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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신앙생활일반
· ISBN : 9791194216124
· 쪽수 : 376쪽
· 출판일 : 2025-02-27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며
1부 예수님의 생애
보이는 게 다는 아니다 ⚫ 게리 멜쳐스, 〈설교〉
겸손하고 순하게 ⚫ 프라 안젤리코, 〈수태고지〉
속된 것의 역설 ⚫ 알브레히트 뒤러, 〈기도하는 손〉
세상의 모든 마리아를 위하여 ⚫ 로저 반 데르 바이덴, 〈방문〉
가장 낮은 곳으로 ⚫ 렘브란트, 〈목자에게 나타난 천사〉
신뢰하는 삶 ⚫ 헤리트 반 혼토르스트, 〈어린 시절 그리스도〉
먹는 것이 그 사람이다 ⚫ 야코프 데 빗, 〈세례받는 그리스도〉
만물의 통치자 ⚫ 카타리나 수도원, 〈판토크라토르〉
황금 접시 ⚫ 지오토 디 본도네, 〈예수의 탄생〉
모두가 공존하는 나라 ⚫ 빈센트 반 고흐, 〈씨 뿌리는 사람〉
더 가난한 자를 위하여 ⚫ 프리츠 폰 우데, 〈식사기도〉
개와 그리스도 ⚫ 엘 그레코, 〈시각장애인을 치유하는 예수〉
네가 변해라 ⚫ 라파엘로, 〈그리스도의 산상 변모〉
여인의 두 렙돈 ⚫ 제임스 티소, 〈과부의 헌금〉
모두를 위한 빛 ⚫ 렘브란트, 〈나사로의 부활〉
2부 수난과 부활
르네상스의 서막을 열다 ⚫ 지오토 디 본도네, 〈예루살렘 입성〉
오늘을 비추는 거울 ⚫ 지오토 디 본도네, 〈유다의 배신〉
나를 위한 식탁 ⚫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
예수가 되든지, 개가 되든지 ⚫ 페테르 파울 루벤스, 〈최후의 만찬〉
배신과 용서 ⚫ 프리다 칼로, 〈상처 입은 식탁〉
술집에서 만난 예수 ⚫ 파올로 베로네제, 〈세족식〉
한국 예수 ⚫ 운보 김기창, 〈겟세마네 동산 기도〉
이 사람을 보라 ⚫ 캥탱 마시, 〈에케 호모〉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인간 ⚫ 카라바조, 〈베드로의 부인〉
당신을 위한 초대장 ⚫ 페테르 파울 루벤스, 〈십자가에 달리심〉
십자가 주위 사람들 ⚫ 제임스 티소, 〈우리의 구원자는 십자가 위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죽음 ⚫ 안드레아 만테냐, 〈죽은 그리스도〉
빵을 떼는 순간 ⚫ 카라바조, 〈엠마오의 만찬〉
저주의 이름 ⚫ 조반니 카나베시오, 〈유다의 자살〉
질문하는 신앙 ⚫ 카라바조, 〈의심하는 도마〉
돌아섬 ⚫ 카라바조, 〈다메섹 도상의 회심〉
천국과 지옥 ⚫ 한스 멤링, 〈최후의 심판〉
우리 안의 천국 ⚫ 대 크라나흐, 〈최후의 심판〉
성경, 그림 한 장에 담기 ⚫ 대 크라나흐, 〈율법과 은총〉
지복의 삶 ⚫ 크라나흐 부자, 〈바이마르 제단화〉
3부 교회와 세상
이것이 교회다 ⚫ 비텐베르크 종교개혁 제단화
선하고 악한 정부의 알레고리 ⚫ 암브로지오 로렌체티, 시에나 시청사 9인의 방 벽화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소위 ‘명화’라고 불리는 작품들은 색채나 구도의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힘이 있습니다. 그 안엔 작가가 살던 사회와 정치·경제적 맥락도 담겨 있고, 시대를 넘어서는 예언자적 메시지도 담깁니다. 특별히 근대 이전 서양 역사는 교회와 관련이 깊습니다. 교회의 성장과 쇠퇴, 갈등의 시간 가운데 작가들은 저마다 새로운 시각으로 작품에 메시지를 담아냅니다. 이런 이유로 그림 감상은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종교화를 감상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그림에 담긴 요소들을 읽어 내는 일부터 시작합니다.…제가 아는 한, 빼곡한 글씨로 압도하는 신학 논문이나 설교보다 그림의 힘이 더 강합니다. 그림 한 장에 담긴 역사, 신학, 인생 이야기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게 그림과 예술의 힘입니다.
‘들어가며’ 중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만 중요하고 아름답게 생각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들은 때로 자기 몸을 숨깁니다. 진리, 그리고 참으로 가치 있는 것들은 때로 우리 시야에 잡히지 않습니다. “거룩한 것, 가장 귀한 것은 숨겨져 있다”라는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말은 사실입니다. 바로 이 그림처럼 말입니다.
성공회 대주교 로완 윌리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장 가난한 사람이 가장 좋은 것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성탄과 그날의 복된 소식이 우리에게 가장 분명하게 전하는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의 말대로 하나님의 눈에는 가장 가난한 자가 가장 좋은 것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단지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지칭하는 게 아닙니다. 마리아처럼, 엘리사벳처럼, 사라처럼, 라헬과 한나, 나오미와 룻처럼 냉가슴을 앓고 마음이 상한 자가 가장 좋은 위로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무슨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가장 가난한 자, 가장 마음이 상한 자, 가장 극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이 가장 좋은 것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처한 비극의 심연을 살피시고 그 어두운 곳, 포기와 절망의 늪에서 그분의 능력이 흘러넘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라는 말의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