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힘 (희망을 심은 20인)
백경학 | 문학동네
16,200원 | 20251029 | 9791141613891
작은 나눔을 모아
큰 희망을 심어온 20년의 기록
‘희망’ ‘꿈’ ‘행복’ 같은 단어는 추상명사지만 이따금 그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장난감을 팔아서 돈을 마련한 초등학생부터 하루 1만 원, 1천 원씩 십시일반으로 보탠 수천 명의 시민, 희귀난치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난 딸의 사망보험금을 내놓은 아버지, 1년에 스무 번 이상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기금을 모은 홍보대사 등 1만여 명의 시민과 500개의 기업이 하나의 ‘꿈’을 위해 힘을 합친 결과,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이라는 기적 같은 공간이 탄생했다. 무모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2005년 설립된 푸르메재단은 어린이 재활센터, 장애인 전용치과, 장애인이 일하는 농장과 카페라는 ‘희망’을 좇으며 지난 20년간 행복한 여정을 이어왔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소설가 박완서를 비롯해 가수 션, 변호사 강지원, 김성수 주교, 아나운서 이금희, 이해인 수녀, 김정주 넥슨 창업주, 이지선 교수, 시인 정호승, 원택 스님 등 푸르메재단과 함께 발을 맞춰온 20인의 인생사를 통해 ‘경청’ ‘공정’ ‘정의’ ‘나눔’ ‘감사’ 등 우리가 놓쳐온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전한다. 이 책은 이웃을 위해 내 것을 나눈,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바친 사람들을 위한 헌사이자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확산해온 사람들에 대한 찬사다.
저는 줄곧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해왔습니다. 신문사와 방송국에 다닐 때는 취재를 위해 사람들을 만났고, 푸르메재단이 세워진 뒤에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만난 사람들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대략 반반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푸르메재단 일을 하면서 만난 분들은 대부분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가난한 이웃을 위해 내 것을 나누고,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바치려는 사람들이었죠. 푸르메재단 일을 통해 알게 된 모든 분이 저에게는 김장하 선생 같은 분이었습니다. 용돈을 절약하고 자기 장난감을 팔아서 마련한 돈을 아픈 아이의 치료비에 써달라고 한 초등학생부터, 현재 거주중인 아파트를 기부하려는 80대 할머니까지 정말 다양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지하 사무실에 책상 두 개를 놓고 재단을 설립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시절부터 이후 병원과 복지관, 직업재활센터, 농장, 카페가 세워지기까지 수많은 분이 함께해주었습니다. 몇 그루의 나무가 하나둘 모여 점차 숲을 이루듯 저희에게 숲의 토대를 마련해준 분들이죠. 이렇듯 지난 20년 동안 푸르메재단 일을 하면서 무수히 많은 분을 만났지만, 특별히 더 잊히지 않는 분들을 손꼽아봤습니다. 이분들은 푸르메재단과 함께 꿈을 꾸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었습니다. _‘책을 펴내며’에서
우공이산 정신이 만든
아름다운 기적
기자 생활 중 독일 뮌헨대학 연수를 마치고 귀국에 앞서 영국으로 떠난 자동차 여행에서 아내 황혜경 씨가 교통사고를 당하며 백경학 대표의 인생은 크게 바뀐다. 100일 동안 혼수상태였던 아내는 기적적으로 깨어나지만 이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는다. 사고 후 1년 반 동안 영국과 독일에서 병원 생활을 하고 귀국했지만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은 너무나도 열악했다. 치료를 받으려면 몇 달씩 기다려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병원 시설도 삭막하기만 했다. 영국에서는 의료진의 친절을, 독일에서는 환자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합리적인 의료 시스템을 경험했기에 이들 부부는 한국에도 이처럼 환자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병원을 세우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된다.
결국 아내의 교통사고 피해보상금 중 약 11억 원과 국내 최초의 하우스맥주회사 ‘옥토버훼스트’의 지분 등을 마중물 삼아 2005년 푸르메재단이 탄생한다. 모두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했지만, 푸르메재단은 지난 20년간 목표한 일의 대부분을 이뤄냈다. ‘우공이산’이라는 말처럼 조금 느릴지는 몰라도 이들 부부의 일념에 시민들은 하나둘 응답했고 장애어린이의 재활, 장애청년들의 자립을 위한 나눔의 손길은 지금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선뜻 손을 내밀어준 잊지 못할 분들과의 추억, 그리고 그들의 삶을 진솔하게 술회하며 ‘세상을 바꾸는 힘’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절대로 부자가 앞장서 가난한 사람을 돕지 않습니다. 겨우 살 만하거나 조금 부족한 사람이 베푸는 법이에요. 한 번 거절당했다고 낙담하지 마세요. 열 번 전화해야 한 번 만날 수 있고, 열 번 만나야 겨우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오늘 잘 설명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셈이에요.” 주교님은 그렇게 저를 위로하셨습니다. 살아가면서 선한 기운을 주는 분이 곁에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평생 인내와 겸손으로 살아온 김성수 주교님을 뵐 때마다 저도 당신에게 전염돼 조금씩 얼굴이 붉어지고 머리가 숙여집니다. 당신이 계셔서 참 다행입니다. _37~38쪽
같이의 가치를 믿는
우리 시대의 어른을 만나다
진정한 어른을 찾기 힘든 시대다. 참어른은 사라지고 꼰대만 남았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진주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며 문형배 전 소장을 비롯해 수많은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한 김장하 선생, 군부독재 시절 민주 인사들에게 은신처와 활동 자금을 제공한 채현국 선생 등 묵묵히 우리 사회의 버팀목이 되어준 어른들이 존재했다. 말보다 행동을 통해 삶의 가치를 몸소 전한 이들의 이야기가 알려지자 많은 이가 감동했고, 이들을 롤모델 삼겠다는 다짐도 이어졌다. 백경학 대표가 소개한 20인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빛으로 세상을 밝혀온 ‘우리 시대의 등대’ 같은 사람들이다.
