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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91164053384
· 쪽수 : 400쪽
· 출판일 : 2025-09-26
책 소개
★ 독보적인 추상화가 하태임의 그림과 『욕구들』의 강렬한 만남
★ 하태임 시그니처 ‘컬러밴드(색띠)’로 구현된 인간의 욕구들, 감정들
★ 여성의 내면을 다정하게 비추었던 작가 캐럴라인 냅의 유고 에세이
★ 거울과 저울이 없는 ‘자기만의 방’에서 몸으로 써나간 가장 치열한 글
★ 알라딘에서만 만날 수 있는 리커버 한정 특별판
캐럴라인 냅의 『욕구들』이 독보적인 현대 추상화가 하태임의 그림과 만났다. 이번 『욕구들』 리커버 특별판은 ‘컬러밴드(색띠)’로 유명한 추상화가 하태임의 작품 ‘Un Passage No.231005’(2023)으로 표지를 디자인한 특별 한정판이다. 겹치고 부딪치고 이어지는 강력한 색상의 색띠들은 『욕구들』에서 언급되는 여성의 다층적인 욕망과 기억을 연상시킨다.
하태임 작가는 20년 넘게 ‘Un Passage(통로)’ 연작을 통해,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다양한 생각, 느낌, 욕구, 감정을 시그니처인 컬러밴드(색띠)의 흐름과 중첩으로 표현함으로써,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선보이고 있는 대표적인 현대 추상미술 작가이다. 10대 한정 ‘벤틀리’ 자동차의 뮤즈로 선정돼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보여준 스타 작가이자, 신현준 배우와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이 자택에 하 작가의 작품을 걸어두어 세간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방탄 RM이 달려가서 감상한 ‘잊다, 잇다, 있다’ 전시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번 특별판에 표지 그림으로 사용된 ‘Un Passage No.231005’는 매끈한 바탕에 강렬한 색상의 색띠들과 얼룩의 흔적처럼 보이는 색띠가 어우러진 작품으로, 식욕, 애착, 성욕, 인정욕, 만족감 등 여성의 다양한 욕구와 사회 문화적 압박을 정교하게 다룬 『욕구들』의 이미지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특히 이번 특별판 표지는 작품 자체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게, 극미니멀 표지 디자인으로 소장 가치를 더욱 높였다. 하태임 작가에게 ‘색’이 기억의 색이자 치유의 색인 만큼, 책을 펼치기 전부터 ‘색’의 언어로 위로와 치유를 느꼈으면 하는 의도를 표지 디자인에 담아놓았다.
굶고 사들이고 훔치는 여자들, 자신을 해치는 사랑에 빠진 여자들
거식증의 한때를 회상하며 깨달은 것. 그 모든 욕구는 연결되어 있다
우리 시대 여성들의 세계를 경유해 ‘나’와 ‘우리’를 해명한 책
지적이고 우아하면서도 유머러스하고 흡입력 강한 글, 중독과 회복에 대한 솔직하고 담담한 고백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캐럴라인 냅. 그는 1994년 『앨리스 K의 인생 안내서』를 발표한 이후 2002년 마흔두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8년 남짓한 시간 동안 세 권의 책을 발표했다. 『욕구들: 여성은 왜 원하는가』는 암 선고를 받기 2개월 전에 탈고한 유고작이자, 에세이라는 장르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보여준 역작이다.
