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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노래

별의 노래

남풍 (지은이)
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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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노래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별의 노래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5668519
· 쪽수 : 336쪽
· 출판일 : 2018-12-03

책 소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남풍의 장편소설. 작가의 남다른 생의 굴곡과 뜨거운 감성을 사랑의 언어로 작품에 쏟아넣었다. 한 여자만 사랑한 남자의 이야기. 죽음마저 그들의 사랑을 갈라놓지 못한다. 사랑과 죽음을 되돌아보게 하는 소설.

목차

서문
차례
프롤로그 | 9
첫번째장 임진강 | 11
두번째장 약속 | 27
세번째장 어린 사랑, 어린 우정 | 39
네번째장 잔인한 계절 | 51
다섯번째장 다시 만남 그리고 이별 | 67
여섯번째장 질풍노도의 시기 | 83
일곱번째장 완도 | 101
여덟번째장 그림자 | 121
아홉번째장 고아 | 135
열번째장 출가 | 151
열한번째장 행자 | 165
열두번째장 천국과 지옥 | 181
열세번째장 포기 | 197
열네번째장 새 출발 | 211
열다섯번째장 천사들의 도시 | 227
열여섯번째장 전쟁 | 241
열일곱번째장 기적 | 257
열여덟번째장 낙원 | 273
열아홉번째장 시를 쓰며 살다 | 289
스무번째장 별사랑 | 303
스물한번째장 태평양 | 315
에필로그 | 333

저자소개

남풍 (지은이)    정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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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나는 떠나간다. 이 섬을 떠나간다. 작은 배에 아내의 주검을 싣고 섬을 떠나간다. 적지 않은 시간 우리의 낙원이었던 섬을 벗어나 넓은 바다로 향한다. 이곳은 꽃이 만발하고 별들이 찬란한 나라였다. 그리고 사랑과 화목이 깃들어 있는 나라였다. 그것은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이 섬 곳곳에 절절히 묻어 있기 때문이었고 그 위에 아내와 나의 사랑이 두터운 지층이 되어 쌓였기 때문이다. 내가 이곳을 떠나는 것은 오로지 아내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기 위해서이다. 아내가 소망하는 평화롭고 넓은 바다로 가기 위하여…….

눈을 들어 멀리 수평선을 보면 아스라니 하늘과 바다가 닿은 경계가 모호하다. 어디까지가 바다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구분할 수 없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신이 몽롱해진다. 조용했던 바다 위로 잔잔한 바람이 불어오자 수많은 작은 비늘 같은 물결이 생긴다. 그러자 바다는 헤아릴 수도 없는 보석들로 덮여버린다. 바다는 온통 아름다운 모습으로 반짝인다. 나는 눈이 부시고 어지러움을 느껴 눈을 잠시 감았다가 다시 뜨곤 한다. 바다가 쉬는 것처럼 온화한 모습일 때 그것을 보는 사람의 마음도 평화로워진다. 바다가 조용할 때의 모습은 단순하다. 하나의 선과 하나의 색깔. 하지만 물가에 살아본 사람들은 안다. 바다의 또 다른 모습을. 바다가 얼마나 무서운지. 바다가 화를 내면 얼마나 두려운지.

태평양. 나는 지금 평화롭고도 무서운 바다로 나아가고 있다. 나의 유일한 사랑을 싣고. 내가 평생 단 한번 빠진 사랑. 작은 배에는 나와 나의 사랑만이 있다. 나의 사랑도 이 바다 같았다. 단순하고 온화하기도 했으나 때로 치명적인 힘으로 내 영혼을 흔들고 힘든 인생의 항로를 가게 했던 사랑. 나의 사랑은 강과 더불어 시작되었고 바다에서 마치려 하고 있다. 물에서 시작해서 물에서 끝나는 것이다. 미련이나 후회는 없지만 가슴 깊이 사랑과 슬픔으로 물들어 있다. 내 가슴은 바닷물처럼 깊은 곳에서부터 파란색으로 가득 차 있다. 나의 인생과 사랑의 마지막을 보고 있는 지금, 눈앞의 수평선에는 어린 시절의 강이 떠오르며 지난날을 회상하게 된다.

