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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32475851
· 쪽수 : 344쪽
· 출판일 : 2025-11-15
책 소개
『밤은 부드러워, 마셔』 한잔 더
좋은 술은 좋은 것들과 함께 마신다
‘밤은 부드러워, 마셔: 어나더 라운드’. 본서의 제목과 부제는 각각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밤은 부드러워라』와 매즈 미캘슨이 주연한 영화 〈어나더 라운드〉에서 따왔다. 물론 둘 다 술 마시는 소설이고, 술 마시는 영화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일 자주 하고, 또 좋아하는 말이 이것 아닐까. 한잔 더. 술 마시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그렇게 어나더 라운드, 『밤은 부드러워, 마셔』의 두 번째 책이 나왔다.
예전에 비해 젊은층의 술 소비가 줄었다지만,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술은 그 자체로, 그것을 둘러싸고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내는 인생의 한 요소다. 인류의 역사는 술을 빼면 반쪽짜리 역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술은 우리가 이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한 조각의 웃음과 기쁨을 선사해 주는 물질이다. 술과 함께 곁들여 먹는 안주는 또 어떠한가.
한은형 작가의 술 에세이는 세상의 모든 술을 다 마셔 보겠다는 호기와는 거리가 멀고, 작가가 다가갈 수 있는 술 중에 가장 좋은 것을 취하겠다는 신중한 취사선택의 결과물이다. 여기에 그 좋은 술을 그냥 마시지 않고 좋은 것들과 함께 마신다. 좋은 음식과, 좋은 영화와, 좋은 글과 함께 마시고, “낮과 밤에, 절기와 기후에, 기분과 상황에, 또 술집의 분위기와 안주에 술을 포개” 놓는다. 그렇게 술 위에 취향의 레이어가 켜켜이 쌓여 간다.
“금 위에 꽃을 더하는” 순간들
“그런 걸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나에게는 병이 있다. 책 속에서 본 술과 요리는 먹어 봐야 하는 병. 먹지 않으면 끙끙 앓는다,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자꾸 눈앞에 아른거리기에 어떻게든 해결하는 게 좋다”는 작가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에세이를 읽고 망고를 발가락만 한 크기로 자른 망고 카레를 해 먹고, 루쉰의 단편에 나온 인물이 양념한 콩과 사오싱주를 마시는 걸 보고서 콩을 조리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술까지 더하면 작가의 표현대로 “금 위에 꽃을 더하는” 순간이다.
책 속에 나온 술을 그대로 따라 마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내 식대로의 페어링이 더 좋을 때도 있다. 화가 김환기의 산문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속 제목이 ‘순대튀김’인 글을 읽고서 순대튀김을 따라 해 보는데, 컬컬한 우리 약주와 먹을 것을 권한 선생의 제안을 물리치고 뮈스카 봄 드 브니즈 와인을 준비해 본다. 선생이 좋아한 와인이기도 했지만, 살구와 캐러멜 맛이 나는 뮈스카가 안주를 잘 감싸안는 느낌이라 조용히 감탄을 내지른다. 그러다 오래전 김환기의 푸른색 점화를 보고 마음이 시큰해 한참을 캔버스 앞에 서 있던 기억이 떠오른다.
뉴올리언스를 다녀온 지인으로부터 그 도시에서는 개와 사람이 함께 술을 마시러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술집 앞에서 개가 사람을 기다리는 장면이 인상적인 영화 〈패터슨〉을 떠올린다. 영화에 나오는 술집이야말로 작가가 꿈꾸는 이상적인 환경이다. 개와 함께 걸어서 산책하듯 갈 수 있는 거리에, 주인과 흥미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곳. 이 책의 장면들로 일러스트를 그린 윤예지 작가의 상상 속에서 개는 술집 앞에서 사람을 기다리는 대신, 바에 앉아 각종 토핑이 얹어진 칵테일 블러디 메리를 마신다. 각자의 꿈과 상상은 술을 매개로 알 수 없는 농도를 더해 간다.