캐럴라인 냅이 평생에 걸쳐 몰두했던 주제는 고립, 애착, 그리고 무엇보다 중독 문제였다. 불안과 소란한 마음과 슬픔을 씻어내기 위해, 자기 질책과 자기 파괴를 멈추기 위해, 그는 10대 시절부터 술을 마셨다. 그러나 술로도 없앨 수 없었던 두려움과 그 두려움에 대한 수치심, 자신의 몸, 허기 자체를 해결하고 싶은 갈망으로 또 다른 길을 찾아낸다. 그것은 하루에 사과 한 알과 조그만 치즈 한 조각만 먹으면서 버티는 일, 굶기였다. 자기 앞에 가능성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처럼 보였던 20대 초반, 그러나 포만과 충족과 쾌락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젊은 여자. 그는 일이나 진로나 사랑 같은 거대하고 모호하고 압도적인 대상 대신 작고 구체적이며 홀로 처리할 수 있는 대상, 즉 음식으로 모든 주의를 돌려 자신을 통제하고자 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식욕/욕구(appetite)’는 흔히 먹는 일이나 음식과 관련해서 사용된다. 캐럴라인 냅도 다른 어떤 욕구보다 허기에 자신의 영혼을 걸었다. 하지만 이 단어는 갈망과 동경과 필요로 이루어진 훨씬 폭넓은 범위까지 아우른다. 사전적 의미에서도 ‘자연스러운 욕망’ ‘만족 또는 충족하고자 하는 선천적이거나 습관적인 욕망 내지 성향’ ‘욕망의 대상’을 모두 가리킨다. 말하자면 욕구란 세계에 참여하고자 하는, 삶에서 풍요의 감각과 가능성을 느끼고자 하는, 쾌락을 경험하고자 하는 더욱 깊은 수위의 소망에 관한 것이다.
욕구는 하나의 순환 속에 존재하는바, 저자의 말마따나 “음식은 사랑이고, 사랑은 섹스이며, 섹스는 연결이고, 연결은 음식이다.” 그러나 많은 여성에게는 이 욕구를 상상하고 충족하는 일이 유난히 뜨겁고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펼쳐진다. 많은 이들이 갈망은 그 자체로 어쩐지 부당하거나 잘못된 것 같다고, 원하는 대로 마음껏 누릴 권리는 대가를 지불해야 얻는 것이라고, 욕구를 채우려면 희생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식욕과 음식뿐 아니라 사랑과 섹스에 대해서도, 물건과 소유에 대해서도, 사회적 성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자면, 이러한 죄책감과 두려움은 여성들이 자라는 내내 주입받은 고정관념, 즉 여성의 갈망은 억제해야 하고 사회적으로 용인된 방식으로만 갈망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명령 때문이다. 이 주제에서 중요한 또 다른 문제는 이러한 개인과 사회의 역학 관계에서 비롯된 문제가 파편적으로 해체되어 분석되고 있다는 것이다. 거식증으로 고통받는 여자들, 물건을 훔치는 여자들, 자신을 해치는 여자들, 자신의 영혼을 파괴하는 사랑에 빠지는 여자들… 이 모두가 전혀 다른 현상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방식으로 분석되고 있는 갈망의 뿌리는 동일하며, 이들의 불안, 죄책감, 수치심, 슬픔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냅의 분석이 빛을 발하는 지점은 바로 이 연결되어 있는 현상의 배경, 그 저변을 바라보는 넓은 시선이다.
애도를 품은 성찰, 주체적 행위를 이끄는 더없이 지적인 사유
흡족함의 순간들, 몸과 마음과 정신이 나란히 연결되는 순간들은 마침내 온다
이론상으로나마 오늘날 여성은 자신의 욕구를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만족시킬 수 있는 자유와 자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어떤 욕구들을 품어야 하는지, 진정한 만족이란 무엇인 것인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자유는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이러한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무엇보다 자신의 회복을 되돌아보기 위해 저자는 자신과 비슷한 많은 여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사례를 모으는 한편, 킴 처닌, 엘리자베스 그로스, 캐럴 길리건, 페기 오렌스타인, 그리고 프로이트, 라캉, 푸코 등 여성과 몸, 욕구와 욕망을 다룬 다양한 지적 텍스트를 깊이 읽어내며 자신의 경험과 성찰을 정교하게 뒷받침한다.
냅이 거식증의 고통을 고백하고 그 원인을 개인만의 과거를 통해 분석하는 데서 멈췄다 해도 이 책은 한 권의 훌륭한 에세이가 되었을 것이다. 한때 37킬로그램까지 살을 깎아냈던 상처 입은 소녀, 그 소녀가 용기 있고 침착한 자기 통제력을 지닌 여성이자 작가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친근하고 경이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명쾌하고 예리하고 분석적인 목소리를 넘어, 냅은 더없이 관대하고 아름답고 희망적인 눈빛으로 욕구를 다루는 법이 담긴 청사진을 건네주었다. 자신이 경험한 고통만이 아니라 우리의 고통에 기꺼이 잠겼고, 거기서 빠져나왔던 이들의 출구와 통로를 겹겹이 열어젖혔다. 이런 중층적 과정을 통해 냅은 에세이스트이자 저널리스트인 자신이 글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끝내 보여주었다.
