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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 역사
· ISBN : 9791199037304
· 쪽수 : 348쪽
· 출판일 : 2024-12-24
목차
● 머리말
● 시작하면서
1. 강화군
프롤로그 / 갑곶나루 / 더리미(加里尾) / 성공회 강화읍성당 / 성 미가엘 수도원지(址) / 잠두교회(현 강화중앙교회) / 합일학교(현 합일초등학교) / 강화도의 바울 이동휘 / 십자산 묘지 / 상도리교회(현 홍의교회) / 시루미(甑山)공동체(현 교산교회) / 길직3·1만세운동 / 성공회 온수리성당 / 흥천교회 / 교동읍교회 址 / 인사리교회 / 상룡리 예배당 / 송암 박두성 생가 / 서도중앙교회 / 강화기독교역사기념관 / 에필로그
2. 계양구
프롤로그 / 부평읍교회(계산중앙교회) / 선주지교회 / 황어장터3.1만세운동과 선주지교회 / 계암교회(박촌교회) / 에필로그
3. 남동구
프롤로그 / 담방리교회(현 만수교회) / 송암 박두성의 묘 / 순교자 김규흥 장로 / 에필로그
4. 동구
프롤로그 / 영화학교 / 존스와 인천선교 / 감리교회 여선교사 숙소 / 인천기독교사회복지관 / 에필로그
5. 미추홀구
프롤로그 / 송암 박두성 기념관 / 극동방송 址 / TEAM 선교회 / 알렌의 별장址 / 국제성서박물관 / 에필로그
6. 부평구
프롤로그 / 외국인 묘지 / 엘리 랜디스의 묘 / 말콤의 묘 / 말렛의 묘 / 타운젠. 탕. 하나의 묘 / 에필로그
7. 옹진군
프롤로그 / 복음 전래의 길목 / 진촌교회 / 두무진 포구 / 가을교회 / 연지교회 / 중화동교회 / 백령 기독교 역사관 / 화동교회 / 사곶교회 / 대청도와 기독교 / 선진교회 / 옥죽동 사구 / 옥주포교회 / 나평교회(현, 영흥교회) / 내동교회 / 덕적도와 기독교 / 덕수교회 / 덕적중앙교회•덕적제일교회 / 에필로그
8. 중구
프롤로그 / 극동방송 북성동 연주소 / 조미수호통상조약 기념비 / 인천중화인(中華人)교회 / 첫 선교사기념공원 / 대불호텔 / 한국기독교선교 100주년기념탑 / 성공회 인천성당 / 성 누가병원 / 내리감리교회 / 인천 기독병원 / 삼목교회(현 공항교회) / 영종중앙교회 / 한국이민사박물관 / 인천제일교회 / 송도학교 / 에필로그
저자소개
책속에서
필자는 지금까지 40여 년의 세월을 한국 기독교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우리네가 살았던 흔적을 찾아서 걸어왔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정서까지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수없이 가졌다. 특별히 경험한 한국 근대사의 현장들은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었다. 은둔의 나라 조선을 깨우고,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김의 수고와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벽안의 선교사들과 국가가 좌초하는 위기적 상황에서 신앙을 통해서 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 몸부림쳤던 우리 선조들, 그리고 그들이 남긴 다양한 신앙의 유산들을 만날 수 있었다. - ‘시작하면서’ 중에서
# 강화도
프롤로그
변방에 고립된 섬이지만 한반도의 역사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곳, 1232년(고종 19년)부터 1270년(원종 11년)까지 38년간 고려국이 개경에서 도읍을 천도한 곳, 근대에 이르러서는 제국주의 열강들이 한반도를 지배하기 위해 침략했을 때 전장이었던 곳, 이렇게 한반도 역사에서 여러 가지 사건의 중심이었던 곳, 그곳이 강화도다.
그런데 강화도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은둔의 나라를 찾았던 초기 선교사들의 족적이 남아있는 곳이며, 전해진 복음의 능력이 섬 전체에 확산되면서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19세기 말 선교사들이 입국하면서 정주할 수 있도록 허락된 곳은 서울 정동이지만, 이곳 강화도에는 선교사들의 족적과 신앙의 선조들이 남긴 특별한 믿음의 열매들이 그대로 남아있어 당시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지역에 흩어져 있는 기독교 신앙의 유산들을 찾아 걷기를 시작한지 어언 40여년이 되지만, 처음 강화도를 찾았을 때의 감동과 놀라움으로 넋을 놓을 만큼 멍 ~ 하게 서서 한 참씩이나 ‘이게 뭐지’ 하는 마음으로 생각에 잠겨야 했던 느낌은 지금도 그대로다. 답사를 거듭하면서 하나씩 정리가 되고, 나아가 사건과 이야기들이 내 안에 엮어지면서 그 사실들을 나누고 싶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공유하면서 함께 기뻐하고 싶었다.
따라서 강화도는 언제 찾아도 여전히 설렘과 함께 찾아야 하는 곳이다. 수도권에서 멀지 않지만 섬이라는 특성 때문일까, 특별한 역사와 이야기가 살아있는 곳이다.
갑곶나루
역사는 과거의 산물이지만 그 역사를 만나는 것은 현재이다. 따라서 역사를 찾아가는 길은 언제나 설렘과 함께 상상력도 필요하다. 이미 과거의 사람들과 그들이 남긴 이야기를 만나기 위한 발걸음이기 때문이다. 어떤 유적과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와 함께 나를 만나 줄 것인지? 그래서 설렘이 있다.
1970년 이전까지 강화도를 가기 위해서는 배를 이용해서 건너야 했다. 하지만 김포반도와 강화도 사이는 뱃길조차 만만치 않다. 한강하류와 이어지는 바닷길은 들물과 날물의 유속이 빨라서 곧장 건널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여 나루터가 좁은 물길을 사이에 두고 멀리 대각선에 위치해 있다.
무동력선인 풍선배를 노저어서 건너야 했던 사공들은 급한 물살을 이겨내며 건너야 했기 때문이다. 코프(Charles John Corfe)선교사도, 존스(George Heber Jones) 선교사도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럼에도 벽안의 선교사들은 모든 어려움을 이기면서 1890년대 초반 이곳 강화도를 찾았다. 그들이 첫발을 내디딘 곳은 갑곶나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