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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설교/성경연구
· ISBN : 9788904169375
· 쪽수 : 232쪽
· 출판일 : 2025-09-24
책 소개
복음의 단순한 진리를
열정적인 설교와 아름다운 시로 전하며,
19세기 스코틀랜드 복음주의 부흥운동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호라티우스 보나르.
그 특유의 유려한 문체와 성경적 스토리텔링으로
창세기 1-3장에 담긴
창조, 타락, 구속, 회복 이야기를 뜨겁게 전한다
고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신학적 깊이와 명확한 복음 제시가
당신의 가슴을 벅차게 하고
고전 읽기에 빠져들게 할 것이다!
창세기 1-3장에 나타난 은혜 이야기의 첫 광선
죄가 들어오기 전,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선을 이야기했다. 죄가 들어오자, 세계는 하나님의 의를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죄가 일어난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19세기 스코틀랜드 복음주의 부흥운동의 중추였던 호라티우스 보나르는 개혁주의 전통에 따라 기독교의 중심 주제인 창조-타락-구속-회복을 생생한 이야기로 펼쳐 보인다. 성경의 첫 세 장에서 쉽게 이해할 수 없었던 장면들이 사실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감격하게 될 것이다.
은혜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는 성경적 스토리텔링
호라티우스 보나르는 600편이 넘는 찬송시를 남긴 시인이기도 하다. 한국 찬송가 공회에서 발행한 찬송가에도 7편이 실렸다. 그의 글에는 늘 설교와 시, 교리와 찬송이 함께 어우러진다. 『그 은혜 이야기』 역시 단순한 논리 전개가 아니라,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서정적이고 문학적인 문체로 가득하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구절 하나하나가 기도와 찬송으로 이어지고, 신앙의 진리를 마음으로 깊이 경험하게 될 것이다.
불안한 영혼을 위한 목회적 위로
19세기 스코틀랜드 교회는 교리 논쟁과 사회적 불안 속에서 신앙의 확신을 잃어버린 성도로 가득했다. 많은 이가 “나는 구원받았는가?”라는 질문에 괴로워했다. 보나르는 이런 영혼에게 목회자의 따뜻한 심정으로 다가가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 위에 굳게 세워져 있다고 선포했다. 『그 은혜 이야기』는 단순한 신학 해설서가 아니라, 의심과 불안 속에 있는 이들에게 안식과 위로를 전하는 목회적 편지이다. 이 메시지는 오늘날 여러 사상과 가치관의 혼란 속에 있는 한국교회 성도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
독자여, 당신은 지금
하나님의 은혜 이야기가 시작되는 장면을 마주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해진 이야기 가운데 가장 참되고 복된 이야기다.
거기에는 과장도 없고, 상상으로 꾸며낸 묘사도 없다.
이 모두가 실재, 은혜의 실재다.
아담에게 주어졌을 뿐 아니라, 당신에게도 직접 주어진 말씀이다.
처음부터 당신을 위한 메시지다.
그리고 이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당신의 용서와 복이 결정된다.
이제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하나님께 귀를 기울일 것인가?
아니면 그분의 사랑이 담긴 말씀이 비처럼 떨어지게 내버려둘 것인가?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단 하나, 곧 들으라는 것이다.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사 55:3).
_ 본문 중에서
‣ 추천합니다!
- 구원의 확신과 복음의 위로가 필요한 그리스도인
- 새가족반에서 함께 읽을 책이나 선물할 책을 찾는 리더 및 교역자
- 성도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복음을 열정적으로 전하기 원하는 설교자
- 고전 읽기의 기쁨을 누리기 원하는 그리스도인
목차
머리말
1. 하나님이 에덴에서 들려주신 선 이야기
2. 하나님의 이야기를 방해한 사람
3. 방해를 넘어 뜻을 이루신 하나님
4. 드러난 하나님의 목적
5. 은혜 이야기의 시작
6. 은혜 이야기가 처음 전해진 곳
7. 은혜 이야기를 전하시는 분
8. 은혜 이야기의 첫 광선
9. 여자의 후손, 고난받는 분, 정복자
10. 추방당한 사람: 믿음으로 사는 삶
11. 남겨진 에덴: 은혜의 교훈
12. 불꽃의 파수꾼: 그 앞의 누인 어린양
13. 두 예배자: 가인인가, 아벨인가?
