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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예배/기도/묵상(QT)
· ISBN : 9791193507728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26-04-07
책 소개
이 책은 끝없는 생존 경쟁과 제국의 우상 속에서 소진되어 가는 현대인들에게 “오직 만물의 창조자이시자 통치자인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세상을 충만하게 하실 수 있다”라는 강력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저자 자신의 치열한 묵상과 대표목사로 있는 나들목 동행교회 성도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가 농축된 따뜻하고 진정성 있는 골로새서 강해 및 묵상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을 왜 읽어봐야 할까요? 3가지입니다.
첫째, 제국의 우상에 저항하는 대안적 세계관 제시 : 돈, 권력, 성공이라는 현대의 제국적 이데올로기와 “그리스도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세상의 헛된 속임수를 예리하게 분별하도록 돕습니다. 거대한 제국의 지배 아래서도 황제가 아닌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했던 골로새 교회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일상과 관계 속에서 어떻게 거룩하게 저항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합니다. 둘째, ‘나’를 넘어 ‘새 사람 공동체’로 엮여가는 삶 : 골로새서가 말하는 ‘새 사람’은 단순히 개인의 도덕적 수양을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교회 공동체’ 전체를 의미합니다. 저자는 공동체로 엮여가는 과정에서 마찰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 현실 속에서 서로를 용서하고 사랑을 더할 때 비로소 세상에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동역의 위력’이 나타남을 강조합니다. 셋째, 삶과 목양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생생한 스토리텔링 : 독일 고속도로에서 겪은 아찔한 생존의 위기, 자녀 양육의 이야기, 가정교회 안에서 겪은 갈등과 회복 등 저자 주변의 일상적 일화들이 성경 본문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집니다. 신학적으로 깊이 있으면서도 누구나 쉽게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저자 특유의 따뜻한 언어로 쓰였고, 각 장의 끝엔 적용 질문과 기도가 수록되어 있어 소그룹 나눔 교재로도 탁월합니다.
■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1. 고갈된 세상살이와 신앙으로 살아내야 하는 삶의 현장 한복판에서 다시 충만함을 누리길 갈망하는 그리스도인.
2. 기독교의 본질과 ‘진짜 교회 됨’의 의미를 찾고 고민하는 성도 또는 목회자.
3. 소그룹(가정교회, 구역 등)에서 함께 성경을 읽고 삶을 나누기 위한 건강한 교재를 찾는 리더나 순장들.
4. 대안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어떻게 실제로 이뤄지고 있는지 보고 싶은 분.
5. 골로새서 본문을, 주석적 설교가 아니라 실천/적용 강해로 읽기 원하는 분.
목차
추천사
저자 서문
1장 은혜의 시작
2장 소망의 기도
3장 충만의 근원
4장 삶의 이유
5장 거룩한 오지랖
6장 행복한 동행
7장 분별과 저항
8장 거룩한 지향
9장 새 사람으로의 변화
10장 새 사람 공동체
11장 새 사람의 관계
12장 새로운 습관
13장 동역의 위력
저자 후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은혜는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예수님조차 낮고 낮은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 낮은 곳에 흐르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힘입어 사셨습니다. 무엇보다 그분은 우리 중 하나가 되셔서 1/n로 사셨습니다. 자기를 증명하시기 위해 높은 곳에 오르지 않으셨습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셨습니다.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신적 권리를 모두 포기하시며 우리 중 하나가 되셨습니다.
아내는 세 아이를 모두 자연 분만으로 낳았습니다. 이 사진 속 아내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합니다. 이는 고통이 없거나 앞으로 겪게 될 해산의 고통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곧 만나게 될 새 생명과의 조우가 주는 기쁨과 환희를 알기에 그녀는 고통 속에서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고난 속에 기쁨과 감격, 행복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이처럼 고난을 기쁘게 감내하는 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과 우리가 겪는 고난은 타 종교의 수행자가 겪는 고행과는 다릅니다. 기독교의 고난은 고난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그 고난을 통해 진리나 구원에 이르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과 같은 참된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기꺼이 감내합니다. 때로는 고난을 자처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었고, 그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교회와 그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거룩한 오지랖으로 우리를 이어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