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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88901296906
· 쪽수 : 356쪽
· 출판일 : 2025-08-18
책 소개
목차
다시 책머리에
작가의 말
야성의 시기
아득한 서울
문밖에서
동무 없는 아이
괴불 마당 집
할아버지와 할머니
오빠와 엄마
고향의 봄
패대기쳐진 문패
암중모색
그 전날 밤의 평화
찬란한 예감
작품 해설—김윤식(서울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지금 다시 박완서를 읽으며—정이현(소설가)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그러나 무엇보다도 뒷간에서는 잘생긴 똥을 많이 누는 게 수였다. 똥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 땅으로 돌아가 오이 호박이 주렁주렁 열게 하고, 수박과 참외의 단물을 오르게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본능적인 배설의 기쁨뿐 아니라 유익한 것을 생산하고 있다는 긍지까지 맛볼 수가 있었다.
뒷간도 재미있지만 뒷간에서 너무 오래 있다 나왔을 때의 세상의 아름다움은 유별났다. 텃밭 푸성귀와 풀숲과 나무와 실개천에서 반짝이는 햇빛이 너무도 눈부시고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어 우리는 눈을 가느스름히 뜨고 한숨을 쉬었다. 뭔가 금지된 쾌락에서 놓여난 기분마저 들었다. 훗날 학생 입장 불가의 영화를 교복의 흰 깃을 안으로 구겨 넣고 보고 나와 세상의 밝음과 낯섦에 접할 때마다 나는 유년기의 뒷간 체험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처럼 느끼곤 했다.
「야성의 시기」 중에서
유리창 밖에는 전송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그중에서도 할머니는 제일 작고 초라해 보였다. 그 초라함이 나를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유리창이란 얼마나 신기한가. 할머니 눈에 눈물이 고이는 걸 말갛게 바라볼 수가 있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안겨 ‘아이고 내 새끼.’ 하고 쓰다듬는 손길을 느끼며 따라 울고 싶었다.
나는 온몸으로 유리창에 달라붙었다. 얼굴만 얼음장에 눌리듯 사정없이 퍼졌을 뿐 한 치도 할머니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기차는 크고 구슬픈 소리를 내지르고 나서 움직였다. 전송객도 따라 움직이다가 점점 안 보였다. 나는 할머니도 따라 움직였는지 그냥 서 있었는지 보지 못했다. 펑펑펑 눈물이 마구 나왔다. 눈물이 안 나오는데도 소리 내어 운 적은 많아도 그렇게 눈물이 많이 나오는데 엉엉 소리를 내지 않기는 생전 처음이었다.
「아득한 서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