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 집권을 위한 광란의 굿판 (윤석열과 김건희의 무속 정치)
김진실 | 아우내
18,000원 | 20250705 | 9791191852868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30분.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윤석열이 전 국민을 향해 비상계엄을 선포하던 그 순간,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기이하고도 상징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가 선택한 이 시각을 한자로 표기하면 '십이월삼일십시삼십분(十二月三日十時三十分)'이 되는데, 놀랍게도 여기에는 왕(王) 자가 세 번 연속으로 나타난다. 과연 이것이 우연의 일치였을까, 아니면 의도된 무속적 상징이었을까.
불과 6시간 만에 무력화된 계엄 선포는 윤석열 정부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21세기 과학기술 강국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전대미문의 '무속 정치'의 마지막 장면이었다는 점이다. 손바닥에 새겨진 '王' 자로 시작되어 세 개의 '王' 자가 교차하는 시각의 계엄령으로 끝난 이 기괴한 서사는, 권력과 무속이 결합할 때 어떤 참혹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현실 교과서였다.
이 책은 바로 그 무속 정치의 전모를 추적하고 분석하는 작업이다. 김건희의 "내가 웬만한 무속인보다 낫다"는 자신감에서 시작된 권력 의지가 어떻게 명태균이라는 자칭 '지리산 도사'와 만나 국정을 농단했는지, 청와대 대신 용산을 택한 무속적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마침내 어떻게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계엄 시도로 이어졌는지를 상세히 기록한다.
하지만 이 책의 목적은 단순한 폭로나 비판에 있지 않다. 윤석열 정부의 무속 정치는 하루아침에 나타난 돌발 현상이 아니라, 한국 정치사에 면면히 이어져온 구조적 문제의 극단적 발현이었기 때문이다. 고조선의 제정일치 체제에서 조선시대 궁중 무속, 박정희·전두환 등 군사정권의 은밀한 무속 의존, 그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권력자들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주술의 문을 두드려왔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100년 전 근대화를 '탈주술화(Entzauberung)'의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세계를 더 이상 신비와 마법으로 설명하지 않고 과학과 이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근대 문명의 핵심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21세기 한국에서 벌어진 무속 정치는 이러한 근대화가 여전히 미완성이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겉으로는 첨단 IT 강국이지만, 권력의 중심부에서는 여전히 전근대적 사고가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속 그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무속은 수천 년간 이어져온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며, 개인의 신앙과 정신적 위안의 영역에서는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가치를 지니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사적 영역의 믿음이 공적 의사결정의 영역으로 침투할 때 발생한다. 국가 정책이 과학적 분석이나 전문가의 조언이 아닌 점괘와 택일에 의해 결정되고, 선출되지 않은 무속인들이 국정에 개입하며, 정책 결정 과정이 은밀하고 검증 불가능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때,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들이 훼손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윤석열 정부의 몰락은 단순한 정치적 실패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지켜낸 역사적 승리였다. 2024년 12월 3일 밤, 국회의원들이 담장을 넘어 계엄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 민주주의를 수호했을 때, 그들은 무속 정치라는 전근대적 권위주의를 물리치고 합리성과 투명성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지켜낸 것이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특히 그 교훈을 제대로 새기지 못할 때 더욱 그렇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참혹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불과 몇 년 만에 또 다른 형태의 무속 정치가 등장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아직 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을 찾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제도적 민주화는 이뤘지만 의식의 민주화는 여전히 진행형인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과거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미래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권력과 무속의 결합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것이 민주주의에 어떤 치명적 위협을 가할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 책의 궁극적 목표다. 진정한 탈주술화는 무속을 박멸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의 합리성과 투명성을 확립하면서도 사적 영역에서의 문화적 다양성을 보장하는 섬세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무속 공화국의 악몽은 끝났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그 교훈을 바탕으로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성과 전통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와 국민을 위해 행사되며, 모든 의사결정이 투명하고 검증 가능한 과정을 거치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이 그 소중한 여정에 작은 보탬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