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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간증/영적성장
· ISBN : 9791193996164
· 쪽수 : 240쪽
· 출판일 : 2024-09-25
책 소개
목차
추천사
프롤로그
STORY 01 늑대와 춤을
늑대와 농사를 ∥ 소의 등을 타다 ∥ 외로움이 별이 되다 ∥ 계속되는 늑대와 춤을
STORY 02 한센인 할아버지와 춤을
만져 주시는 찐사랑 ∥ 아파서 더 행복하다 ∥ 안동성좌원에서 하나님 나라를 보다 ∥ 소록도에서 하나님 나라를 보다 ∥ 계속되는 할아버지와 춤을
STORY 03 알코올 의존의 아버지와 춤을
탄광촌에서 놀라운 부르심 ∥ 서상복 안고 울어 주기 당번 ∥ 아버지께서 찔린 상처는 예수님의 흔적 ∥ 아버지의 가시가 아직 아프다 ∥ 계속되는 아버지와 춤을
STORY 04 가족과 춤을
아내와 춤을 ∥ 두 아들과 춤을 ∥ 나와 춤을 ∥ 어머니와 춤을 ∥ 장모님과 춤을 ∥ 계속되는 가족과 춤을
STORY 05 제자들과 춤을
28년간 제자를 품다 ∥ 선생님보다 아빠 ∥ 교단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 ∥ 천국의 아이들 ∥ 계속되는 다음 세대와 춤을
STORY 06 아픈 이들과 춤을
페라프로헬퍼, 아픈 세상을 품다 ∥ 국내 전문인 선교사, 교회와 춤을 ∥ 연애학교·결혼예비학교, 청년과 춤을 ∥ 가정행복학교(부부학교), 가정과 춤을 ∥ 책으로 하나님 나라 춤을 ∥ 계속되는 아픈 이들과 춤을
에필로그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프롤로그
상처와 아픔의 때마다 나에게는 ‘그 어디나 하늘나라’였다. 주 예수와 동행하니 슬픔과 아픔과 외로움에도 하늘나라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성전 지성소에 두는 법궤는 얼마나 값비싸고 귀하던가? 역설적이게도, 법궤를 만든 나무는 그 당시 제일 흔하고 싸며 값어치 없는 ‘싯딤나무(Shittim tree, acacia)’였다(출 25:5, 10, 13, 23; 26:15, 26; 27:1, 6; 37:15; 욜 3:18; 사 41:19). ‘아카시나무’라는 뜻이다. ‘싯딤나무’는 우리말로 말하면 ‘아까시나무’에 가장 가까우며, ‘조각목’이라고도 부른다(출 25:5, 10). 사실 싯딤나무는 불쏘시개가 자신의 최고의 역할인 초라하고 쓸모없는 나무다. 귀한 목공품이나 가구를 제작하는 데는 쓰일 수 없다. 그런 싯딤나무에 순금을 안과 밖으로 덮어서 새롭게 한다. 기름을 부어 정결하게 한다. 이제 싯딤나무로 만든 법궤는 이 전에 싯딤나무가 아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가장 고귀한 법궤가 되었다. 아마도 지금까지 그대로 법궤가 남아 있었다면 아마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비싼 물건일 것이다.
나에게도 이런 은혜가 이루어졌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환경이 크게 좋아지지는 않았다. 신분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돈이 많이 생기지도 않았다. 성공도, 해결된 것도 없지만, 나는 ‘예수님짜리’가 되었다. 비싼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예수님의 신부’도 되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보혈로 나의 상처와 거절을 덮으셨고, 안과 밖을 모두 덮으셨다. 그래서 나는 성령님이 임재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인생이 되었다. 다른 수많은 사람을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게 하는 삶도 살게 되었다. 은혜, 은혜이다. 베드로에게 맡기신 “내 양을 네가 먹이거라”라는 놀라운 사명도 감당하는 ‘의미 있는 존재, 사명자’가 되었다. 그걸로 충분하다. 더 바랄 것이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자주 부르는 찬양이 있다.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이다. 특히 후렴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이 부분은 내 삶의 모토(Motto)이기도 하다. 해피가정사역연구소(해가연 상담센터)의 주제이기도 하다.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가 내 삶이다.
하나님은 나를 ‘상복(喪服)’에서 ‘상복(相福)’으로 역전시키셨다. ‘상복(喪服)’은 ‘죽은 자에게 입히는 장례식 옷’이다. ‘상복(相福)’은 ‘서로 도와 하나님 나라의 복을 받는 인생’이라는 뜻이다. 슬픔에서 기쁨으로 역전된 것이다. 성경에도 역전하는 인생을 살았던 인물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베냐민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베냐민은 아버지 야곱과 어머니 라헬에게서 태어났다. 출생 중에 엄마가 하혈로 인해 죽었던 참 슬픈 인생의 시작을 겪었다. 야곱은 아내가 죽으면서 지어 준 아들의 이름인 ‘베노니’를 거절하고 ‘베냐민’으로 불렀다. 역전된 것이다. 새 피조물이 된 셈이다.
‘베노니’는 ‘내 슬픔의 아들’, ‘왼손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베냐민’은 ‘오른손의 아들’, ‘행복한 아들’, ‘행운의 아들’, ‘남방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야곱이 아들의 정체성을 새롭게 만들어 주었다. 내 삶의 대전환도 마찬가지다. 창세기 35장 18절의 말씀이 이루어졌다. ‘베노니를 베냐민으로’ 바꾸는 삶이 내게도 이루어진 것이다.
내 영적인 이름도 ‘베냐민’이다. ‘행복한 아들’, ‘오른손의 아들’이다. 어린 시절의 서상복은 죽을 때 입는 ‘상복(喪服)’ 같은 베노니 인생이었다. 특히 초등학교 때 가장 많이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중학교 때 믿음이 자라면서 ‘상복(相福)’이라는 내 이름이 서로 도와서 복을 받으라는 좋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내 이름과 존재 자체에 감격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을 하나님 나라의 길로 인도해서, 별의 역할을 하라는 것이 아닌가! ‘베냐민’이 된 것이다. ‘상복(上福)’, 가장 높은 하나님의 복,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리고 나누며 확장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게 되자 나는 이미 참복을 누리는 자가 되었다. 즉, 하나님 나라를 적극적으로 나누는 사람이 되었다.
‘서상복’, 그대로만 보면 살아온 세월처럼 마냥 슬픈 이름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품에 안긴 나는 이제 기쁜 이름으로 바뀌었다. 진리 때문에 그렇게 이름도, 정체성도 바뀌고 자유로워졌다(롬 5:8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