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중국소설
· ISBN : 9788925534114
· 쪽수 : 401쪽
· 출판일 : 2009-09-14
책 소개
목차
밍과 옌
감사의 말 / 작품 해설 / 옮긴이의 말 / 작가와의 인터뷰
리뷰
책속에서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자 감회에 젖어들었다. 먀오옌과 처음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날 밤. 소소한 것까지 하나하나 마치 비디오 영상처럼 아주 생생하게 떠올랐다. 낮게 걸린 달, 희끄무레한 시멘트 바닥, 먀오옌의 반짝이던 눈빛, 펄럭이던 블라우스, 먀오옌이 담뱃불을 붙이고 연기를 내뿜던 스타일까지. 그 모든 것이 내 머릿속에 아로새겨져 있어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한참을 추억에 잠겨 있다가 일어나 옷장 속 하얀 상자를 가져왔다. 그리고 검은색 드레스를 꺼내 들고 욕실로 가서 입어 보았다. 여전히 꼭 맞았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욕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응시했다. 거울 속 내 두 눈에서 먀오옌이 보이더니, 이윽고 열일곱 살짜리 내가 보였다.
“당신을 봐요! 당신을 좀 보라고요! 고작 해야 2학년밖에는 안 됐을걸요. 그런데 생각에만 빠져 있고, 오만한 데다 독선적이잖아요. 전공은 국문학이겠죠.”
“당신 자신이나 봐요! 냉소적이고 세속적인 데다 골초잖아요. 당신은 틀림없이 졸업반일걸요. 직업을 구하는 일은 어때요? 과히 재미있는 일은 아닐 텐데.”
그녀는 손뼉을 치며 깔깔거렸다.
“어떻게 나에 대해 그렇게 많이 알죠? 우리가 전생에 인연이 있는 걸까요? 그나저나…… 내 이름은 먀오옌이에요. ‘고울 옌’이나 ‘제비 옌’이 아니라 ‘기러기 옌’을 써요. 나이는 스물넷. 아마 학교에서 제일 나이 많은 학부생일걸요. 학교에 늦게 들어갔죠. 당신은요?”
“천밍이에요. ‘새벽 천’, ‘밝을 밍’을 써요. 나이는 열일곱이에요.”
나는 머뭇거리며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다시 웃었다. 그녀의 맑고 거리낌 없는 웃음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져 메아리쳤다. 내가 그녀처럼 기운차고 쾌활하게 웃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녀의 입술은 마치 말을 하다가 잠이 든 것처럼 살짝 벌어져 있었다. 빤히 보다가 불현듯 그 입술에 입을 맞추고 싶어졌다. 그녀의 이마에 흐트러진 머리칼 몇 가닥을 손으로 넘기고는 손을 콧구멍 가까이 가져가 그녀의 따뜻한 숨결을 느꼈다. 그러고는 그녀의 입술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꼭 감긴 눈꺼풀이 살짝 떨리는 것을 봤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녀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저 웅얼거리며 추운 것처럼 손을 허리에서 가슴으로 옮겼다. 간절하게 여자한테 키스하고 싶은 느낌이 든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은 아름다운 꽃이나 하늘에서 내 손 위로 떨어지는 새하얀 눈송이에 입을 맞추고 싶은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고 순수한 느낌이었다.