- 프롤로그


미경이 교회를 다닌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운동장에서 건평과 셋이서 놀다가 미경이 말했다.
“나 어제 교회에 갔었다. 거기서 그러는데 천당과 지옥이 있대.”
나는 미경에게 물었다.
“천당은 어디 있대?”
“어딘지는 몰라. 하여간 있대.”
“그럼 지옥은?”
“어딘지는 모르지만 있다니까 있겠지.”
옆에서 건평이 물었다.
“천당과 천국은 다른 거야?”
“같은 말일걸. 착하게 살면 천국 가는 거고 나쁜 짓 하면 지옥 가는 거야.”
“그럼 우리는?”
“글쎄. 너흰 지옥 갈지도 몰라.”
“왜?”
“너흰 참외 서리도 많이 하고 가끔 싸움질도 했잖아.”
“그럼 너는?”
“난 당연히 천국에 가겠지.”
그날 우리는 천국과 지옥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사람들을 한 명씩 들먹이며 마치 우리가 최후의 심판자가 되는 양 그들이 과연 죽어서 어디로 갈지에 대해 끝없이 토론을 벌이고 결론을 내렸다. 만약 그들이 우리의 얘기를 들었다면 기겁을 했을 것이다.

법성과 내가 가게 된 곳은 경상도의 양산에 있는 절이었다. 처음 그 절에 갔을 때 절의 규모에 놀랐다. 절을 둘러 본 법성이 나의 귀에 작은 소리로 말했다.
“무슨 놈의 절에 논밭이 있고 소방차까지 있냐. 징그럽게 크지 않아?”
나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도 크니까 좋다. 주차장에서는 축구시합을 해도 되겠는 걸. 그리고 절 입구에서 들어오는 길목에 늘어 선 소나무들이 멋지지 않아?”
“난 법당들을 지탱하고 있는 나무들을 보면 참 멋지다고 생각해. 바싹 말라 무늬가 생기고 결마다 움푹 패여 있는 것이 오랜 세월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 그 나무들엔 뭔가 진실이 담겨 있을 것 같다.”
여기서는 행자를 마치고 스님이 되기 위해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이들을 학인스님이라고 불렀다. 20명이 한 방에서 생활했다. 아침에 세 시에 기상하여 도량석을 돌고 예불을 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공양 후에는 조금 쉬었다가 공부를 했다. 하루 종일 바쁘게 지냈던 행자 때와는 달리 점심공양 후에는 두 시간 정도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그리고는 각자 맡은 소임을 하게 되는데 나는 주로 공양간에서 일을 했다. 그리고 저녁공양 후에 다시 공부를 하였다.
나는 큰 절에서 생활하며 여유가 생기자 마음이 차분히 안정되어 공부가 재미있어졌다. 지금까지 살면서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나였다. 절 공부는 학교 공부와는 아주 달랐지만 내 성격에 맞았다. 그리고 이왕 절에 들어왔으니 제대로 중이 되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가끔 방장스님이 내주는 화두도 열중하여 파고들었다. 기본적인 화두로 ‘무’와 ‘이 뭐꼬?’ 등이 있었다. 전에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인생과 우주의 진리에 대해 고민하고 깨닫고자 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이제는 건평과 동생 순이에게도 알려야겠다고 생각되어 거처를 알렸다. 건평과 이모부부가 왔다가고 얼마 후 순이가 외삼촌 부부와 함께 절을 찾아왔다. 그 먼 곳까지 찾아온 그들의 표정은 다 비슷했다. 나의 머리와 행색을 보고는 안쓰러워했다. 순이는 눈물을 흘렸다.
“오빠가 중이 될 줄은 몰랐어. 내가 오빠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미안해. 순이야. 오빠를 이해해줘. 사람마다 가는 길이 있는 거야.”
나는 가슴이 아팠지만 순이 곁을 떠난 것에 대해 후회는 없었다. 나는 순이와 마주 앉아 많은 얘기들을 했다.
“순이야, 나는 지금 절에서 공부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이렇게 즐겁게 공부를 해 본 적이 없어. 그리고 너를 위해서 항상 기도하며 살 거야.”
나를 가슴 아픈 시선으로 보던 순이도 점차 눈길이 달라졌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나를 쳐다보는 눈엔 기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순이는 아쉬워하면서도 나의 안녕을 빌며 완도로 돌아갔다.
순이를 보고나자 나의 마음은 더욱 안정이 되었다. 항상 나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죽음의 그림자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지고 있었다. 나의 마음은 평화를 찾았고 행복했다. 천국이 따로 없다고 생각되었다.
강의시간에 스님들의 강연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참선이란 집착을 놓아가는 수행이었다. 모든 집착을 버리고 나를 버리고 부처님의 마음과 나의 마음을 하나로 만든다. 모든 번뇌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림자도 다 내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의 그림자를 없애려면 나 자신을 먼저 버려야 하는 것이다. 어느 날 방장스님이 한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내가 중이 된 건 포기가 빨라서야.”