발달장애인 특수학교인 성베드로학교와 발달장애인작업장 우리마을을 세우며 발달장애인을 위해 평생 헌신한 대한성공회 김성수 주교의 삶에서는 ‘겸손’의 힘을, 아무 대가 없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민 강지원 변호사의 삶에서는 ‘진정성’의 힘을, 20억이 넘는 돈을 사회단체에 기부했지만 ‘내 것이 아니기에 기부할 뿐’이라며 손사래치는 고 권오록 할아버지의 삶에서는 ‘겸양’의 미덕을 확인하게 된다. 법 앞에서 공정하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애쓴 조무제 전 대법관, 54년 동안 성철 스님을 시봉들며 스승의 가르침을 대중에게 전한 원택 스님,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부모로서 고민해온 장춘순 여사 등 각자 걸어온 길은 달랐지만 이들의 삶에는 올곧게 살아온 이의 단단함이 담겨 있다. 거센 바람에도 쉬이 꺾이지 않는 대나무처럼, 좌절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이 전하는 삶의 지혜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세상에 퍼지는 ‘선한 영향력’을 실감하게 된다. 자신의 이익보다 남을 위한 일에 뛰어든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권오록 할아버지는 재단에 오실 때마다 직원들에게 꼭 밥을 사주십니다. 극구 사양해도 “좋은 일 하는데 내가 해줄 것은 따끈한 밥 한끼 대접하는 것밖에 없어요. 내겐 이게 큰 기쁨이에요” 하십니다. 봄이 되면 꽃이 피었다고, 감기를 앓았는데 건강하게 회복됐다고, 농장을 짓느라 얼마나 수고하느냐고 등등 꼭 이유를 붙여서 맛있는 점심을 사십니다. 할아버지가 직원들에게 주신 것은 한끼 밥이 아니라 푸르메재단에서 일하는 소명감과 자부심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남에게 베풀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이웃을 돕는 삶을 행동으로 보여주셨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잊히질 않아요. 내가 기부하는 것도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본받으려는 노력입니다. 다음에 저승에서 아버지를 만나면 ‘우리 오록이가 아주 착하게 잘살았구나’ 칭찬해주시리라 믿어요.” 2023년 미수(米壽)를 맞은 권오록 할아버지의 미소가 해맑습니다.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전한 김장하 선생님처럼 권오록 할아버지도 큰어른이셨습니다. _155~156쪽
선한 사람들의 느슨한 연대,
세상을 움직이다
국내 굴지의 대학병원 관계자가 “우리도 적자를 감당 못 하는데, 민간 재단이 어떻게 병원을 짓고 운영하겠느냐”고 되물을 정도로 ‘재활병원 건립’은 엄청난 비용이 따르는 도전이었다. 하지만 재단 설립 2년 뒤인 2007년에는 국내 최초의 민간 장애인 치과인 푸르메치과를, 2012년에는 푸르메재활센터를, 11년 뒤인 2016년에는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을 개원해 목표를 이룬다. 그 기적 같은 순간을 만든 건 선한 사람의 연대였다. 수많은 나무가 모여 푸른 산을 이루듯, 고사리손부터 기업의 고액 기부까지 많은 이의 손길이 푸르메재단을 키워왔다. 2024년 기준 등록장애인 수는 약 263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5.1퍼센트에 달한다. 그중 80퍼센트 이상이 비장애인으로 살았던 중도장애인이다. 언제든, 누구든 예기치 않은 일을 겪을 수 있음에도 우리는 평온한 일상이 영원할 것이라 믿는다. 아내의 교통사고 후 백경학 대표의 삶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셀 수 없이 많은 러닝메이트가 그와 함께 뛰어주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꿈을 위한 여정을 이어올 수 있었다.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만남의 순간을 돌아보며 백경학 대표는 곁에서 힘을 보태준 이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담히 전한다. 의료보험 수가가 턱없이 낮아 환자를 치료할수록 적자가 났기에 단 1곳도 없었던 어린이재활병원을 푸르메재단에서 건립한 후, 국가 차원에서도 움직임이 일어나 권역별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이 곳곳에 세워졌다. 푸르메소셜팜, 무이숲도 우리 사회에 장애인 일자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민들레홀씨가 곳곳으로 날아가듯 푸르메재단이 퍼트린 ‘나눔홀씨’도 우리 사회에 퍼져나가 희망을 싹틔울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선수가 뉴욕마라톤대회를 완주했지만 그렇게 감동적인 골인은 없었을 겁니다. 7시간 22분이라는 엄청난(!) 기록 역시 유일할 거고요. 한참을 숨을 고른 뒤 지선 씨는 왜 늦은 건지 설명했습니다. 출발해서 조금 달리자 피부 호흡을 할 수 없었던 그녀는 심장이 터질 듯 아팠습니다. 그때부터 뛰는 것을 포기하고 빠르게 걷기 시작했지요. 심장의 통증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발바닥 통증으로 절뚝거리며 걸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통증이 허리까지 타고 올라오자 너무 고통스러워 주저앉아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때 자신의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한 교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자기 또래의 젊은 여성이었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가, 모두가 떠난 그 자리를 홀로 지키며 자신을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지선 씨의 다리에 다시 힘이 들어갔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응원하는 저 사람을 위해서라도 이대로 주저앉을 순 없다.’
