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어 마음사전 2
현택훈 | 걷는사람
14,400원 | 20251009 | 9791175010154
사라져 가는 말 속에, 여전히 살아 있는 제주의 얼굴들
현택훈 에세이 『제주어 마음사전2』 출간
“너미(너무) 펼치지 말앙 오므령 줴멍 헙서(오므리고 쥐면서 하세요).”
제주어 속에 스민 삶과 기억
제주 바다처럼 깊고, 감귤처럼 노란 언어의 빛을 되살리다
사라져 가는 언어는 곧 사라져 가는 삶의 기억이다. 걷는사람 에세이 29번째 도서로 현택훈 시인의 『제주어 마음사전2』가 출간되었다. 언어가 단순한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곧 ‘살아 있는 제주’라는 사실을 증언하는 책이다. 2019년에 출간된 『제주어 마음사전』의 두 번째 책으로,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제주어를 온몸으로 흡수해 온 시인 현택훈은 이번 책에서 다시 한번 제주어를 통해 기억과 삶, 자연과 역사를 불러낸다.
그는 작가의 말을 통해 “1권에 실은 제주어 낱말이 예순 개 남짓이다. 제주어는 아주 많으니까 이왕에 사전 형식을 취했으니 2, 3, 4, 5……. 꾸준히 내 보면 어떨까”라는 고백을 전한다. 단순한 후속편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제주어를 미래를 향해 이어가려는 시인의 의지다. 제주어는 지역 방언을 넘어, 곧 한 세대의 삶과 정신을 고스란히 담은 언어이기 때문이다.
사전의 형식을 빌려 쓰였지만, 사실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이고, 한 편의 이야기다. 제주어 낱말 하나하나에 깃든 사연을 좇다 보면 제주의 마을과 들판, 바람과 파도, 그리고 그 속에서 살고 떠나간 이들의 얼굴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언어와 삶은 서로의 거울처럼 이어져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번 책에 담긴 낱말들은 단순히 뜻풀이로 끝나지 않는다. 시인의 개인적인 경험, 어린 시절의 기억, 제주의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4·3의 아픔까지 제주어와 겹쳐 살아난다. “꿩코”라는 단어에서는 어린 시절 형들과 함께 꿩을 잡으려다 헛걸음을 하던 장면이 떠오르고, “아이모른눈”은 눈이 내린 마당에 찍힌 첫 발자국을 가리키지만, 동시에 아이처럼 새로운 세상을 딛는 순간을 의미한다. 단어 하나가 곧 삶의 은유가 된다. 제주의 자연과 어린 시절의 체험은 제주어라는 매개를 통해 다채롭게 복원된다.
무엇보다도 ‘제주어는 곧 제주 사람들의 역사이자 삶의 기억’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4·3 당시의 비극적 장소와 잃어버린 마을을 노래하는 시편들, 해녀와 농부, 아이와 노인들의 언어 속에서 제주의 지난 세월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그 땅을 살아 낸 사람들의 발자취라는 점을 시인은 제주어로 증명한다.
“살암시민 살아진다.” 제주 사람들이 자주 쓰는 이 말은 『제주어 마음사전2』 곳곳에서 되살아난다. “말장시(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오몽헌 사름(몸을 움직여 일하는 사람)”을 더 높이 치는 제주인의 가치관은 오늘날에도 울림을 준다. 힘들어도 부지런히 움직이고 서로 돕다 보면 살아진다는 믿음. 시인은 제주어 속에 이런 지혜가 숨어 있다고 말한다. 언어는 단지 낱말의 의미로 그치지 않고, 그 공동체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왔는지를 보여 주는 생활 철학이 된다.
현택훈은 말한다. “제주어 사전을 펼쳐 낱말을 보다 보면 기억이 떠오른다. 또 아주 생소한 낱말을 만나면 그 낱말을 종그는(좇아가는) 과정이 행복하다. 시인은 언어 탐구자이기에 내 몸, 내 마음 어느 한 부분에 전해 오는 제주의 옛이야기를 할 때야말로 언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제주어 마음사전2』는 그래서 단순히 언어 기록집이 아니다. 한 시인이 평생 몸에 밴 언어로 삶과 사람, 자연과 죽음을 사유하는 제주의 문화적 지도이며, 동시에 사라져가는 언어를 후대에 전하려는 뜨거운 기록이다. 그는 “앞으로도 먼물질을 나가는 마음으로 제주 바당에서 제주어를 캘 작정이다.”라고 말한다. 해녀들이 물속 깊이 들어가 전복과 소라를 캐오듯, 그는 언어의 심연으로 들어가 제주의 옛말을 캐내고, 그것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다. 언어의 힘, 언어가 지켜 낸 삶의 무늬를 확인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단단하고 따뜻한 사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