세월은 잘도 흘러갔다. 내가 시간의 흐름을 느낄 새도 없이 여름이 지나버렸다. 어느 새 가을이 다가와 있었다. 절이 있는 곳이 문산에 비하면 훨씬 남쪽이라 별로 춥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10월이 되자 기온이 내려가 쌀쌀해졌다.
어디나 예외 없이 절은 추운 법이었다. 선원방 옆의 감나무에는 감이 주렁주렁 열려 가을 분위기가 물씬 났다. 공양간 옆에는 담이 있고 그 너머로 개천이 흐르고 있었는데 빽빽이 우거진 나무들은 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아우성을 치듯이 수많은 잎을 쏟아냈다. 색색깔로 물든 단풍잎들은 개천에 떨어지고 담을 넘어 법당 앞의 마당까지 흩어져 날렸다. 바람에 날리는 낙엽을 보면 마음에도 바람이 부는 것일까. 마음이 평안하다가도 가을바람이 부는 풍경을 보면 외로워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아직도 나의 수행이 턱없이 모자란 탓이리라.
어느 날 나는 점심 공양 후 개천 물에 떠내려가는 나뭇잎들을 멍하니 보다가 일주문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마음이 쓸쓸해지면 절에 오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잔재미였다.
그런데 내가 범종각 옆을 지날 때였다. 일주문을 지나 들어오는 아가씨들의 무리가 있었다. 그들의 깔깔거리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무리 중에서 미경이를 발견했다. 거의 같은 순간에 미경이도 나를 보았다.
이미 커서 숙녀가 되어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지만 내가 어떻게 미경이를 몰라볼 수 있을까. 나는 한 눈에 미경을 알아보았다. 그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마치 돌부처가 된 듯이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놀라움으로 가득한 미경의 눈을 바라보면서 나는 한동안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미경은 일행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순태 맞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또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지난 일들을 어찌 다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과에서 단체여행 왔어. 경주 들렀다가 여기로 온 거야. 절 앞의 여관에서 자고 내일이면 서울로 가.”
우리는 범종각 옆에 있는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그동안 미경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문산과 동두천을 헤매고 다녔던 일들. 수많은 밤 꿈속에서 만나고 불렀던 이름. 묻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다. 나는 힘들게 입을 열었다.
“그 동안 어디에 있었어?”
“어디 있었냐고? 서울에 살았지. 난 지금 대학 다니고 있어.”
막상 얘기를 이어가려는데 미경의 일행에서 누군가 와서 미경을 재촉했다.
“나 지금 가야해. 절 앞에 있는 양산여관 알지? 두 번째 방이야.”
그녀는 떠나갔다. 아아 나는 멀어져가는 그녀를 속절없이 쳐다보아야 했다. 커다란 빙산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내 가슴 속에서 뭔가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 동안 공부했던 불경의 내용과 화두, 참선으로 다졌던 마음이 모두 무너져 내렸다. 이렇게 그녀를 다시 보내야 한단 말인가. 어느 새 법성이 다가와 물었다.
“법운, 무슨 일이야?”
“…….”
“법운.”
“그녀를 만났어.”
법성은 나의 말을 금세 알아차렸다.
“정말이야? 그렇게 찾아다녀도 못 찾았다는 사람을 여기서 만났다는 얘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새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법성이 물었다.
“법운, 어떻게 하려고?”
나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다시 그녀를 놓칠 수는 없어.”
“그래서?”
“이따가 절을 나갈 거야. 그녀를 만나야지.”
“이대로 공부를 포기한다고?”
“응. 법성, 나 좀 도와줘. 돈 가진 것 있어?”
“조금 있어.”
“그거 나한테 주고 누가 묻더라도 내가 어디로 갔는지 말하지 마, 알았지?”
“겁이 난다. 무슨 계획이 있어?”
“계획 없어. 그냥 그녀를 데리고 먼 곳으로 갈 거야.”
