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만나, 눈부시게 캄캄한 정오에 (강기원 사랑시편)
강기원 | 달아실
10,800원 | 20230616 | 9791191668773
사랑에 관한 막막하고 먹먹한 색의 번짐
- 강기원 사랑시편 『그곳에서 만나, 눈부시게 캄캄한 정오에』
1997년 『작가세계』로 등단하고 2006년 제25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강기원 시인이 등단 26년 만에 첫 시선집 『그곳에서 만나, 눈부시게 캄캄한 정오에』을 묶었다. 달아실기획시집 25번째 시집으로 나왔다.
이번 시선집은 강기원 시인이 그동안 냈던 다섯 권의 시집 중에서 50편-시집 『바다로 가득 찬 책』(2006, 민음사)에서 16편, 시집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2010, 민음사)에서 14편, 시집 『다만 보라를 듣다』(2021, 민음사)에서 12편, 시집 『지중해의 피』(2015, 민음사)에서 7편, 그리고 시집 『고양이 힘줄로 만든 하프』(2005, 세계사)에서 1편-의 사랑 시편을 엄선하였다.
특히 각 시편마다 시와 어울리는 세계 유명 화가 29명의 그림 52편을 함께 싣고 있어, 독자들은 시와 그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한마디로 사랑에 관한 색다른 시화집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이번 시집에 소개된 29명의 화가는 표지 그림 〈헬레나 클림트의 초상〉을 그린 구스타프 클림트를 포함하여 다음과 같다; 가이 올란도 로즈, 구스타프 클림트, 귀도 레니, 귀스타브 카유보트, 매리 카사트, 바실리 칸딘스키, 베르트 모리조, 아르망 기요맹,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알폰스 무하, 야체크 말체프스키, 에곤 실레, 에드가 드가, 에드바르트 뭉크, 에로 예르네펠트, 엘 그레코, 오귀스트 르누아르, 오노레 도미에, 욘 바우어, 이원미, 조르주 쇠라, 조지 와츠, 클라라 피터스, 클로드 모네, 툴루즈 로트렉, 폴 고갱, 프리다 칼로, 헨리 월리스, 헬렌 쉐르벡.(이상 가나다順)
강기원 시인은 이번 시선집을 펴낸 소감을 이렇게 얘기한다.
“많이 아팠고, 많이 행복했고, 간간이 불행했다. 아니, 꽤 자주. 색으로 치면 야청빛과 노을빛이 혼재된 심연의 색. 돌아보니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었던 담즙의 시간들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만난 상제나비, 여울고양이, 은하, 푸른 수국, 초록각시뱀, 죽은 말, 로브그리예, 로제타석… 나의, 그리고 너의 아바타들. 이제 이 모두를 한 자리에 불러 모은다. 사랑의 사슬로 엮어 당신 발아래에 놓는다. 당신 옆구리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점점이 꽃잎 위에 고인다.”
이번 시집을 기획하고 편집한 박제영 시인은 “강기원 시인의 오랜 시벗이며 그보다 더 오래된 애독자로서 언젠가 꼭 그의 특별한 사랑 시집을 직접 묶고 싶었다”며 이번 시선집과 강기원 시인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지금까지 펴낸 다섯 권의 시집을 통해 ‘강기원의 사랑론’을 정리하자면 ‘타자와 관련해서 사랑은 신비하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타자를 만나 매혹에 빠지고, 타자의 초록빛에 물들고, 영원할 것 같은 사랑도 마침내 아픈 이별을 맞이하겠지만 사랑을 통해 비로소 나와 타자가 화해를 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그리고 강기원의 시(문장)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색의 반죽이고 번짐이다.’ 그의 시편들은 색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영성과 세속, 차안과 피안, 실제와 상상, 삶과 죽음, 에로스와 파토스, 성聖과 성性, 영혼과 육체, 추함과 아름다움, 미각과 후각, 청각과 시각이 반죽되고 뒤섞이고 번지고 마침내 그 경계를 수시로 무너뜨린다. ‘사랑시편’이라 명명한 이번 시선집은 그러니까 ‘곤이처럼 절이고 삭힌, 막막하고 먹먹한, 몸의 살만 발라내는 것이 아니라 뼈와 골수까지 고아 먹이고 싶었던, 영성체적 사랑에 관한 그림이며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번 시선집을 한 줄로 요약하면 “사랑에 관한 막막하고 먹먹한 색의 번짐”이라 할 수 있겠다. 혹은 이렇게도 요약할 수 있겠다. “모딜리아니와 쉐르벡, 뭉크와 욘 바우어, 실레와 클림트, 그리고 로트렉과 칼로의 그림이 강기원의 시와 섞여 만들어내는 신비한 사랑의 번짐이다.”
어떤 식으로 요약하든 독자들은 이 한 권의 시집을 읽으면서, 사랑의 도서관 혹은 미술관에 앉아 있는 환상 여행 혹은 사랑의 영화관에 앉아 있는 환상 여행을 경험할 수 있다는 얘기겠다. 사랑에 관한 환상 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