처음에는 10킬로미터만 뛰고 지하철을 탈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10킬로미터를 지났을 때 그만둘 정도로 힘들지는 않아서 15킬로미터까지 가볼까 생각했고, 그렇게 한 블록을 걷고 한 블록을 뛰다보니 그다음엔 어디서 그만둘지 모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결국 레이스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42.195킬로미터를 완주하겠다고 목표를 세운 게 아니라 갈 수 있는 데까지만 가보자는 생각이 그녀를 결승점까지 이끌었고, 완주 메달을 목에 걸게 했습니다.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한 발 한 발 달렸더니 마침내 결승점이 보이더라고요. 아마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요.” _65~66쪽
불가능을 현실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다
1부 ‘희망의 나무를 심은 사람들’에서는 푸르메재단의 주춧돌을 놓아준 분들을 소개한다. “제 별명이 박완서 동생입니다”라는 이메일을 보내 인연을 맺었던 고 박완서 작가부터 열여덟 살에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었지만 장애를 딛고 자수성가해 큰돈을 기부한 이철재 전 쿼드디멘션스 대표, 물심양면으로 푸르메재단을 알린 첫 홍보대사 이지선 교수, ‘장애인도 보통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재단의 철학을 제시해준 김성수 주교와 강지원 변호사, 문학작품을 통해 장애어린이에 대한 사랑을 실천해준 정호승 시인 등의 이야기를 통해 우보천리의 마음을 되새긴다.
2부 ‘우리 모두가 기적입니다’에서는 어린이재활병원 건립비 400억 원을 모은 과정을 전한다. 건립비의 절반에 가까운 200억을 기부해준 고 김정주 넥슨 대표, ‘만 원의 기적’ 캠페인을 제안해주고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발톱이 몇 개나 빠질 정도로 달려준 홍보대사 션, 인세 등을 모아 ‘민들레기금’을 전해준 이해인 수녀, 어머니의 부의금뿐 아니라 자신의 사망보험금 수령자를 푸르메재단으로 지정해준 박점식 천지세무법인 회장 등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위해 쉽지 않은 결심을 해준 이들의 모습을 통해 절실함이 낳은 감동의 순간을 나눈다.
마지막 3부 ‘인생은 농사와 다르지 않습니다’에서는 발달장애인 청년들이 세상을 살아갈 터전이 되어줄 스마트팜 설립을 위한 과정을 다룬다. 가족의 손때가 묻은 농장 부지 4000평을 기부해준 이상훈·장춘순 부부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매년 한 곳씩 새로운 기부처를 늘린 기부 천사 이금희 아나운서, 청계천 빈민 구호 활동을 펼쳤던 고 노무라 모토유키 할아버지, 농장에서 근무하는 발달장애청년들이 취미생활까지 즐길 수 있게 기금을 마련해준 고 권오록 할아버지 등의 이야기를 전하며 장애청년들의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그린다.
처음에는 눈도 맞추지 못했던 청년들이 이젠 출근길에 만나 안부를 묻고 농담을 주고받습니다. 어머니께 용돈을 드리냐고 물으니 어떤 친구는 30만 원, 다른 친구는 10만 원이라고 자랑합니다. 옆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청년은 “나도 앞으로 드릴 거예요!” 하고 소리칩니다. 매일 농장에 함께 출근하고 일하면서 사회성을 키우고, 직장에서 월급을 받으니 자존감이 정말 하늘을 찌릅니다. (중략) “가끔 농장에서 직원들에게 나눠준 방울토마토를 들고 덕희가 퇴근합니다. 토마토를 식탁 위에 내려놓으면서 ‘이 집에서 돈 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유세하더군요. 매일 이런 모습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저의 행복입니다.” 장춘순 여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머니의 유산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실감하게 됩니다. 덕희 씨가 독립해 혼자 살아가는 날이 어서 오길 장 여사는 꿈꾸고 있습니다. 장애인이 행복하면 모두가 행복합니다. _220~2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