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 맥락에서 한국 SGI 이해
김수아, 김은기, 김종만, 김현석, 박상필, 서동은, 유광석, 이윤진, 이은선, 제점숙, 최해성 | 다산출판사
28,500원 | 20250415 | 9788971106730
SGI의 길은 심원(深遠)하다. 줄여 말해, 중세 대승불교(법화경)의 탁월한 전승자이자 해석가인 니치렌(日蓮)을 통해 뿌리 내린 연기와 만인성불의 개념과 사상,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문명적 전환의 실현을 위한 개인적·사회적·지구적 실천을 지향하고 추구해 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SGI 3대 회장인 이케다 다이사쿠는 이 장대한 기획을 ‘인간혁명(Human Revolution)’이라는 개념으로 구체화하였으며, 개인의 내면적 각성과 윤리적 책임의 연대를 통해 지구사회의 구조적 전환을 유도하고자 하였다. 이케다는 SGI 불법의 가르침과 정신에는 21세기 문명적 전환을 위한 ‘평화 창출의 원천’, ‘인간 복권의 기축(機軸)’, ‘만물이 공생하는 대지(大地)’라는 3대 비전이 내재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이 점에서 SGI의 길은 지구시민사회운동의 길이다. 인도 태생의 불교철학자 찬드라와의 대화를 통해, 이케다는 니치렌이 강조한 ‘주사친(主師親)의 삼덕(三德)’을 주목하며, 이 덕스러움의 규범을 일상 속에서 실천해 가는 일종의 보살도(菩薩道)의 삶이 바로 21세기 지구시민의 덕목이 되어야 함을 제시한다.
삼덕(三德) 중의 주덕(主德)은 ‘사람들을 지키는 덕목’, 사덕(師德)은 특히 21세기 글로벌 생태 위기의 상황에서 긴급하게 요청되는 ‘문명 전환’의 주제와 연관해 SGI 사상과 운동이 갖는 함의는 아주 크다. “각 개체의 생명이 곧 전 우주의 생명”이라는 SGI의 제법실상 또는 십여실상의 통찰과 지향은 이 시대가 추구해 가야 할 (생태적) 문명전환 운동의 대전제가 되는 전일주의적(holistic) 패러다임의 근간이 된다. 이 SGI의 전일주의 패러다임은 현존 인류 문명의 위기를 초래해 온 근대 물질문명 패러다임이 정당화해 온 이분법적 생태관과 이에 기초한 제반 가치와 인식의 패러다임을 돌파(breakthrough)할 수 있는 일종의 ‘초월적’ 생태 문명의 담론이나 서사의 원천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오늘의 SGI의 길은 이와 같은 대승불교의 교의적 철학 및 사상과 더불어, 동서양의 철학·종교·문학·정치 사상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구축된 것이며, 실천의 차원에서는 비폭력, 평화, 대화, 교육, 문화 교류 등을 통한 시민사회공동체의 형성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때문에 SGI의 비전과 목표는 이른바 종교적 교리의 실천이나 구원론에 국한되지 않고, 민주주의, 인권, 생태, 다문화 공존 등의 현대적 과제와도 밀접하게 연결되며, UN을 비롯한 글로벌 시민사회의 다양한 주체들과의 연대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확장해 간다.
한국SGI는 이러한 SGI의 길을 한국 사회의 특수한 역사적·문화적 맥락 속에서 수용하고 실천해 온 조직이다.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한국SGI의 활동은, 초기에는 종교단체로서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출발했으나, 1990년대 이후 민주주의의 확대와 시민사회의 성장을 배경으로 다양한 사회참여를 통해 시민사회 내부의 협력적 주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환경운동, 인권옹호, 평화교육, 다문화가정 지원, 청소년 리더십 함양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실천은 종교의 사회적 책임과 공공성에 관한 중요한 사례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SGI가 국제사회에서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산하 NGO의 지위를 유지하며 핵무기 폐기, 기후 정의, 지속가능한 발전 등의 글로벌 어젠다와 적극 동행하며 이끌어 가고 있으며, 한국SGI는 이러한 지구시민사회의 거버넌스적 실천을 로컬 차원에서 구체화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본 공동 저서는 이와 같은 SGI의 길에 대한 배경적 이해의 맥락에서, 한국SGI의 사상과 철학, 그리고 실천의 측면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하고자 한다. 서론과 결론을 제외한 10편의 글은 그 중핵적 주제에 따라 크게 두 개의 부로 나뉜다. 서론의 글에서 좀 더 자세히 다뤄지고 있지만, 1부의 글들은 주로 SGI의 철학과 사상에 대한 논의를 불교(종교) 철학적, 역사적, 생태적 관점에서 성찰 비판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2부의 글들은 보다 실천적 측면에서 조망되는 한국SGI의 시민사회활동을 다룬다. 다양한 영역(평화·교육·문화·시민활동)별 주요 활동의 유형과 내용을 분석함으로써, 이러한 활동이 한국 사회 내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종교사회학적, 비교종교학적, 시민사회론적, 환경생태적 관점에서 논의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본 공동 저서는 한국SGI라는 종교·교육의 길이 다원화되고 있는 현대 시민사회공동체의 맥락에서 어떻게 감응성 있는 책임의 주체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종교의 공공적 및 미래지향적 역할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성찰·비판적으로 탐색하고 있다. 이케다 다이사쿠가 일관되게 강조해 온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 변화에서 세계의 변화가 시작된다.”는 문명전환적 통찰은, 시민사회 속에서의 ‘작은 실천’의 윤리적 가치를 재확인하게 하며, 거시적 차원의 구조변동이 아닌 미시적 관계망 속에서의 진정성 있는 변화 가능성을 조망하게 한다. 이 점에서, 한국SGI의 길은 종교가 사적 신앙의 울타리를 넘어 어떻게 공적 가치 실현의 장으로 확장되어 갈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 특히 문명 전환에 대한 긴급한 요구가 차고 넘치는 이 시대 속의 종교(영성)의 운명과 연관된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는지를 비춰주는 거울이자 전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본 공동 저서의 집필진은 인문사회과학 전 영역의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를 지속해 온 학자들로 구성되었으며, 각자의 학문적 전문성과 시각을 바탕으로 한국SGI의 시민사회 활동 전반을 총체적으로 분석하고자 하였다. 이 저서가 단지 한국SGI의 활동에 대한 평면적 서술과 분석에 그치지 않고, 이 시대의 종교와 시민사회, 인간의 존엄과 공공성, 그리고 문명 전환 패러다임에의 실천적 가능성에 관한 화두를 사유하는 이론적, 실천적 텍스트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