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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25133171
· 쪽수 : 416쪽
· 출판일 : 2013-06-14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에필로그
작가 후기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박연수 대리.”
본능적으로 연수는 움찔거렸다. 저 낮게 깔리는 말투가 심히 불안했다. 마치 엄마가 아이를 꾸짖을 때 미리 ‘자, 네가 잘못했으니 이제 혼낼 거야’라며 아이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 그것과 다름없었다. 사실 육 년 전 일로 사사건건 그녀에게 작은 복수를 한다고 부르짖어도 저쪽에서 아니라고 발뺌하면 그만이다. 왜 그녀는 본전도 못 건지는 싸움에 뛰어든 것일까? 그건 아마 하등 도움도 되지 않는 그녀의 성급한 성격 때문이리라.
“나 또한 공사를 분명히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긴급하게 진행되어야 하는지 박 대리도 잘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닙니까?”
아니, 그렇다고 정색을 하며 말할 것까지야…….
그가 답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녀는 침묵을 지켰다. 그가 한 말이 모두 맞는 말이긴 하나 그걸 핑계로 살짝 그 위에 그의 사심을 집어넣어도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닌가. 김치찌개에 소금 좀 넣었다고 티가 나냐고! 하지만 그놈의 증거불충분 때문에 반박 한마디 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승산 없는 싸움이었다. 치사하고 아니꼽지만 내일 오전 아홉 시까지 제출한다. 한다고, 해! 그러니 일 분이라도 더 잘 수 있게 지금이라도 보내달란 말이야! 이 본부장아!
이놈의 계급장 때문에 할 말을 못하고 사니 가슴에 속병이 생길 것 같다.
“그리고 전 분명 박 대리가 일복 많은 것은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한 것으로 아는데 제가 잘못 들었습니까?”
“물론 그렇게 말은…….”
무심코 대답하던 그녀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너무나 놀라 말도 못한 채 입만 벙긋거리다 닫았다.
잠깐, 내가 언제 이 남자에게 일복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말했지? ‘칭찬’ 숙제로 아부성 문자는 날려도 대놓고 아부한 적은 없는데? 그러기는커녕 그와 멀리 못 떨어져서 안달인 그녀이다.
그녀가 기억상실증에 걸리지 않은 이상 그런 기억은 없다. 그러니 저 말은 오늘 오후 그녀가 옥상에서 한 말을 그가 엿들었다는 말이다. 그녀의 얼굴색이 순간 탈색되듯 하얗게 질렸다. 아직 회장님의 다른 건 필요 없냐는 친절한 질문이 유효하다면 그녀는 해외 발령을 지금이라도 신청하고 싶었다.
분명 그땐 아무도 없었단 말이야! 그것보다 그 뒤에 내가 또 무슨 말을 했더라? 당황을 넘은 공황상태는 그녀의 기억을 싹둑싹둑 끊어놓았다.
“본부장님…….”
침이 꼴깍 넘어가고 누가 목을 졸라맨 것처럼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아니야. 분명 그녀가 그에게 그런 말을 했는데 기억을 못하고 있을 뿐이야. 그래야 했다. 아니면 그녀는 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그것도 수습할 수 없는.
피식 웃으며 재하가 서류를 챙겨 나가려 하자 연수의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달려가 그 앞을 막았다. 오늘 반드시 이 일은 짚고 넘어가야 했다. 아니면 그녀는 집에 가서도 마음 편히 잠들지 못할 것이다.
“제가 정말 본부장님한테 일복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는 말을 했다고요?”
연수는 그가 회의실에서 나가지 못하게 그의 팔을 붙잡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걸 인지할 만큼 이성적이지 못했다. 그녀는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여전히 그의 표정만으로는 감이 잡히지 않는다. 젠장! 이 포커페이스!
“아닌가? 지난주에 지나가면서 그런 말을 한 것 같은데?”
“지, 지난주요?”
당황하니 말까지 더듬는다. 연수는 그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판독이라도 하듯 그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내가 저런 말을 지난주에 한 적이 있다고?
“아니면 말고. 내가 잘못 들었나 보지.”
그녀에게는 피 말리는 순간인데 그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다. 정말 그녀가 그런 말을 한 건지 아니면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알 길이 없다. 진실은 진짜 저 너머에 있었다.
“늦었는데 태워줄 테니 같이 나가지.”
그녀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은 저번 주부터 그와 마주친 순간순간을 더듬으며 치열하게 기억을 훑고 있었다. 이걸 확인하지 않는 이상 그녀에게 내일의 행복은 없었다. 그래서 거절 또한 한 박자 늦게 튀어나갔다.
“아니요, 아직 대중교통도 다니니 괜찮습니다.”
그녀는 오해하지 않도록 힘주어 거절이라는 표시를 분명히 했다. 부서의 팀장님이 데려다 준다고 해도 부담 백배인데 영업본부장이 데려다 준다는 생각만으로도 피로가 몰려왔다. 그리고 그녀는 아직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내일 일찍 나오려면 일 분이라도 더 자둬야지. 갑시다.”
“정말 괜찮…….”
“얼굴도 창백해 보이는데.”
‘당신이 그렇게 만들었잖아!’
“방향도 다른데 그냥 택시…….”
그녀의 처절한 거절은 그가 먼저 회의실을 빠져나감으로써 완전히 묵살되었다.
하느님,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저 영업본부장은 왜 허구한 날 저를 미워할까요? 제가 사람으로 안 보이는 걸까요? 이 어린 양, 너무 괴롭습니다. 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