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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불교 > 불교 경전/법문
· ISBN : 9791195256310
· 쪽수 : 384쪽
· 출판일 : 2014-09-19
책 소개
목차
머리말
제1부. 금강반야바라밀경 - 역해 아하광파
제2부. 금강삼매경과 현대의 대선사들
1. 금강삼매경 - 해설 아하광파
2. 현대의 대선사들
(1) 경허 성우스님 행장 - 방한암스님
(2) 불교계 거인 방한암스님 - 김탄허스님
(3) 한국 불교중흥의 꽃 탄허스님 - 고준환
(4) 바람처럼 왔다간 거성 월면 만공스님 - 아하광파
(5) 공적영명의 천진불 김원담스님 - 아하광파
(6) 하동산스님 수행관 - 고준환
(7) 이 뭣고?(이성철스님) - 고준환
제3부. 금강경과 생활철학
1. 금강경과 서산대사 선가귀감 - 최동락 법사
2. 금강경과 정치철학 - 정천구 교수
3. 금강경과 문화예술 - 유종민 교수
4. 금강경과 달마상법 - 김선형 교수
5. 금강경과 명심보감 - 정대구 교수
6. 금강경과 경제 - 정재락 교수
7. 금강경과 기업경영 - 고준환 교수
8. 금강경과 법철학 - 고준환 교수
저자소개
책속에서
성철스님 하면 떠오르는 것이 돈오점수(頓悟漸修)냐? 돈오돈수(頓悟頓修)냐?의 논쟁 사건이다.
한국 선가에서는 일반적으로 보조국사지론의 견해로 돈오점수(몰록 깨닫고 난후 점차로 수행함)를 지지했던 바, 성철스님이 보조국사지론이 틀렸고 돈오돈수(몰록 깨닫고 몰록 수행성불함)가 옳다고 발표함으로 불교계가 발칵 뒤집히고, 학술세미나 등도 가졌는데, 결국 명쾌히 정리되지를 못했다. 당시 성철스님과 선교쌍벽을 이뤘던 탄허스님은 돈수라고 해도 점수인 보림을 항상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부처님은 머무는 자기 주장이 따로 없는 분이다. 이를 정리하는 것으로 이 글의 끝을 맺을까한다.
첫째, 본각(本覺본불)의 자리에서는 무수무증(無修無證)이다. 닦을 것도 증득할 것도 없다.
둘째, 인류는 많고 깨달아 성불하고자 하는 사람도 많고, 깨달음도 여러 가지 구분이 있기에 정해진 법은 없으나(無有定法) 여러 가지 경우가 있을 수가 있다. 점오점수(漸悟漸修, 점차로 깨닫고 점차로 수행함), 점오돈수(漸悟頓修, 점차로 깨달아 몰록 깨달음), 돈오점수((頓悟漸修, 몰록 깨닫고 점차로 수행함), 돈오돈수(頓悟頓修, 몰록 깨닫고 몰록 수행 성불함) 등이 그 예이다.
셋째, 돈오점수가 대체적으로 타당하다. 중생불이 견성성불하는데 불이문(不二門)에 들기 전에는 방황하는 수준이고, 불이중도에 계합하는 체험이 견성인 바, 견성한 후에는 이즉돈오(理卽頓悟, 도리는 몰록 깨달음)나 사비돈제(事非頓除, 업장 등은 갑자기 제거되지 않음)이므로 보림과 보살도가 필요하니, 이는 넓은 의미의 수행이므로 점오라 할 수 있다. 돈오점수인 것이다.
넷째는 돈오돈수인데, 몰록 깨치고, 몰록 닦아 성불하는 분도 있을 수 있다. 석가모니가 그 대표적인 분이고, 중국 6조 혜능대사를 돈오돈수의 예로 드는 분도 있기는 하다.
성철스님은 돈오돈수 하셨는가?
존재는 차재(此在, 지금 여기 now here)이다. 불이중도 계합체험이 중요하다. 불이중도 무아연기 공화무착 시시각각(不二中道 無我緣起 空華無着 時時覺覺)
진리에는 두 가지, 즉 승의제와 세속제가 있다. 금강경은 최고의 진리, 즉 승의제로 인도하는 경전이고 정치철학은 세속의 진리에 관해 논한 것이다. 그러나 그 두 가지는 서로 연관이 있다. 두 가지 모두 우리의 한 마음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효성사는 일심을 심진여문(心眞如門)과 심생멸문(心生滅門)의 두 문으로 나누고, 두 문은 각자 자기만을 지키면 안 되고 서로 소통해야 한다고 했다. 다시 말해 진리세계와 현상세계는 독립된 것이 아니라 일심이라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기에 서로 교섭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여는 옳고 깨끗하다 하여 자기를 절대화 하지 않고, 자기의 법상(法相)을 버림으로써 생멸문으로 나가 속세와 교섭한다. 그리고 심생멸문은 자기의 고향인 일심 속 진여와 소통하여 일심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최고의 진리를 설하는 금강경과 세속의 이치를 논하는 정치철학이 서로 소통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금강경을 문화의 범주와 연계시키는 초점을 금강경의 무위와 무유정법의 상승법에 맞춘다면 현대문화예술의 지향점도 명료해진다. 모든 유위세계의 근원은 무위다. 유위의 예술이 그 근원인 무위를 발견하고 본질에 접근해 감으로써 그 의미를 근원적인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창작자의 입장에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 예술의 향수를 창달해 가는 대중이 고양 될 때 가능한 것이다.
굳어진 가식의 자아가 사라지고 일체중생이 멸도된 무아의 참나가 밝게 빛나는 여래의 여여한 세계, 다함 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 빛살로 다녀가는 생명의 본 모습을 보게 하는 금강경은 문화에 다함 없는 빛을 비추어 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