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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7646416
· 쪽수 : 257쪽
· 출판일 : 2021-12-20
책 소개
저자소개
책속에서
늦은 봄날 감나무 꽃을 과자처럼 주워 먹고/ 실지렁이 우글대는 도랑물에 우려진 어린 풋감을 건져먹고/ 여름장마 견뎌낸 생감은 더 이상 떨어지지 않으니/ 먹을 것 없는 아이는 감나무만 쳐다본다/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감나무에 올라가 멀쩡한 감에 상처를 입히고 그 가지를 꺾어 큰 가지에 걸어 놓았다. 몇 날이 지나 상처 입은 곳부터 떫은맛이 사라진 감을 나는 사탕처럼 빵처럼 먹었다. 어쩌다 떫은 감을 겁 없이 먹는 날은 내장이 뒤틀려 게워내기도 했다. 그 아픔이 너무도 커 다시는 안 먹을 것 같아도, 또 다시 먹는 것은 배 아픈 몸서리보다 배고픈 설움이 더 커서였는지도 모른다. 가난은 그렇게 나를 가르쳐주고 키워내고 있었다.
하루 장사를 결산한 후 담양에서 집으로 돌아갈 무렵이면 날은 어두워지고 6키미터 거리에 있는 집까지 공동묘지가 두 곳이 있는데 늦은 밤 이곳을 지날 땐 여지없이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자전거 타고 가다 귀신에 홀려 자전거를 버려두고 갔다는 이야기와 공동묘지 앞까지 있었던 생선이 공동묘지를 지나와 보니 새끼줄만 남았다는 전설 등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미신이 공동묘지 앞에서 진짜처럼 느껴지는 것은 실재로 맞닥뜨린 자의 두려움이 그것을 믿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깊은 밤 공동묘지를 홀로 지나갈 때 머리카락이 공중에서 잡아채듯 세워지고 검은 그림자가 묘지에서 솟아오른 것같이 보이면 그 공포감은 미신으로 들었던 얘기를 믿게 만들 것이다. 나도 순간 귀신 이야기에 빠져 공동묘지를 벗어나려 자전거 바퀴를 세게 밟으려는데 귀신들이 짐칸에 올라탄 것처럼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이때의 공포는 참과 거짓을 떠나 귀신에게 온몸의 힘을 빼앗긴 듯 오금이 저린다. 페달을 밟는 헉헉대는 숨조차 모가지를 핥는 귀신 혓바닥소리로 들릴 만큼 착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