나는 날이 저물기를 기다렸다. 시간은 왜 그렇게 늦게 흘러가는지. 날이 완전히 저물기도 전에 공양간 옆 담을 빠져나와 개천을 건넜다. 일주문 쪽은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 다른 사람의 눈에 띌 염려가 있었다. 넓은 주차장 옆으로 달려 소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숨이 차고 등과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소나무 숲을 통과하여 조심스럽게 절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미경이 말한 여관을 찾아갔다. 여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여행 온 손님들로 방마다 시끄러웠다. 나는 두 번째 방에서 미경을 발견했다. 그녀를 보자마자 안에 들어가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가자.”
미경은 말없이 가방을 챙겨들고 나를 따라 여관을 나왔다. 워낙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라 누구도 우리를 제지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 몰랐다. 다만 미경이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의 손을 잡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도망가야 했다. 그리고 내가 갈수 있는 곳은 세상에 한 군데 밖에 없었다.
완도. 어머니와 순이와 내가 살았던 곳. 어머니의 고향이자 내 마음의 고향. 우리 세 가족의 때가 묻어 있는 곳. 엄마가 없어도 순이가 없어도 가고 싶은 곳. 내가 미경을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은 오로지 완도뿐이었다. 양산에서 완도로 가는 길은 녹록치 않았다.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없었기에 갈아타야 했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힘들게 완도로 갔다. 요행히 시간 맞춰 버스를 갈아타 겨우 늦은 밤에 완도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방에 들어가자 미경은 피곤했는지 곧바로 잠이 들었다. 나는 잠든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참으로 태평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내가 내민 손을 잡고 이곳까지 따라온 사람이 평온하게 잠들고 있다는 것.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또 보고 또 보았다.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왼쪽에서 보고 오른쪽에서 보고. 아무리 보아도 미경이! 내가 유일하게 사랑한 사람! 그 미경이 내 옆에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렇게도 찾아 헤맸던 그녀! 꿈속에서는 얼마나 많이 만났던가. 그런 그녀가 내 옆에서 쌔근쌔근 숨 쉬며 잠들어 있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절에서 공부했던 열반의 경지도 모든 번뇌의 사슬을 끊은 무아의 경지도 부럽지 않았다. 그저 내게는 미경이만 옆에 있어 준다면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었다. 나는 그녀의 옆에서 그녀를 보면서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일찍 혼자 외삼촌 집으로 향했다. 새벽안개 낀 동백나무 숲을 지나면서 내가 그곳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외삼촌의 식구들과 동생 순이에게 내가 절에서 나왔음을 고했다. 그들은 너무 놀랐는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는 그들에게 나중을 기약하고 양식을 얻어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잠들어 있는 미경을 위해 먹을 것을 마련했다. 밥을 하고 찌개를 끓였다. 이윽고 그녀가 깨어나 같이 아침을 먹었다. 그렇게 미경과 나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완도에 와서 차츰 마음이 진정이 되자 그 동안의 궁금했던 것들을 서로 물었다. 그때까지도 초등학교란 말은 아직 쓰지 않는 시기였다.
“너 국민학교 6학년 때 아프다고 안 나왔잖아. 어디가 아팠어?”
“폐렴이었어. 기침도 많이 하고 가슴이 아파서 혼났어.”
“그랬구나. 국민학교 졸업 하고는?”
“바로 서울로 이사 왔지.”
“대학교 다닌다며?”
“응.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어.”
“국문학? 뭘 공부하는 거야?”
“그야 우리나라의 문학이지. 나는 문학가가 될 거야. 시도 쓰고 소설도 쓰고.”
“그래? 대단하다.”
“넌 어떻게 절에 들어갔어?”
“사연이 길어.”
나는 그녀에게 그 동안의 일을 말했다. 완도에 오게 된 것과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 얘기도 했다. 미경은 나의 얘기가 끝나도록 조용히 듣고 있었다. 절에서 행자 생활을 하며 고생한 얘기를 들을 때는 눈이 동그래졌다.
“넌 정말 고생이 많았구나. 그나저나 니가 나를 찾아 추운 겨울 거리를 헤맸다는 것은 무척 감동적이야. 더구나 동상에 걸려 고생한 것도 그렇고. 그런데 절에서 동상이 다 나아버렸다니 참 신기해.”
“근데 너의 집에서 너를 찾을 텐데?”
“찾겠지.”
“어떡할 생각이야?”
미경이 웃으며 말했다.
