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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7001994
· 쪽수 : 272쪽
· 출판일 : 2023-02-20
책 소개
목차
여는 글(세상의 무명이들을 위한 이야기)
1장 열여섯, 배우가 되기로 결심하다
#1 열여섯, 셰익스피어와 만나다 17 / #2 놀이터 좀 빌려 쓸게요 23 / #3 뼈 때리는 한 마디 ‘너는 소리에 울림이 없어!’ 29 / #4 숨구멍, 아가미 없는 인간의 호흡법 35 / #5 감히 신성한 무대에서! 41 / #6 뜨거운 아비뇽, 한여름 밤의 꿈 47
2장 오~샹젤리제! 무작정 꿈을 키운 파리에서의 6년
#1 장학금을 포기하고 꿈을 변호하다 57 / #2 눈물로 헤맨 샹젤리제 거리 63 / #3 프랑스 할머니들에게 윙크 날리는 한국 여자 69 / #4 홀로 복귀한 수업, 눈물의 광대 76 / #5 무대 오르기 10분 전, ‘주는 빼고 가!’ 83 / #6 노숙자들의 태양, 주 90 / #7 강을 거슬러 헤엄치는 연어처럼 96
3장 서른하나, 연극 무대에 데뷔하다
#1 외국물 먹은 백수 105 / #2 헌주는 프랑스까지 다녀와서 뭐 해? 108 / #3 금수저였어? 재수 없네 112 / #4 나는 1,000원짜리 배우예요 118 / #5 하루 4회 공연이 열정이라고? 124 / #6 무대 위, 숨 막히는 공포증 130 / #7 이 자리에 고작 프로필 한 장 들고 온 겁니까? 137 / #8 뚜벅이 프로필 투어 144
4장 꿈꾸는 엄마의 리얼 생존 라이프
#1 피터팬과 후크선장이 한집에 산다 153 / #2 내 인생의 사랑스러운 침범자 160 / #3 낯선 내면 아이와의 만남 166 / #4 ‘배우엄마’ 이헌주가 후배들에게 172 / #5 살은 빼고 싶지만, 달달구리는 먹고 싶어 179 / #6 아이가 잠들면 시작되는 엄마의 공부 186 / #7 여덟 번째 버킷리스트 191
5장 무명이지만 아마추어는 아닙니다
#1 프로와 아마추어의 태도 197 / #2 좋은 사람, 좋은 배우 204 / #3 무명이들의 우아하게 버티는 법(Feat. 기왓장 살롱) 210 / #4 무명이들의 우아하게 버티는 법 2 그들의 이야기 216 / #5 정보수집은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라 222 / #6 언제까지 남의 인스타에 좋아요만 누를래? 228 / #7 내 인생의 화양연화 234
6장 나는 배우다
#1 내 열정의 근원은 결핍 243 / #2 도전, 두려움과 희열 사이 250 / #3 울음으로 울림을 주는 배우 256 / #4 잘 자렴, 아가야! 배역과의 이별 262
닫는 글(나의 편, 무명이를 응원해)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훗날, 프랑스에서 공부하던 시절에는 카페와 튈리히 공원, 학교 앞 뷔트 쇼몽 공원에서 공연을 준비했다. 연습이 끝나면 친구들과 나른하게 늘어져 책을 펴고 누워 일광욕을 즐겼다. 길거리 연습은 완벽하게 준비된 채 관객과 만나는 시간이 아니다. 미완성 단계에서 연습 과정 자체가 까발려지는 순간이다. 조명이나 무대장치, 의상도 없이 나의 어설픈 실력이 모두 드러난다. 가던 길을 멈추고 구경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연습하는 순간에는 구경꾼을 의식하지 않았다. 오로지 내 앞에 있는 불, 공연 준비를 위한 연습일 뿐이었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와 동료들에게 미친 짓을 한다는 손가락질보다 미완으로 무대에 올라 관객의 질타를 받는 일이 더 두려웠다. ** <놀이터 좀 빌려 쓸게요> 중에서 **
‘Au secour(도와주세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온몸에 피투성이가 된 여인이 거리로 뛰어나왔다. 무언가에 쫓기듯 두리번거리는 시선과 함께… ‘뭐지? 누가 나서야 하는 거 아닐까? 축제 기간의 폭력 사건일까?’라고 생각하기엔 이미 익숙해진 극적 장면은 연극 홍보를 위한 거리 공연이었다. 가장 극적인 장면들 또는 흥미로운 부분을 배우들이 반복해서 시현했다. 분장을 한 두세 명의 배우가 공연 팸플릿을 돌리며 극장으로 초청했다. 중심 거리 길바닥에 앉아 홍보 공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쏠쏠했다. ‘아, 내가 본 사진이 이거였구나.’ 축제의 중심에 내가 서 있음을 실감했다. 온몸으로 축제를 느끼고 즐겼다. 우연히 접한 사진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어 불씨를 피운 것이다. ** <뜨거운 아비뇽, 한여름 밤의 꿈> 중에서 **
“non, non, non, pas encore, je ne suis pas prete.(아니요. 난 아직 준비가 안 되었어요).” 콰당~
무대 위에 그대로 엎어져 고개를 들고 눈알을 굴렸다. 능청스럽게 일어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내 소개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 나의 코미디에 관객들은 박장대소했다. 한국어 인사말을 발음이 비슷한 불어 단어로 바꾸어 어떻게 발음하는지 가르쳐 주고, 따라하게 하자 관객석에서 단체로 ‘안녕하세요!’를 외쳤다. 갑자기 애국심이 고취되는 듯했다. 모국어인 한국어에 관한 이야기와 무대에서 배우로서의 이야기를 풀어내려 했다. 도입부 말고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원색적이고, 유치한 개그도 섞였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똥 얘기’였던가.
똥 얘기는 어디서나 통하는 이야기임을 알았다. 가족에게만 은밀히 오픈되는 화장실 사정이 무대에서 벌어지면, 사람들은 그 이야기로 어린아이처럼 깔깔 웃는다. 동양에서 온, 그것도 한국에서 온 소녀가 휴지를 엉덩이에 끼고 무대를 뛰어다녔다. 관객 입장에서는 말로만 하는 스탠드업보다 볼거리가 많았을 것 같다. 주어진 12분의 무대가 끝나고 퇴장하는데, 휘파람과 갈채 소리, 앙코르를 외치는 소리에 어리둥절했다. ‘어? 이 정도는 아닌데?’ 사실 말도 안 되는 반응과 과분한 찬사를 받았다. 그것은 아마도 그 무대에 선 이방인 자신들의 언어에 대해 나눈 교감 덕분일 것이다. 고작 1~ 2분 남짓 주고받는 대화 속에 서 짜릿함을 느꼈다. ‘이 사람들이 정말 나에게 집중했구나’라는 희열이 몰려와 꿈을 꾸는 듯했다. ** <무대 오르기 10분 전, ‘주는 빼고 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