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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7352782
· 쪽수 : 297쪽
· 출판일 : 2025-07-28
책 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
Ⅰ. 육체의 시기 | 고통은 준비 없이 찾아왔다
Ⅱ. 정신의 시기 | 웃다가 걷다가, 울다가
Ⅲ. 영혼의 시기 | 나를 만나러 가는 길
에필로그
저자소개
책속에서
처음엔 꽤 그럴듯했다. ‘내가 이 길을 걷는다니.’설렘과 뿌듯함, 약간의 허세까지. 사진을 찍고, 인증샷을 남기며 진짜 순례자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기분은 며칠 안 가서 무너졌다. 신발은 발보다 딱딱했고, 내 다리는 생각보다 약했다. 초반은 육체와 싸우는 시간이었다. 상처와 멍, 근육통과 고집이 부딪히는 매일.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나를 향한 애정이 조금씩 생겼다.
마치 어색한 동거를 시작한 두 사람처럼. “아직 멀었니?” 하는 다리에게 “응, 많이 남았어.” 라고 답하는 나. 고통은 준비 없이 왔지만, 나는 아주 천천히, 한 걸음씩 걸었다. 그게 까미노의 첫 번째 수업이었다.
-「Ⅰ. 육체의 시기 | 고통은 준비 없이 찾아왔다」 중에서-
몸도 마음도 흔들렸다. 길은 너무 길었고, 평원은 너무 조용했다. 생각이 생각을 물었다. 왜 걷고 있지? 이 길이 내게 뭘 주는 거지? 답을 찾기 위해 걸었는데, 질문만 늘었다. 웃으며 걷다가도, 고요해지면 생각이 몰려왔다. 그리운 얼굴들, 지나간 말들, 아직 끝나지 않은 생각들. ‘왜 이렇게까지 하나?’싶다가도, 계속 걷고 있는 나를 보면 또 대견하다. 정답은 없고, 감정은 매일 다르고, 어쨌든 걸어야 한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들, 알베르게에서 웃으며 건넨 한마디. 작고 사소한 것들이 나를 붙잡아 준다. 그런 게 없었다면, 나는 중간에 멈췄을지도 모른다.
-「Ⅱ. 정신의 시기 | 웃다가 걷다가, 울다가」-
이제는‘왜 걷는가’를 묻지 않는다. 그저 걷는다. 걷고 있으니 괜찮다. 아침의 바람, 흙냄새, 들판의 끝없는 선. 모든 것이 말을 하지 않아도 내게 말을 걸었다. 사람들의 손짓, 미사의 성가, 말 없는 위로가 나를 채웠다. 길이 나를 바꾼 것이 아니라, 길 위에서 나를 조금씩 다시 보게 된 것이다. 고통도, 피로도 있었지만, 지금은 감사와 아쉬움이 더 크다. 순례가 끝나도 끝나지 않을 여정이 있다는 걸, 마침내 알게 되었다. 길이 끝나는 그곳에서, 나는 다시 시작한다.
-「Ⅲ. 영혼의 시기 | 나를 만나러 가는 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