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잉 붓다
홍은택 | 여우난골
10,800원 | 20260330 | 9791192651453
몸과 언어, 반복에서 발견한 감각 윤리와 시적 사유의 울림
시인수첩 시인선 106번째 시집으로 홍은택 시인의 신작 시집 『플라잉 붓다』가 출간되었다. 세계의 낯선 풍경과 인간 내면의 깊은 사유를 결합해 온 홍은택 시인의 이번 시집은 여행의 장면과 존재에 관한 질문, 그리고 언어의 본질을 향한 성찰을 한 권의 시집 안에 밀도 있게 담아낸다. 카트만두, 루앙프라방, 사막과 섬, 그리고 일상의 골목과 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시집은 세계를 향한 시인의 시선과 그 속에서 되비쳐지는 인간 존재의 흔들림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내 몸이 흔들리는 날, 언어도 흔들린다 / 흔들리는 언어가 가끔은 본질을 스치는 순간이 있다”라고 말한다. 이 문장은 『플라잉 붓다』 전체를 관통하는 시적 태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몸과 감각, 기억과 여행의 경험이 서로 교차하며 언어를 흔들고, 그 흔들림 속에서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존재의 본질을 포착하는 것이 이번 시집의 중요한 미학적 성취다.
총 4부의 60편으로 구성된 시집의 1부는 삶과 죽음, 윤회와 영혼에 대한 사유가 펼쳐진다. 「주황의 나라에서」, 「플라잉 붓다」, 「영혼 나무」, 「탁발 의식」 등의 시편은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낯선 공간을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적 질문을 불러낸다. 특히 표제작 「플라잉 붓다」는 결가부좌를 풀자 몸이 허공에 떠오르는 장면에서 시작해 다시 땅으로 내려앉는 순간까지를 그리며, 초월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운명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몸과 그림자, 영혼과 빛의 관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이 작품은 시집의 중심을 이루는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2부에서는 언어와 기억, 시간과 존재의 문제를 보다 내면적인 시선으로 탐색한다. 「말의 지문」, 「고슴도치 딜레마」, 「허물을 입다」, 「천둥지기」 등의 시편은 말과 침묵, 관계와 고독 사이에서 인간이 겪는 심리적 긴장과 사유의 깊이를 보여준다. 특히 「천둥지기」에서 시인은 씨앗을 묻는 농부의 행위와 백지 위에 줄을 긋는 시작(詩作)의 순간을 겹쳐 놓으며 시가 태어나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형상화한다. 이처럼 시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자연과 일상의 장면 속에서 언어의 탄생과 시적 사유의 과정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3부는 사랑과 인연, 인간관계의 다양한 풍경을 담고 있다. 「어떤 사랑」, 「전당포집 딸내미」, 「시절인연」 등은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상황을 통해 감정의 미묘한 결을 포착한다. 특히 「전당포집 딸내미」는 사랑과 관계를 전당포의 거래에 빗대어 독특한 서사적 긴장을 만들어내며, 인간 마음의 가치와 관계의 지속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또한 「관매도 함씨」와 같은 작품에서는 시대의 비극과 공동체의 기억을 조용히 환기하며 개인적 서정과 사회적 감각을 동시에 드러낸다.
4부는 예술과 감각, 존재의 근원적인 질문을 다루는 시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데이빗 앨런 하비, 최민식 등 실제 예술가들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작품들은 시와 사진, 시선과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다. 시인은 카메라의 뷰파인더처럼 세계를 바라보며, 사물을 포착하는 순간과 그것을 해석하는 인간의 시선을 동시에 성찰한다. 이 과정에서 시는 단순한 묘사를 넘어 존재와 인식의 문제를 질문하는 철학적 공간으로 확장된다.
이 시집에서는 불꽃, 노을, 모래, 강물, 그림자, 새와 나무 같은 자연 이미지들이 시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시적 리듬을 형성한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단순한 풍경 묘사에 머물지 않고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 현실과 초월을 연결하는 상징적 장치로 작동한다. 특히 여행의 공간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존재를 성찰하게 만드는 시적 장소로 기능한다.
『플라잉 붓다』는 여행과 명상, 일상과 철학, 이미지와 사유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시집이다. 시인은 세계의 다양한 풍경 속에서 인간 존재의 흔들림을 바라보고, 그 흔들림 속에서 언어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순간을 포착한다. 때로는 사막과 강, 섬과 도시의 풍경을 통해, 때로는 몸의 통증과 기억의 파편을 통해 삶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결국 이 시집이 보여주는 것은 ‘떠오르려는 존재’와 ‘다시 땅으로 내려앉는 존재’ 사이의 긴장이다. 시인은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며, 언어가 닿을 수 있는 가장 깊은 곳을 탐색한다. 『플라잉 붓다』는 세계를 향해 열린 시선과 내면을 향한 깊은 성찰이 만나는 자리에서 탄생한 시집이며, 독자들에게도 삶과 존재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사유의 공간을 제공할 것이다.
홍은택 시인의 『플라잉 붓다』는 여행의 풍경 속에서 인간 존재의 근원적 질문을 길어 올리는 동시에, 언어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섬세한 감각과 사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집이다. 몸과 언어, 세계와 내면이 교차하는 이 시집은 오늘의 독자들에게 시가 여전히 사유의 깊은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