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부드러워, 마셔: 어나더 라운드
한은형 | 을유문화사
16,200원 | 20251115 | 9788932475851
『밤은 부드러워, 마셔』 한잔 더
좋은 술은 좋은 것들과 함께 마신다
‘밤은 부드러워, 마셔: 어나더 라운드’. 본서의 제목과 부제는 각각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밤은 부드러워라』와 매즈 미캘슨이 주연한 영화 〈어나더 라운드〉에서 따왔다. 물론 둘 다 술 마시는 소설이고, 술 마시는 영화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일 자주 하고, 또 좋아하는 말이 이것 아닐까. 한잔 더. 술 마시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그렇게 어나더 라운드, 『밤은 부드러워, 마셔』의 두 번째 책이 나왔다.
예전에 비해 젊은층의 술 소비가 줄었다지만,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술은 그 자체로, 그것을 둘러싸고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내는 인생의 한 요소다. 인류의 역사는 술을 빼면 반쪽짜리 역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술은 우리가 이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한 조각의 웃음과 기쁨을 선사해 주는 물질이다. 술과 함께 곁들여 먹는 안주는 또 어떠한가.
한은형 작가의 술 에세이는 세상의 모든 술을 다 마셔 보겠다는 호기와는 거리가 멀고, 작가가 다가갈 수 있는 술 중에 가장 좋은 것을 취하겠다는 신중한 취사선택의 결과물이다. 여기에 그 좋은 술을 그냥 마시지 않고 좋은 것들과 함께 마신다. 좋은 음식과, 좋은 영화와, 좋은 글과 함께 마시고, “낮과 밤에, 절기와 기후에, 기분과 상황에, 또 술집의 분위기와 안주에 술을 포개” 놓는다. 그렇게 술 위에 취향의 레이어가 켜켜이 쌓여 간다.
“금 위에 꽃을 더하는” 순간들
“그런 걸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나에게는 병이 있다. 책 속에서 본 술과 요리는 먹어 봐야 하는 병. 먹지 않으면 끙끙 앓는다,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자꾸 눈앞에 아른거리기에 어떻게든 해결하는 게 좋다”는 작가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에세이를 읽고 망고를 발가락만 한 크기로 자른 망고 카레를 해 먹고, 루쉰의 단편에 나온 인물이 양념한 콩과 사오싱주를 마시는 걸 보고서 콩을 조리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술까지 더하면 작가의 표현대로 “금 위에 꽃을 더하는” 순간이다.
책 속에 나온 술을 그대로 따라 마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내 식대로의 페어링이 더 좋을 때도 있다. 화가 김환기의 산문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속 제목이 ‘순대튀김’인 글을 읽고서 순대튀김을 따라 해 보는데, 컬컬한 우리 약주와 먹을 것을 권한 선생의 제안을 물리치고 뮈스카 봄 드 브니즈 와인을 준비해 본다. 선생이 좋아한 와인이기도 했지만, 살구와 캐러멜 맛이 나는 뮈스카가 안주를 잘 감싸안는 느낌이라 조용히 감탄을 내지른다. 그러다 오래전 김환기의 푸른색 점화를 보고 마음이 시큰해 한참을 캔버스 앞에 서 있던 기억이 떠오른다.
뉴올리언스를 다녀온 지인으로부터 그 도시에서는 개와 사람이 함께 술을 마시러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술집 앞에서 개가 사람을 기다리는 장면이 인상적인 영화 〈패터슨〉을 떠올린다. 영화에 나오는 술집이야말로 작가가 꿈꾸는 이상적인 환경이다. 개와 함께 걸어서 산책하듯 갈 수 있는 거리에, 주인과 흥미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곳. 이 책의 장면들로 일러스트를 그린 윤예지 작가의 상상 속에서 개는 술집 앞에서 사람을 기다리는 대신, 바에 앉아 각종 토핑이 얹어진 칵테일 블러디 메리를 마신다. 각자의 꿈과 상상은 술을 매개로 알 수 없는 농도를 더해 간다.
5년간 100편이 넘는 술글,
술을 타고 어딘가로 흘러가는 이야기
『밤은 부드러워, 마셔』(2023)와 『밤은 부드러워, 마셔: 어나더 라운드』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작가가 일간지에 술을 소재로 연재한 글을 추려 엮은 것이다. 백 편이 넘는 글은 계절로 묶이기도 하고, 술에 관한 사자성어 아래 분류되기도 했지만 술 한잔 걸치는 밤 그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출발선에 선 스프린터처럼 독자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준비가 되어 있다. “혼술을 좋아한다. 하지만 함께 마시는 술도 좋아한다. 술과 함께 당신의 이야기가 풀려나오고 기분도 흘러들어서 술은 술이 아니라 그 이상이 되니까.” 작가의 말처럼 이것은 술에서 시작된 이야기지만, 술을 타고 어딘가로 흘러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