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순
강유진, 고혜상, 김미정, 김채원, 서인선, 아드리, 유 | 글ego
13,500원 | 20200901 | 9791190395496
“그 장미가 그토록 중요한 것은, 네가 장미에게 들인 시간 때문이야.”
자신의 소행성에 두고 온 한 송이 장미를 떠올리는 어린 왕자에게 여우가 건네는 말이다. 매일 물을 주고 바람 부는 날이면 유리 덮개를 씌워주며 아꼈던 장미. 하지만 장미의 까다로운 성미에 지쳐 소행성을 떠난 어린 왕자는, 지구에 도착해서야 깨닫는다. 장미가 내세우던 가시는 사실 타인에 대한 두려움의 의미였으며, 까다로운 취향과 요구 사항들은 사실 어린 왕자의 관심에 대한 갈구였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장미가 언제나 그를 위해 은은한 향기를 뿜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그제야, 그 장미가 지구에 핀 수천 송이 장미보다 훨씬 소중한 단 하나의 존재였음을 자각한다. 장미로 인해 괴로워했던 것은 결국 장미가 그만큼 소중했기 때문임을, 즉 길들임과 관계의 의미를 깨닫고 한 걸음 성장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 조금씩 다르게 생긴 어린 왕자일지도 모른다.
5월의 어느 덥지도, 춥지도 않은 맑은 오후에 우리는 만났다. 통과 의례를 거치듯 5층 계단을 오르며 가빠지는 호흡과 함께 사회적 속성들을 하나씩 내려놓고,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했다. 그리고 그 곳에는, 각자가 마음속에 품고 온 한 송이 장미가 있었다.
온갖 모양으로 변형된 장미가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가족이나 연인 이었고, 또 어떤 이에게는 자기 자신 혹은 반려견이기도 했다. 어린 왕자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각자에게 가장 의미있는 관계 속에서 비로소 존재했다. 때로는 순수하게 사랑했고 위했으며, 가슴팍 어딘가에서 아려오는 무언가를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소중함을 깨닫기도 하며, 스스로를 한 걸음 더 이해하게 되었다.
각자의 장미에 대한 열 개의 단상이 엮여, 평범한 사람들의 관계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마음속 장미의 흔적을 보듬고, 새순이 돋아나길 바라며.
- 공동저자 中 고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