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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01165295
· 쪽수 : 340쪽
· 출판일 : 2014-06-27
책 소개
목차
순수의 끝 _ 6
감사의 말 _ 335
옮긴이의 말 _ 336
책속에서
에비와 함께한 수많은 시간처럼, 그곳에는 즐거웠던 시간이 깃들어 있다. 뒤뜰에 세워져 있던 우리의 브라우니 텐트, 마시멜로로 끈적이던 입과 손, 한밤중에 잔디 위를 구르거나 온갖 소리와 메아리에 몸을 떨던 일, 그저 우리를 향해 철써기들이 온통 거친 날개를 마찰시키며 내는 소리.
뭔가가 있다. 그게 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넘어질 것 같아서, 나는 손바닥을 벽돌 벽에 갖다 댄다. 이곳에 뭔가가 있었다. 뭔가 의미심장한 것이. 알아야 할 뭔가가, 내 목에 아하 하는 감탄사를 불어넣을 뭔가가,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게 뭔지 짐작할 수 없다. 더불어 뭘 찾아야 할지도 알 수 없고, 내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다.
스물한 살의 나이에 어두운 색의 더벅머리를 하고 건반 위로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는 베버 씨의 모습을 생각하니,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의 쇄골도 돌출되어 있었을까? 그의 목울대도 튀어나와 있었을까? 그 또한 너무 빨리 자라서 당황하고 그들 자신의 몸에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남자애들처럼, 어색하게 구부정한 자세로 있었을까?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나는 어젯밤 베버 씨의 집을 뒤흔들어놓았을 비운의 소식에 대해 생각한다. 그린홀로 호수의 캄캄한 진흙탕 속으로 빠르게 가라앉는 에비에 대해 생각하는 낮과 밤, 갈고리에 걸려 에비의 시신이 올라오는 생각, 부패되어 알아볼 수 없는 에비의 얼굴. 그게 일의 전모라는 얘기가 아닌가? 어디선가 읽었던 적이 있다. 물은 사람들의 얼굴을 부패시킨다. 그런 생각을 하며, 베버 씨의 마음이 지난 열두 시간 동안 만들어냈을 절망적인 여정에 대해 생각한다. 참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