“바보. 니가 날 납치해왔잖아. 니가 책임져야지.”
나에게 무슨 계획이나 대비책이 있을 리 없었다. 그녀를 막무가내로 데려온 나도 그렇지만 낯선 곳에 끌려온 미경이도 걱정 없이 태평스러웠다. 나의 사정이 궁금해서 찾아온 외삼촌 부부와 순이는 미경을 보고는 또 놀라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외삼촌 부부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번갈아 말했다.
“돈 번다고 서울 갔다가 갑자기 중이 되더니 또 갑자기 어디서 이런 이쁜 아가씨를 데려 왔다냐?”
“니가 뚱딴지 같은 놈이지. 아니 도둑놈이야. 이런 선녀를 어떻게 납치해 온 거여?”
나와 미경의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몰라 난감해 하고 있는데 미경을 알고 있는 순이가 그들에게 대충 설명해 주었다.
“뭐야. 그럼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야?”
“근디 아가씨 부모님은? 결혼식은?”
난 그들 앞에서 입을 다물어버렸다. 사실 나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외삼촌은 나와 미경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둘이 좋다고 해도 아가씨 부모를 생각해야지. 아가씨 부모는 딸이 여기에 있는 걸 모르잖아. 얼마나 걱정하겠는가. 생각 좀 해보자.”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좀 더 시간이 지난 다음에 미경의 부모님에게 알리겠어요. 지금은 둘이 같이 있게 해주세요.”
“순태야, 너가 이제 애가 아니란 말이다. 그렇다고 너가 다 큰 어른이라고 생각해서도 안돼. 벌써 일이 벌어졌슨게 앞으로가 문제이지. 너가 이 아가씨와 결혼해서 잘 살려면 그 부모와 화해를 잘 해야 하지 않겠냐?”
“알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제발 시간을 주세요. 나중에 일해서 갚을 테니 올 겨울만 좀 도와주세요.”
외삼촌 부부는 걱정스런 눈길을 주고는 되돌아갔다.
주변의 우려와는 상관없이 미경과 나는 행복했다. 하루하루 즐거운 순간순간이 연결되며 꿈같은 나날이 이어졌다. 미경과 나는 둘만의 공간에서 신혼부부가 되었다. 성숙한 미경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여자로서 활짝 피어난 꽃이었다.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그녀와 한 이불을 덮고 있으면 정신이 어지러웠다. 여자 경험이 없는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그럭저럭 어설픈 신랑이 되어갔다.
나는 그녀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기로 했다. 그녀를 공주처럼 모시고 싶었다. 미경이는 부엌에 가지도 못하게 했다. 나는 이미 절의 공양간에서 부엌살림은 지겹도록 하지를 않았던가. 그녀를 위해 밥하는 것이나 국이나 찌개를 만드는 것은 정말로 쉽고 즐거운 일이었다. 무나 파를 썰면서도 장단에 맞춰 노래를 부르곤 했다. 밥상을 차리고 그녀가 맛있게 밥을 먹으면 나는 안 먹어도 배부르고 행복했다. 그저 그녀가 옆에 있어준다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황홀했다.
그녀는 집의 주변을 구경하며 재미있어 했다. 어머니가 심었던 과일나무에서는 벌써 열매가 몇 개씩 나오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흉내를 내어 유자를 따다 물김치를 만들었다.
“봐. 여기선 물김치를 싱건지라 하는데 이렇게 유자를 넣으면 별미야. 어머니는 산에서 약초를 캐와서 넣기도 했어. 그러면 쌉사름 한 것이 얼마나 맛이 있었는데.”
“그래 정말 맛있다.”
“난 고들빼기를 좋아 해. 나물로 먹기도 하고 김치로 담가 먹기도 하지.”
“고들빼기? 그럼 그것도 해줘.”
“알았어. 그리고 돌미역을 푹 삶은 국물에 해산물을 넣은 것도 해줄게.”
“좋아. 순태야, 이곳은 천국이야. 그렇지 않아?”
“맞아. 엄마도 여기가 천국이라고 했어. 여기 사람들이 부자는 아니지만 인심이 좋아. 그리고 산과 바다에서 온갖 맛있는 것들이 나오니 굶어 죽진 않겠지.”
순이는 거의 매일 뭔가 반찬거리를 들고 왔다. 그러면 우리는 나란히 마루에 앉아 어린애들처럼 수다를 떨었다. 전에 문산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기도 하고 내가 절에서 겪었던 일을 얘기하기도 했다. 순이는 주로 동네 사람들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그러다가 같이 밥을 해먹고 날이 어두워지면 순이는 아쉬운 얼굴로 외삼촌의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미경이와 같이 지낸지 한 달쯤 되었을 때였다. 그날도 순이와 셋이서 점심을 먹고 마루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마당으로 세 명의 남자가 들이닥쳤다. 맨 앞의 남자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놈이다. 내 동생을 납치해 온 놈이야.”
