점에 가 닿았는지 그 전체 과정을 보여 준다. 산에서 숲으로, 숲에서 나무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는 화가의 시선을 따라 가다 보면, 왜 그가 5년간 매일 은행나무를 찾아가 현장에서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는지가 느껴진다.
남해의봄날이 선보이는 ‘화가의 책’ 시리즈
오래도록 정겨운 구멍가게를 그려온 이미경 화가, 캐나다의 국민화가라 불리는 모드 루이스, 깊고 다채로운 통영 바다를 담은 작품으로 감동을 준 김재신 화가 그리고 천 년 거목을 그려온 최선길 화가의 첫 책까지, 남해의봄날은 꾸준히 국내외 주목할 만한 ‘화가의 책’을 선보여 왔다. 단순히 화가의 작품만 옮겨 담은 것이 아니라, 화가가 직접 쓴 글과 함께 엮어 작가의 삶과 생각, 작품 세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시리즈의 특별한 점이다. 또한 작품을 감상하기에 적합한 큰 판형에 오랜 소장에 알맞은 양장 제책으로 그림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꾸준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목차
prologue
산, 인생의 계절들
어느 날, 한 나무를 만났다
천 년의 노래, 바람과 함께 춤을
epilogue
저자소개
책속에서
어느 늦은 봄날이었던가.
햇살이 따스하고 바람이 가슴을 술렁이게 했던 날.
운전하며 가던 중 길가의 가로수가 봄볕을 받으며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았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반짝반짝 빛나는 잎사귀들이 사르랑사르랑 소리를 내며 바람결에 파르르 떨고,
자유롭게 흔들리는 모습들이 내게는 ‘생명’ 그 자체로 보였다.
그 나무는 내가 지난 30여 년 동안 그린 나무 그림들의 결정체를 보는 듯했다. 무려 1300여 년이 넘는 수령을 지닌 반계리의 은행나무였다. 긴긴 세월을 살아낸 그 나무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내내 고맙고 가슴 벅차고 왠지 모를 힘이 솟아났다.
나는 순간 그 나무의 사계절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그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그 느낌들을 일기처럼 기록으로 남겼다.
현장에서 살아 있는 대상과 마주 앉아 그림을 그리면 늘 생각지 못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변덕스런 날씨로 인한 빛의 현란한 변화가 그 첫 번째다.
변화하는 빛을 좇아 그리려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고 부질없는 짓인지 금세 알아차린다.
한순간도 제자리에 머물지 않는 빛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실내에서 데생을 할 때의 명암 개념으로는 도저히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없다.
바람으로 수없이 흔들리는 대상의 색은 또 어떠한가.
현장은 이처럼 해결하기 힘든 문제투성이다.
그걸 해결하자 덤비면 그림은 관념적으로 치닫는다.
그러할 때 그림에 진실이 담길 수 있겠는가.
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순간순간 느낌대로 바람과 함께 춤을 추다 보면 어느새 문제는 다 사라지고 생기 넘치는 붓질과 색채의 향연이 고스란히 화폭에 전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