소녀들이 자기 자신에게 보이는 잔인함, 딸과 어머니의 슬픔, 우리를 지금의 우리로 빚어낸 충족되거나 충족되지 않은 허기들까지, 이 책의 갖가지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냅이 남겨놓은 경험과 성찰과 언어로 새로운 실마리를 손에 쥐었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얼마만큼 원해도 되는지 가늠하기 시작할 수 있다. 이제는 충분히 분노할 수도 있다. 방향을 바꾸기 전에 충분히 울어도 좋다. 자신과 초기 가족을 탓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정동적인 전환을 해나갈 수도 있다. 그것은 냅이 전한 깊은 희망 덕분이며,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가 담긴 작은 책들을 찾아 떠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의 독자들은 캐럴라인 냅이 해낸 이 모든 작업을 독자이자 무엇보다 욕구의 ‘주체’로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슬픔, 마비, 두려움에 휩싸인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쉽게 털어놓지 않는 자발적인 고립을, 차분하고 총명한 사유를 더욱 예리하게 하는 맑은 정신의 경이로움을. 그렇게 냅을 따라간 독자들이 마지막 장을 덮으며 원한다는 일에 대해, 여성의 욕구에 대해, 지금 나 자신의 자리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목차
서문
프롤로그 르누아르가 그린 욕구
서론 ‘하지 마’ 세계에서의 욕구
1장 케이크 더하기, 자존감 빼기―불안, 그리고 욕망의 수학
2장 어머니와의 관계―허기, 그리고 자유의 대가
3장 내 배가 싫어, 내 허벅지가 싫어―육체 혐오, 그리고 억제에 대한 학습된 포용
4장 브라 태우기에서 폭풍 쇼핑으로―욕구와 시대정신
5장 목소리가 된 몸―슬픔의 감춰진 무언극
6장 희망을 향해 헤엄치기―신념, 행위 주체성, 그리고 만족을 향한 손 내밈
에필로그
미주
참고 문헌
옮긴이의 말
책속에서
옛날 옛적, 지구와 목성이 다른 만큼이나 르누아르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에 살던 시절 내 몸무게는 37킬로그램이었다. 스물한 살이었고 키는 162센티미터였으며 허벅지가 무릎보다 가늘었다. 표준 체중이 54킬로그램 정도이니 17킬로그램을, 그러니까 몸의 3분의 1가량을 깎아낸 그 일은 헤라클레스의 과업에 비견할 어마어마한 노력이자 삶을 뒤바꿀 정도의 노력이었고, 엄밀히 생각해보면 여자들만 하는 노력이었다.
3년 동안 나는 매일 같은 것을 먹었다. 아침은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참깨 베이글 하나, 점심은 다농에서 나온 커피향 요거트 한 개, 저녁은 사과 한 알과 작은 치즈 큐브 하나였다. 그리고 나는 달렸다. 작대기 같은 몸으로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몇 킬로미터씩. 늘, 심지어 여름에도 추위를 탔고 지독히 암울했으며 이 모든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굶기 강박은 어디서 생겨나 이리도 나를 몰아대는지, 그 강박이 나에 관해 혹은 여자들 전반에 관해, 혹은 인간의 갈망이라는 더 큰 문제에 관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나는 그저 그렇게 행동하고 반응했다.
식욕은 내 모든 부수적 괴로움을 끌어다 걸어두는 걸이이며 (나 자신과 수많은 여자들의) 내면에 흐르는 모든 강이 생겨난 바다다. 물론 식욕/욕구appetite란 단어는 우선 먹는 일에 관한 것이다. 다만 먹는 일과 관련된 이 부분은 수많은 여자들의 삶을 결정하고, 나 역시 너무나 잘 아는 부분이지만, 이 단어는 갈망과 동경과 필요로 이루어진 훨씬 폭넓은 범위도 아우른다. 욕구는 세계에 참여하고자 하는, 삶에서 풍요의 감각과 가능성을 느끼고자 하는, 쾌락을 경험하고자 하는 더욱 깊은 수위의 소망에 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