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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7256592
· 쪽수 : 412쪽
· 출판일 : 2023-11-10
책 소개
목차
2022~2023' 신인소설상 당선 소설집에 부처•5
2022~2023 신인소설상 심사총평 ⚫8
박 상 호/ 제19회 중편소설 - 재건 ⚫19
박 상 준 / 제20회 단편소설 - 사랑 기억 ⚫ 87
류 귀 숙 / 제21회 중편소설 - 잃어버린 시간 ⚫ 105
김 둘 / 제21회 단편소설 - 용장사(茸長寺) ⚫155
연 소 민/ 21회 단편소설 -유자 ⚫173
장 정 희/ 제22회 중편소설 - 여행 ⚫ 189
정 호 재/ 제22회 단편소설 - 문 ⚫ 253
배 종 진 / 제23회 중편소설 - 바다는 앞으로 오고 강은 옆으로 흐른다 ⚫ 269
유 수 익/ 제23회장편소설-아파트 공화국 ⚫331
장 다 빈/ 제24회 단편소설 _ 첫눈 ⚫ 351
오 정 화/ 제25회 단편소설 - 더 티파니 ⚫ 367
김 선 경/ 제26회 단편소설 _ 되찾은 것들 ⚫ 383
이 안 우 / 제26회 동화 - 고등어 가시 ⚫ 405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가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새벽 4시이다. 옷을 갈아입고 우선 병원을 찾아가서 유족들부터 만나야 한다. 그리고 일을 진행하기 전에 유족들을 달래서 어떻게 해서든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우송은 상복 차림을 하고 문을 나선다. B산업의 대표 백천상은 이번 사업을 예의주시하면서 큰돈을 투자해왔다. 이번 건축 사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런 돈을 유치할 수도 없을 것이고 이런 거대한 건축물을 건설할 기회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약혼녀와 결혼이 코앞이다. 이번 일로 내가 잘못을 뒤집어쓰면 모든 게 다 허사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 생각에 이르자 우송은 갑자기 머리가 띵 해지면서 눈앞이 노래지는 것이었다. 약혼녀는 백천상의 딸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백현서였다. 이번 사업에서 B 산업의 도움을 얻을 수 있었던 것에는 무엇보다도 그녀와의 약혼 관계가 큰 역할을 했고 그런 점에서 그에게는 이번 일에 차질이 생기면 돌이킬 수 없는 문제를 겪게 될 수도 있는 터였다.
그는 지하 주차장을 걸어가 차에 올라타고 천천히 시동을 건다. 손이 말을 잘 듣지 않고 자꾸만 미끄러진다.
우송은 쓰레기봉투를 쓰레기 더미 위로 모두 치우고 나서는 겨우겨우 손을 털고 나와 그녀를 제대로 쳐다보면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사실 그로서는 더 할 이야기가 없다. 단지 다시 한번 만나서 이야기하고 사는 데에 어려움은 없는지, 도움이 더 필요하면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는지 등에 대해 묻고자 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가 어설프게 마무리했던 손해배상도 좀 더 적절하게 인간적인 방법으로 대신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에서 만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런데 애초에 그랬던 그의 생각이 지금 완전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생각이라는 것이 잘 안 될 뿐만 아니라 당혹스러운 감정이 솟구쳐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더 깊은 죄의식이었다. 이렇게 순수하도록 아름다운 어린 여자에게 그런 가혹한 비극을 가져오게 했다는 사실이 머리 속에 미치자 더욱 커다란 죄책감이 들어서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 상황에서 저주받을 눈은 끊임없이 그녀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그는 그 죄의식이 배가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되어버린 것이다.
춘삼월 봄바람이 오만가지 상념에 젖은 민희를 이끌고 나간다. 오랫동안 타보지 않았던 진주행 버스에 몸을 싣고 보니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가슴속에 숯덩이로 남아 있던 그 아들을 오늘 만난다니 만감이 교차한다.
얄궂은 운명에 잠 못 이루며 몸부림쳤던 밤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만나면 무슨 말을 먼저 할까? 어미에 대한 감정이 적지 않을 텐데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하나? 생각하니 머릿속이 하얗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모든 일을 운명에 맡겨둬야겠다는 생각만이 민희를 위로하고 있다.
약속 장소는 남강이 내려다보이는 ‘촉석루’ 식당이다. 고상하면서도 아늑하게 꾸며 놓은 식당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종업원이 안내한 방은 뒤편에 자리 잡은 작은 방이다. 식당을 고른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아마 나를 배려해 고민 끝에 고른 장소라고 생각하니 자상한 마음이 제 아빠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말쑥하게 차려입은 청년이 벌떡 일어서더니 고개를 숙여 묵례하고는 머쓱하게 손을 모으고 선다.
25년이란 시간은 모자를 이런 부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