책속에서
또다시 나는 산기슭을 따라 거닌다.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고, 아무 눈길도 닿지 않는 곳에 들꽃이 피어난다. 나는 그곳에서 한 무리의 자줏빛 야생화를 집어 든다. 마치 수천 개의 눈과 마주친 듯, 기꺼이 피어난 그 꽃송이…….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완전한가! 그러나 그것은 내게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의 지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인가? 결코 아니다.
그 풍성한 색과 섬세한 조화는 단지 하나님의 이해력과 지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분의 마음이 들리지 않는가? 우리는 그 자줏빛 꽃송이를 바라보며 단지 이렇게만 말하지 않을 것이다. “이 꽃이 그토록 아름답다면, 그 모든 아름다움의 근원인 그분은 얼마나 더 영광스러우실까!” 나아가 우리는 더 깊이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를 위해 이 세상을 지으시면서, 그 황량한 들판마저도 이토록 아름답고 향기롭게 만드신 그분의 마음은 얼마나 깊고 섬세한가!”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 가운데서도, 그분은 끊임없이 우리를 생각하고 계셨다. 우리의 안락함, 우리의 기쁨, 우리의 행복을 위한 배려로 가득하다. 나뭇잎 하나하나마다, 꽃잎 하나하나마다, 향기 하나하나마다, 빛깔 하나하나마다, 그분은 마치 항상 우리를 염두에 두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가장 행복할지 생각하셨던 것 같다. 우리를 그분의 세계 한가운데 두고자 하셨던 그 뜻 안
에서, 그분은 자신의 마음을 아낌없이 쏟아부으셨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통해 드러난 그분의 마음을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참된 의미에 도달하게 된다. 그분의 작품이 말하고자 한 이야기를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관한 이야기다. _1. 하나님이 에덴에서 들려주신 선 이야기 중에서
이렇게 사람은 하나님이 들려주신 선 이야기를 끊어 버렸다. 그는 더 이상 그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직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는지, 그 이야기가 계속된다면, 얼마나 많은 복이 그 앞에 열렸을지를. 그는 하나님과 그분의 음성을 등졌다. 마치 이미 충분히 들은 것처럼.
그러나 하나님은 조롱당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이 사람에게 들려주신 이야기는 참된 이야기였다. 그분은 자신의 말씀을 의심받게 버려두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분의 선하심이 그 손으로 지으신 피조물에 의해 부정당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실 수 없었다. 게다가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이 흉측한 죄악을 미워하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은 이 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실 수 없었다. 마치 그것이 그분과 아무 상관 없는 일인 양 침묵하실 수 없었다.
이제 하나님은 사람이 이전에는 결코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음성으로 말씀하셔야 했다. 이 새로운 음성은 사람에게 그가 행한 일이 하나님께 얼마나 큰 미움을 불러일으켰는지 알려 주었다.
이 거룩한 진노의 음성 역시,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신 모든 피조물 속에서 흘러나와야 했다. 그때까지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증언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분의 의로우심을 증언하기 시작했다. 창조의 각 부분은 저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말해야 했고, 온 피조 세계는 사람의 귀에 이렇게 들리도록 외쳐야 했다.……
그렇게 온 세상이(이전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전 우주적으로 증언하던 그 세계가) 이제 그분 안에 선하심만 있지 않다고 말해야 했다. 하나님께는 ‘의로우심’이라는 또 하나의 본질이 있으며, 그분은 ‘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신다는 사실을 피조물 전체에 알려야 했다. _2. 하나님의 이야기를 방해한 사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