5년간 100편이 넘는 술글,
술을 타고 어딘가로 흘러가는 이야기
『밤은 부드러워, 마셔』(2023)와 『밤은 부드러워, 마셔: 어나더 라운드』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작가가 일간지에 술을 소재로 연재한 글을 추려 엮은 것이다. 백 편이 넘는 글은 계절로 묶이기도 하고, 술에 관한 사자성어 아래 분류되기도 했지만 술 한잔 걸치는 밤 그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출발선에 선 스프린터처럼 독자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준비가 되어 있다. “혼술을 좋아한다. 하지만 함께 마시는 술도 좋아한다. 술과 함께 당신의 이야기가 풀려나오고 기분도 흘러들어서 술은 술이 아니라 그 이상이 되니까.” 작가의 말처럼 이것은 술에서 시작된 이야기지만, 술을 타고 어딘가로 흘러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목차
차서일치
찌르르한 감격을 마시다
책 무덤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
절대 고독보다 절대 맥주
볼로냐 로소와 페로니
볼로녜세 스타일 술집
세이 쇼나곤과 과하주
셰익스피어를 위한 월동 준비
‘삼국지 그녀’와 세키토바를
폭풍과 언덕을 마시다
백마를 타고 달리는 기분에 대하여
두 해에 걸친 앵두주
베이징의 미풍양속
주유별장
기벽으로서의 블러디 메리
사월의 물
마시는 밥을 좋아합니다
오뎅 해프닝 데이
막걸리 칵테일을 커버하다
우아한 스탠딩 바라는 역설
요가와 술
놀라 블러디 메리
애피타이저로서의 등산
수정방 위스키 봉봉
화요 토닉 이야기
카레와 와인
주룡시호
호텔방의 코폴라
방사능 레모네이드
쾰슈와 슈탕에
스몰 토킹 유니버스
피노 푸들의 진심
유머이거나 기믹이거나
지공다스 속에 살고 있는 남자
구름의 왕자가 되어
초현실주의자의 술
민트 줄렙의 톤앤매너
어른의 웃음을 닮은 술
고요한 애정과 낙관으로
취생몽사
적나라한 꽃 냄새가 나는 고독
아름답고 명랑한 뮈스카
화산을 마시기
귀하게 썩을지어다
생빈을 아십니까?
선데이 브레드 클럽
더없이 격렬한 앤절스 셰어
베토벤 현악 4중주와 프루스트
한겨울에 굴 먹는 방법은
마데이라 비행
어른을 위한 민트 셰이크
‘글이 된 술’을 함께 마셔 준 당신에게
저자소개
책속에서

분위기 하면 이 영화다. 그래서 이 영화는 맥주를 부른다. 이상한 일이다. 맥주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맥주를 대체할 수 없는 순간이라는 게 있다. ‘절대 고독’에 버금가는 ‘절대 맥주’의 순간이랄지. 그 순간에 대해 이 영화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렇다. 〈중경삼림〉은 맥주가 마시고 싶어지는 영화다. 레몬을 뿌린 한치 튀김이나 냉두부 같은 화사한 안주가 아닌 감자튀김 같은 길거리 안주에 케첩을 듬뿍 찍어 맥주를 먹고 싶어진다. 스테이크와 함께 먹는 얄따란 프랑스식 감자튀김 말고 어느 정도 기름을 머금은 감자튀김을 말이다. 그래서 ‘중경삼림 식당’으로 가면서 필히 맥주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_ (절대 고독보다 절대 맥주)
술은 책과 함께 마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을 골라 읽듯이 술도 술꽂이에 꽂아 두고 골라 먹는 사람으로서 드리는 말씀이다. 얼마 전에도 책을 읽다가 술을 마셨다.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전에도 읽었지만 얼마 전에 새로 번역된 버전으로 『폭풍의 언덕』을 읽다가 생각했다. 아, 이 소설의 주인공은 캐서린이나 히스클리프가 아니라 황야이거나 히스구나. 사람이 아닌 자연환경이 주인공이고, 캐서린이나 히스클리프는 황야나 히스의 인간형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자 참을 수 없이 헤더 허니가 들어간 술이 마시고 싶어졌다. 황야의 히스와 함께 일렁이던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헤더heather의 군락이 히스heath고, 히스는 황야에서 자란다. 황야에서 난 그 꿀이 헤더 허니다. 나는 헤더 허니 향이 나는 술들을 몇 개 알고 있고.
_ (폭풍과 언덕을 마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