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힐리스트로 사는 법(큰글자책) (삶이 무겁고 힘든 사람에게 니체의 니힐리즘이 전하는 지혜)
문성훈 | 이소노미아
35,100원 | 20240705 | 9791190844475
허무를 긍정하자.
허무는 삶의 출발점이다.
사람들은 성공하기를 원한다. 성공이란 내 안에서 일어나는 향상심이 아니라 경쟁 사회에서 타인에게 보여지고 인정받는 성과를 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큰 힘을 바라고, 더 좋은 학벌을 원하며, 더 멋진 외모를 소망하고, 만사를 이룰 수 있도록 부자가 되기를 희망한다. 돈, 권력, 지위, 학벌, 외모 같은 것이 점점 인생의 절대적 목적인 것처럼 여겨지고 신격화된다. 이 책은 이런 경쟁 사회 속 현대인을 위해 니힐리스트의 비전을 제시한다.
어째서 니힐리스트로 살아가는 비전일까? 니체는 신의 죽음을 선포했다. 이 책은 니체가 세상에 퍼뜨린 그 목소리를 독자에게 전한다. ‘신의 죽음’에서 말한 신은 누구인가? 이 책은 돈, 권력, 학벌, 외모 등 사람들이 삶의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 이 모든 우상의 죽음을 선언한다. 니체가 죽음을 선언한 신이 바로 이런 우상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얻는 것은 자유이며, 자기 창조적 삶이다.
그러나 이 책이 전하는 니힐리스트의 비전은 니체의 니힐리즘만이 아니다. 19세기에 머물러 있던 니체가 아니라, 21세기 현대 사회로 전이한 니체이며, 서양 고대 철학에서 현대 철학에 이르기까지, 동양의 공자, 노자, 장자에서 불교 사상에까지, 천체 물리학, 문학, 예술의 범위까지 수많은 인류의 지혜가 더해진 니힐리즘이다.
문성훈 교수의 철학 에세이는 마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읽는 듯한 체험을 독자에게 선물한다. 1부에서 저자는 그리스 신화의 카오스와 노자의 도(道), 그리고 빅뱅 이론을 넘나들면서 독자에게 ‘우주의 눈’을 보여준다. 우주의 눈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기독교 사상과 힌두교의 메시지와 불교의 깊이까지 종횡무진으로 누비면서 인류가 지금까지 어떤 고민을 했는지 보여주는데, 저자가 안내하는 이런 우주적인 여행은 밤하늘에 펼쳐진 은하수처럼 황홀하다. 마치 철학이란 고전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고, 그냥 현대에 머물러 있으면 된다고, 그러면 니힐리즘으로 긴밀해진 동서고금의 사상이 독자의 마음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고 말하는 듯하다. 이 책은 이미 1부에서 ‘읽는 맛’과 ‘생각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훌륭한 교본임을 증명한다.
2부는 니체적인, 너무나 니체적인 니힐리즘의 세계를 펼쳐낸다. 니체 철학 강독일 리 없다. 저자는 ‘니체가 이렇게 말했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피한다. 그 대신 2부에 도착한 독자에게 먼저 동양고전의 장자 이야기를 꺼내면서 1부에서 말한 우주의 눈을 환기한 뒤, 독자가 살고 있는 ‘돈, 학벌, 지위, 외모’의 세계를 둘러보게 하더니, 미국 현대철학자 마이클 왈처의 통찰을 보여준다. 이렇게 우주의 눈과 현대의 삶을 충분히 대비한 다음에 비로소 니체를 만난다. 니체를 만나면 누구나 감전된다. 2부 2장과 3장에서 독자의 마음속에서 니힐리즘의 전류가 흐른다. 이것도 잠시, 4장에서 저자는 80년대의 전율을 전하면서 니체와 마르크스의 만남을 증거한다.
3부에서 저자는 니힐리스트로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더 흥미진진하게 흐른다. 납덩어리보다 더 무겁게 들리는 신의 죽음에 관한 니체의 저 유명한 선언을 아인슈타인의 반문으로 경량화한다. “당신이 말한 신이 어떤 존재인가요?” 그런 다음 인류사에서 빼놓을 없는 신의 존재 증명 이야기와 자유에서 도망가 기어이 우상숭배를 택하고 마는 인류의 도피 행각을 빠트리지 않고 다룬다. 독자들은 불안한 현대인의 모습에 수긍하다가 저자와 함께 니체의 후예인 사르트르를 만난다. 그러자 사르트르는 열쇠 구멍을 통해 우리를 엿보고 있는 타인의 시선을 가리킨다. 수치심의 발견? 아니면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공정한 관찰자의 눈? 타인의 시선에 맞서야 하는 니힐리스트의 숙명을 체감하자, 니힐리즘의 파노라마는 4부로 이어진다.
이 책의 4부는 인정 투쟁으로 시작한다. 사람들은 학벌, 부, 명예, 권력, 외모 등을 선망한다. 그런데 그런 가치를 인생의 목적으로 삼지 않으려는 니힐리스트의 삶은 고통스러운 과정일까? 저자는 그런 고통을 거부한다. 니힐리스트의 자기 창조적 삶은 타인의 시선에 묶이는 게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타인의 시선을 바꿈으로써 타인의 인정을 획득한다는 것인데, 〈인정 투쟁〉의 악셀 호네트에게서 길을 찾은 니힐리스트의 이야기는 매혹적인 문학 평론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아름다운 잔혹미를 보여주는 〈사의 찬미〉를 보여준 다음, 허망하지만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노인과 바다〉를 보여주면서 ‘허무는 삶의 출발점’이라는 메시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3장에서 카뮈가 말하는 시지프를 통해 그 허무가 긍정된다. 4장에서 푸코가 등장해서 니힐리스트를 거든다. 5장에 이르러 다시 니체가 등장하면서 삶이 예술 작품으로 거듭난다. 그것이 니힐리스트로 산다는 것의 의미이다.
이 책은 1부 우주의 눈으로 시작하여 4부 허무의 예술에 이르기까지, 니힐리즘 관점으로 펼쳐지는 존재와 인간 삶의 세계로 독자를 충분히 안내하는 데 성공한다. 독자는 마치 니힐리즘 만화경으로 보듯 그런 진경을 목격했다. 그런데 혼자 외롭게 삶을 감당하려는 어느 이름 모를 독자를 위해 니힐리스트는 혼자가 아니라면서 저자는 5부를 덧붙인다. 1장은 현대인들이 니체가 말하는 이상적인 초인의 길에 들어서지는 못하더라도 술처럼 달콤한 ‘간헐적 니힐리스트’의 길이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2장은 니힐리즘 철학의 계보를 재미있게 거론한다. 사람들이 흔히 칭송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닌,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놀라게 한 디오게네스가 등장하고,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이어진다. 3장은 니힐리스트의 사랑을, 4장은 니힐리스트 사회를 다룬다. 존 롤즈의 정의론이 니힐리즘 관점으로 해석된다.
오늘날 현대인의 삶은 마냥 평화롭거나 안전하지는 않다. 삶이 무겁고 힘든 사람이 많다. 이토록 매혹적인 문장으로 니체 철학을 해설하면서 동시에 그런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책이 있었을까? 이토록 자욱하면서도 명쾌한 스타일로 니힐리즘을 소개하면서 니힐리스트의 삶을 권유한 철학책이 지금껏 있었을까? 이 책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은 존재와 허무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자유로운 삶의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보기 드문 역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