세월이 지났어도 그가 미경의 오빠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의 말을 듣자마자 뒤따라오던 두 명의 남자가 느닷없이 마루에서 나를 끌어내더니 패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그들의 공격에 나는 속절없이 당해야 했다. 그들은 나의 얼굴과 가슴이며 배를 무차별적으로 구타했다.
나의 눈두덩과 입술이 터져 피가 흘렀다. 그리고 배를 연거푸 맞아 숨이 막혀 나는 몸을 구부리며 땅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래도 그들은 주먹과 발길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그들이 이곳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 궁금했다.
잠시 후 미경의 오빠까지 합세하여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다. 뒤늦게 순이가 마당으로 달려와 그들을 말렸다.
“왜 그래요? 착한 우리 오빠한테 왜 그래요? 하지 마. 때리지 말란 말이야.”
그러자 미경의 오빠가 말했다.
“이 새끼가 땡중이 되었으면 염불이나 외고 있을 일이지. 왜 남의 귀한 처자를 납치해? 이런 놈은 죽도록 패야 해.”
순이는 나의 몸을 가리고 결사적으로 그들을 막아내며 말했다.
“우리 오빤 잘못이 없어. 때리려면 나를 때려라.”
그러자 미경의 오빠는 몸을 돌려 미경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미경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말했다.
“이년이 미친년이지. 저런 땡중 새끼를 따라와? 집안을 말아먹을 거야?”
그는 미경의 뺨을 세게 갈겼다. 철썩 소리와 함께 미경이 땅바닥에 쓰러졌다. 미경의 오빠는 쓰러진 미경을 일으키더니 몇 차례 계속 뺨을 더 때렸다. 미경은 얼굴을 잘못 맞았는지 코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미경의 오빠가 말을 이었다.
“이년아. 비싼 학비 대서 대학교 보내주었더니 이게 보답이야? 넌 학교 다닐 자격도 없는 년이야. 당장 때려치워. 절대로 더는 학교를 못 다녀.”
나는 바닥에 쓰러져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미경이 당하는 것이 못 견디게 괴로웠다. 그녀의 오빠가 그녀를 때릴 때면 내가 맞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나만 때리면 됐지 왜 그녀를 괴롭히는 것일까. 나로 인해 그녀가 고초를 당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 그녀를 지키지 못하는 나 자신이 원망스럽고 서러웠다. 그녀를 보려고 눈에 너무 힘을 준 탓인지 나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나왔다.
순이의 저항이 워낙 거세기도 했지만 내가 이미 쓰러져 꼼짝을 못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더 이상 달려들지 않았다. 그러나 미경의 오빠는 가면서도 한마디 말을 잊지 않았다.
“이 놈. 다시 너를 또 보면 죽여 버릴 거야. 니 놈 보기 싫어서 우리는 멀리 간다.”
그리고 그들은 울며 저항하는 미경을 질질 끌고 갔다. 나는 기를 쓰고 정신을 차려 일어나려고 힘을 주었으나 팔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미경의 모습을 보려 했으나 눈은 피범벅이 되어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이제 미경이 가버린다면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로부터 미경을 빼앗아 와야 했다. 그렇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미경이 없는 세상은 그대로 지옥이었다. 용을 써서 일어나려고 하다가 나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렸다. 지옥의 끝 모를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 본문1: 12 장 천국과 지옥


- 빨강 풍선 -

어릴 적 꿈이 하나 있었지
그것은
빨강 풍선을 타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것

어른이 된 지금도
그 꿈을 꾼다네
커다란 풍선을 타고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다니는

하늘에서 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내가 보지 못한
어떤 세상이 있을까

휘영청 달 밝은
넓은 바다 위를
수많은 곡선이 겹치는
뜨거운 사막 위를

빨강 풍선을 타고
한없이 흘러가고파

내 마음 언제나
꿈을 꾸고 있다네




- 그대가 마지막 숨을 쉴 때 -

그대가 마지막 숨을 쉬고
눈을 감을 때
그대가 외롭지 않게
곁을 지켜주고 싶다

한번 가면
다시 못 오는 길

그대의 맑은 눈을 다시 볼 수 있다면
그대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다면

바람이
지나간 길

뜨거운 눈물로 흘러
그대 가슴 속
따뜻한 별이 되고 싶다.

- 본문 중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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