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식탁은 행복밥상
에밀리 디킨슨 지음, 김천봉 옮겨엮음 | 퍼플
0원 | 20160102 | 9788924037388
에밀리 디킨슨 詩선집「희망의 식탁은 행복밥상」은 19세기 미국의 여류 시인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의 시 108편을 우리말로 옮겨 엮은 번역시집이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 대한 초기 비평은 마치 소복 같은 하얀 드레스를 입고 집에서 은둔생활을 했던 그녀의 기괴한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야말로 그녀의 숨겨진 삶을 들춰내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그녀는 아주 혁신적인 여류시인으로, 19세기 낭만주의시대를 넘어 미국 현대시의 원조로까지 통하고 있다. . .디킨슨의 시는 흔히 삶, 사랑, 자연과 죽음의 주제로 분류된다. 그녀의 시들은 간결하면서도 아주 강렬하다. 주제마다 번득이는 재치와 진솔한 열정과 예리한 통찰이 돋보인다. 그것이 바로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철저한 예술가시인 에밀리 디킨슨만의 변별적 특질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본문 156쪽]
성공 SUCCESS
성공은 아주 달콤할 거라고
성공 못한 이들은 생각한다.
쓰라린 결핍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신주(神酒)의 맛을 아는 법.
오늘 그 깃발을 잡은
온갖 자줏빛 주인공 중에서
승리를, 아주 분명하게,
정의할 수 있는 이는 없다
실패해서, 죽어가는 이만큼,
금지된 귀에 아득한
승리의 가락이 괴롭게
또렷이, 부서지는 이만큼은! [15쪽]
희망은 교묘한 대식가 HOPE IS A SUBTLE GLUTTON
희망은 교묘한 대식가(大食家),
진수성찬을 즐기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어찌나 금욕하는지!
희망의 식탁은 행복밥상
한 번밖에 못 앉지만,
어떤 음식을 먹거나
같은 양이 남아 있지. [36쪽]
편지 THE LETTER
“그이에게 가라! 행복한 편지야! 그이에게 전해라―
그이에게 지면(紙面)은 내가 쓰지 않았다고 전해라,
그이에게 나는 그저 구문을 말했을 뿐,
동사와 대명사는 생략했다고 전해라.
그이에게 그냥 손가락들이 얼마나 허둥지둥 댔는지,
또 얼마나 힘들게 느릿느릿 느리게 나아갔는지,
또 네 지면에 눈이 달렸으면, 뭐가 지면을
저리 뒤흔드는지 알 수 있으련만, 그랬다고만 전해라.
그이에게 전문 작가의 글은 아니라고 전해라,
문장이 애써 성취한 문체로 추측해보건대,
꼭 뒤에서 보디스를 잡아당기는 소리 같다고,
마치 웬 아이가 붙들고 있는 것 같아서,
못내 가여운, 그런 정도로 애쓴 글 같다고.
그이에게 전해라―아니, 불평을 늘어놔도 좋다,
본심을 알면 그이 가슴이 찢어질 테니,
그럼 너도 나도 한결 말을 아껴도 될 테니.
그이에게 전해라, 우리가 끝내기 전에 밤이 끝나,
낡은 시계가 ‘낮이다!’라고 계속 울어댔고
네가 너무 졸려서 제발 끝내자고 애걸했다고―
그렇다고 무슨 방해가 될까마는, 그렇잖아?
그이에게 그녀가 널 아주 조심스레 봉했다고만 전해라,
혹시 그이가 너에게 어디에 숨었냐고 묻거든,
내일까지―행복한 편지야!
몸짓으로, 교태부리며, 머리를 가로저어라!” [73-74쪽]
왜? WHY?
벌의 윙윙 소리
요술처럼 나를 굴복시킨다.
왜냐고 묻는다면,
말하느니 죽는 게
더 쉬우리.
언덕 위에 붉은 기운
나의 의지를 앗아간다.
비웃으려거든,
조심하라, 신이 여기 계시니,
그것뿐.
날이 밝는 장면
내 지위를 격상시킨다.
어찌 그러느냐 물으면,
나를 그리 그려준 예술가가
답할 일! [107쪽]
혹시 내가 죽더라도 IF I SHOULD DIE
혹시 내가 죽더라도,
늘 그래왔듯이 평소처럼
당신은 살아가고
시간은 계속 흐르고
아침은 빛나고
한낮은 불타리.
새들은 일찍부터 집을 짓고
벌들도 부산히 돌아다니리―
누구나 지상모험을 즐기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법!
우리가 데이지와 함께 누워도,
주식이 살아 있어 거래가 계속되고
장사도 술술 풀리리라
생각하면 즐거운 일.
신사들이 아주 명랑하게
그 기분 좋은 정경을 연출해주면,
이별도 편안하고
영혼도 평온하리! [1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