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설계자들 (인구, 질병, 그리고 복지, 대한민국 시스템의 미래를 묻다)
서한기 | 퍼플
7,700원 | 20250820 | 9788924165807
저자 서한기의 책 『보이지 않는 설계자들』은 대한민국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인구, 질병, 복지 시스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 이 책은 ‘보건복지부 간부 연락처’라는 문서에서 출발해, 그 안에 담긴 ‘인구아동정책관’, ‘연금정책관’, ‘노인정책관’ 등 보이지 않는 설계자들이 품고 있는 고민과 고뇌를 따라간다.
**제1부: 압축 성장의 기억과 유산**
책은 1960년대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표어 아래 국가 주도로 진행된 가족계획 사업부터 시작한다. 이는 인구 증가를 경제 발전의 걸림돌로 보고, ‘다산다복’의 전통을 깨는 혁명적인 전환이었다. 이 정책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오늘날의 ‘인구 절벽’이라는 아이러니를 낳았다.
또한 ‘효(孝)’가 전부였던 시대의 종말과 함께 ‘국민연금’이라는 위대한 약속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다룬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전통적 가족 부양 시스템이 붕괴하면서, 국가는 개인의 노후를 책임지겠다는 새로운 사회적 계약을 제시하게 된다. 하지만 제도 초기, 국민적 저항을 줄이기 위해 시작된 ‘저부담-저급여’ 구조는 결국 미래의 시한폭탄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의료보험’ 전국민 시대의 개막도 중요한 부분이다.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던 시절, 박정희 정부의 정치적 결단으로 시작된 의료보험은 12년 만에 전 국민을 포괄하는 기적적인 성취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3분 진료’와 ‘의료 쇼핑’을 부추기는 ‘행위별 수가제’라는 함정도 함께 만들어졌음을 짚는다.
**제2부: 균열의 시대**
책은 21세기에 들어서며 무너져 내린 시스템의 균열을 파헤친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실패한 저출산 정책의 원인을 ‘컨트롤 타워의 부재’와 ‘정책의 파편성’에서 찾는다. ‘경단녀’와 ‘독박육아’로 대표되는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희생의 무게, 사교육과 부동산 경쟁이라는 사회적 압박이 아이 낳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한다.
또한 OECD 노인 빈곤율 1위의 그늘 아래 폐지를 줍는 노인들의 비극적인 현실과, ‘황혼 이혼’과 ‘고독사’로 이어지는 노년의 사회적 고립 문제를 다룬다. '연금 개혁'이라는 뜨거운 감자는 '더 내고 더 받는' 모수개혁 이후에도 '구조개혁'이라는 더 큰 과제를 남겼고, 세대 간의 첨예한 갈등을 유발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OECD 자살률 1위라는 고통스러운 지표를 통해 ‘마음이 아픈 사회’를 진단한다. ‘정신력’으로 버티라는 사회적 편견과 높은 정신과 진료의 문턱, 그리고 청년과 노년 모두를 덮친 마음의 병을 이야기하며 우리 안의 ‘방관자’를 깨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제3부와 제4부: 미래를 위한 재설계와 시민의 역할**
책은 이러한 문제의 진단에서 멈추지 않는다. ‘돌봄’을 가족의 몫이 아닌 국가의 새로운 과제로 제시하고, ‘기술’을 활용하되 ‘사람’ 중심의 돌봄을 잃지 않는 지혜를 강조한다. 또한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의 변화를 되짚으며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의 의미와 한계를 짚는다.
『보이지 않는 설계자들』은 바이오헬스 산업의 미래를 설계하는 보건산업정책국장의 고민도 담아내며, ‘첨단재생의료’의 규제와 윤리 문제, 그리고 ‘의사과학자’와 같은 융합 인재 양성의 중요성도 역설한다. 스웨덴, 프랑스, 일본, 독일 등 해외 사례를 통해 우리의 문제를 성찰하고 새로운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정부 관료들의 노력만으로는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정치의 복원과 함께 시민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설계자’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우리 모두가 투명한 공론장에서 토론하고, 냉철하게 리더십을 선택하며, 이웃과 연대할 때 비로소 더 나은 미래를 재설계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