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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3044025
· 쪽수 : 136쪽
· 출판일 : 2023-04-15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정리 필터 작동이 수동이라는 것은…
깨끗하고 어수선한 방
‘알아서 정리하는 사람’까지는 되지 못해서
청소빚 갚기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어질러질 일도 없지만
애자일 방식으로 두 주를 한 스프린트로 잡아서
정리로의 도피
신경 쓰이는 것들, 신경 쓰이지 않는 것들
우울할 때 벽장을 연다
청소 판타지
정리를 잘하던 그는
살천도
나는 그가 누군지 모른다
모드 전환
단정함과 통일성
정리해고
디지털 호더
기억의 수납장
어두운 밤으로 순순히 먹혀들지 마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단정하게 빗어내린 머리에 우아하고 세련된 정장을 차려입고 흐트러짐 하나 없는 자세로 넓은 유리창 앞에 서서 멋진 야경을 내다보는 여성의 이미지. 그녀의 코트에는 보푸라기가 일지 않을 것이고, 머리카락은 뻗치지 않을 것이며, 그녀의 널찍한 아파트 어디에서도 꽉 찬 쓰레기통이나 아직 개지 못한 빨래 더미, 머리카락이 잔뜩 엉킨 빗 따위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정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뭔가를 계획한 대로 끝내지 않고 다음 일을 벌이는 버릇, 그러면서도 중도에 포기했음은 인정하기 싫은 데서 비롯되는 일이었다. 여지를 두는 것이다. 나는 곧 돌아올 것이라고 가짜 약속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누가 대신 정리하는 것도 질색한다. 너저분하게 늘어놓긴 했지만 나는 ‘아직 작업 중’인데 방해를 받는 셈이라 그렇다. 그런 현실부정이 몇 달째라도 말이다.
주말에는 써야 할 원고를 마무리 지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므로 주말 아침 나는 진한 에스프레소를 좍 들이켜고 팔을 걷어붙였다. 그 순간 갑자기 내 안의 ‘정리 필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사방에 치울 거리가 넘쳐났다. 나의 능력과 시간 부족을 핑계로 오랫동안 혼돈 구역으로 내버려둔 서랍 안이 거슬렸고, 몇 달간 별생각 없이 잘 써왔던 그릇장도 이제 보니 너무 뒤죽박죽이라 새로운 분류 체계가 시급해 보였다. 식기건조기, 전자레인지, 오븐 등의 가전과 스테인리스 재질의 주방 기구에 덮인 얼룩도 철퇴를 내려야 할 대상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