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천재들의 연대기 (그들은 어떻게 세상을 읽고, 바꾸고, 망가뜨리나)
카라 스위셔 | 글항아리
19,800원 | 20250321 | 9791169093682
테크업계 천재들의 설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
절대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 목격하고 기록하다
트위터의 머스크, 페이스북의 저커버그, 아마존의 베이조스
선을 넘은 그들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실리콘밸리 최전선에 있는 목격자
디지털 혁명의 가장 저명한 연대기
이 책은 2016년 12월 10일 트럼프가 실리콘밸리의 테크 기업 수장들과 기술 정상 회의를 막 가지려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25년간 테크 분야 전문 기자로 활약해온 저자는 이 회의에 초대받지 못한 기업의 대표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맨해튼의 트럼프 타워에 이 천재들이 집결한다는 것은 그들의 평소 성향과 어긋났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저자가 가장 먼저 전화 건 사람은 까칠하면서도 쉽게 곁을 주는 실력자, 바로 일론 머스크였다. “가면 안 돼요, 일론. 트럼프가 당신을 엿 먹일 거예요.” 그러나 일론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그를 설득할 수 있어요. 나는 그 사람한테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까요.” 그동안 일론과 관계를 잘 유지해왔던 저자는 속으로 ‘잘해봐라’면서 전화를 끊었다. 최근 X(트위터)의 거대한 트롤 왕으로 변한 그는 이제 자신을 인간이 아닌 신으로 여기는 듯하다. 그리고 이 기술 정상 회의는 테크 산업의 모든 것이 궤도에서 벗어나는 기점이 되었다.
일론 머스크는 이 책의 서막과 종막을 장식한다. 과거에 그는 무해하고, 재미있고, 명석했다. 이제 그는 “큰 아기 모드로 퇴행하고, 맥락을 거의 상실했으며, 아첨꾼들에게 둘러싸여 가망 없는 사람”이 되었다.
『테크 천재들의 연대기』는 출간 후 “디지털 혁명의 가장 저명한 연대기”로 평가받았다. 1990년대 초에서 시작해 테크업계의 이상주의자들이 어떻게 과잉 교배된 푸들로 바뀌어가는지 기자 정신에 입각해 날카롭고도 재치 있게 풀어나간다. 이런 글쓰기는 저자가 혁신의 최전선에서 모든 것을 목격한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실리콘밸리에 관한 이야기가 전부 그녀로부터 흘러나오자 업계 사람들은 그녀가 환풍구를 통해 잠입한 게 아닐까 의심할 정도였다. 디지털 혁명의 연대기는 테크 천재들의 연대기이면서 동시에 카라 스위셔의 연대기다. 이 셋은 초창기부터 맞물려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하는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페이스북, 스페이스X, 아마존 등의 연대기이기도 하다.
저자의 강점은 첫째, 현장 접근성이 뛰어나며 최고의 인물 비평가라는 점이다. 이 책의 토대는 인터뷰로 세워졌다.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 속에서 이뤄진 대화는 상대의 땀 한 방울까지 묘사하며 디테일 확보를 가능케 한다. 또한 역학관계 파악에 능한 저자는 인물 묘사에 있어 촌철살인의 문장들을 구사한다. “저커버그는 사악하지도, 악의적이지도, 잔인하지도 않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계속 자신이 부추긴 세력들에 대해 유별나게 순진했다. 그는 자신의 디지털 플랫폼이 가진 힘을 억제할 준비가 한심할 정도로 전혀 돼 있지 않았다. 저커버그는 재수 없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심각했다.”
둘째, 날카로운 비평과 기술에 대한 애정 사이에서 보이는 균형 감각이다. 저자는 “뒤가 아닌 앞에서 칼을 찌른다”라는 평을 들을 만큼 저돌적이지만, 다른 한편 기술에 대한 애정과 믿음을 한껏 드러낸다. 그녀는 첫 직장 『워싱턴포스트』에서 성공 가도로 이어지는 정치부 기자를 택하지 않고 기술 분야를 맡았다. 그 이유는 발명하고 혁신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셋째, 지금 인터뷰하는 사람과 생애 마지막 대화라 여기고 그들이 불편해할 질문을 던지는 정공법을 쓴다. 저자는 지금의 모든 일이 나쁜 일이 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글을 쓰는 게 자기 임무라고 여겼다. 이때 진짜 실력가들(예컨대 잡스)은 무대 한복판으로 나와 논쟁을 벌이며 서로의 격차를 조금씩 좁혀간다. 반면 실력 없고 속 좁은 이들(예컨대 저커버그)은 자신이 정의를 대변한다고 생각하며 문제점을 고치지 않는다.
넷째, 뛰어난 스토리텔링 감각이다. 이 책에 나오는 거물들의 활약상은 모두 전기와 후기로 나뉘어 묘사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많은 캐릭터는 점점 악인이 되어가는데, 그 드라마의 재구성 감각이 두드러진다.
이 책의 무대 한켠에는 테크 천재들이 있고, 반대쪽에는 저자가 있다. 독자들은 커튼 뒤에 가려진 사실들을 알게 되고, 긴장감에 전율하며, 미래의 방향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테크 발명가들이 너무 자주 영웅으로 그려지는 데 있다. 그들은 이미 상당히 망가져 있으니 현실로 끌어내려 낱낱이 해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